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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3.12.29.주일오후 - 부족함이 없는 삶(전교인 기도회 9)


9. 시23 - 부족함이 없는 삶.pdf


20131229SE (#01).mp3.zip




본문 : 시편 23편


오늘은 2013년 마지막 전교인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이 기도회가 시작된 것이 4월달이니 오늘로 아홉번째인가요? 처음 이 기도회가 시작될 때,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이 기도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성도들과 한 번이라도 더 함께 합심해서 기도드릴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기도하던 중, 문득 주일 오후 시간이 마음 속에 떠올랐고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이 기도회였습니다. 사실 주일 오후예배 시간에 기도회를 가진다는 것은 그 이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이 기도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덕분에 시작된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작도 참 기뻤지만, 한 번 한 번 기도회가 이어져 갈수록 이렇게 우리가 모이는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었고 또 그래서 이 모임과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열정적으로 찬양하며, 또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는지 때로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여러분과 한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에 감격이 밀려올 때도 많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떠셨습니까? 여러분도 이 시간이 참 기쁘고 행복하셨죠?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느끼셨죠? 


저는 올해 한 해 동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말 그대로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평생 예수믿으면서 그것을 가장 생생하게 느꼈던 한 해가 올해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때로는 기도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기도한 적도 많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들 조차 하나도 무시하지 않으시고 듣고 또 응답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너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더 좋은 것으로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좋으라고 하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것이고, 우리의 부족함을 말씀드리는 것이 기도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그렇게 기뻐하시면서 구한 것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응답해 주시니 기도는 정말 신기한 은혜의 통로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들이 되도록 애써야 하지만, 기도는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하는 것인지라 결국은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것을 그렇게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그렇게 기뻐하시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그런 신뢰와 의지함의 표현이니까요. 참된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가장 잘 알고 계시며, 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 위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함께 읽은 시편 23편이 그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 그로 하여금 그런 기도를 드리게 하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만약 다윗이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고, 또 그렇게 기도하면서 살아가지 않았다면 그의 삶은 절대로 그가 고백하는 이런 모양이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첫번 구절부터 너무나 넉넉하고 평안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삶은 전체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넉넉하고 풍성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의 인생이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던 것은 다윗이 여호와를 자산의 목자로 삼아서 여호와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를 신뢰하고 따르듯이 자신이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고 따랐더니 자신의 삶이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자신의 인생 말련에 도달했을 때, 이와는 정반대가 되는 고백을 했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바로 야곱입니다. 말년에 바로 앞에 서게 되었던 야곱은 자기 나이를 묻는 바로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 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 말을 보면 야곱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내리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험악한 세월”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질문을 듣고 나서 야곱이 추억하는 자신의 인생 속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험악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야곱의 삶은 이렇게 되었을까요? 왜 그가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험악함만 가득한, 다윗과는 전혀 다른 삶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여호와를 의지해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아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야곱 보다는 다윗이 훨씬 험악한 삶을 살았습니다. 죄 없이 10년 넘는 세월을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쫓겨 다녔고,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이방인 왕 앞에서 미친 척하기도 했으며, 왕이 되고 나서는 아들에게 쫓겨서 도망을 치기도 했고, 그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보면 야곱이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일들은 비교적 덜 거친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다고 고백했던 반면에 야곱은 자기 인생 전체가 험악한 세월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런 우여곡절과 환란, 그리고 커다란 죄를 지은 일들을 포함하고 있는 인생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목자로 삼아, 신뢰하며 의지하며 살아가려고 힘썼던 반면에 야곱은 계속해서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보려고 끙끙 대며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행복이라는 것, 그리고 만족함이라는 것, 또 평안함이라는 것은 어떤 조건이 갖추어 지면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나 그런 조건들이 갖추어 져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조건과는 거의 상관이 없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행복을 느끼고, 만족을 느끼며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복이 바로 행복과 만족, 그리고 평안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과 영혼을 행복과 만족 그리고 평안함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또 유지할 수 있을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 그리고 어쩌면 하나 밖에 없는 방법은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계속해서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표현하고 또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살아가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행복과 만족, 그리고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뢰에서 나온 기도가 그런 역할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기도를 드리며 살아갈 때에만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생한 확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면서 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 하나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증거인지 잘 모릅니다. 야곱을 보면 이것이 분명해 집니다. 벧엘에서 처음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고 그 때부터 줄곧 야곱과 함께 동행하시며 때로는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야곱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필요한 것도 넉넉하게 공급해 주시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그가 느끼는 자신이 삶은 어땠습니까? ‘험악한 세월’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왜 자신의 삶을 이렇게 느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를 붙들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자신은 하나님께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반대쪽에 서 있는 다윗을 볼까요? 다윗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고백합니까?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한숨을 쉰 것이 아니라 그렇게 노래 했습니다. 사실 훨씬 더 험악한 삶을 산 것은 야곱이 아니라 다윗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다윗에게도 공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삶은 야곱의 삶을 닮은 삶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다윗을 닮은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고 해서 진짜로 그의 삶이 부족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 뒤에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그의 인생에는 정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엄청난 고난과 고통들이 있었습니다. 힘 겨웠겠죠. 고통스럽기도 했겠죠. 그렇지만 그래도 돌이켜 보니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도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신을 지켜주었고 그래서 안전할 수 있었다는 것을 다윗이 놓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죠. 성도의 삶이라고 해서 고통과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자신의 잘못 때문이건, 아니면 다른 사람이 저지른 악한 일 때문이건, 아니면 그저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훈련과정에 있기 때문이건 우리의 삶에는 절대로 고통과 어려움이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그래도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자신과 함께 하시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편들어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별다른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은 아무리 붙들고 의지하고 살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 부르게 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 입에 그런 노래를 담아 주시고, 그 노래가 흘러나오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의 입술에서도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다윗의 노래가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항상 부족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도 나를 부족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또 그 분의 은혜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이 기도하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더 깊은 신뢰의 기도를 드리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년 이 맘 때는 올해보다 더 크고 기쁜 목소리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 부를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