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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1.06.특새 1. 복이 있도다 너 하늘의 백성이여(산상수훈1)

      


1.마0501to12 - 복이 있도다 너 하늘 백성이여.pdf


20140106D (#01).mp3.zip





      설교본문 : 마태복음 5장 1-12절


이번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 때에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산상수훈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산상수훈은 얼핏보면 그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예수님을 따라온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이런 저런 교훈들의 모음처럼 보여집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서도 산상수훈을 그저 예수님이 여기 저기서 행하신 말씀을 아무런 원칙없이 모아놓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씀입니다. 그것은 산상수훈이 하나님께서 천국백성들에게 주신 천국의 법전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해 낸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전달해 주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산 위에서 하늘나라 백성들에게 하늘나라의 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모세율법처럼 받아서 전해 준 것이 아니라, 직접 입을 열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이제 막 이 세상에 태어난 하늘나라의 왕이시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러니까 이 산상수훈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그 분의 백성들에게 직접 주신 그 나라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산상수훈은 아무나 아무나 듣고 기뻐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백성만이 즐겨 들을 수 있고, 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하는 그런 하늘나라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들의 마음만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그런 말씀인 셈입니다. 물론 하나 하나 살펴보면 산상수훈의 말씀들이 우리가 사는 모습과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이 말씀을 그저 즐거워하기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바로 산상수훈을 읽는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너무 맞는 말씀이어서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하는 기쁨이 아니라, 비록 나의 삶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아파하면서도 달게 듣는 그 마음이야 말로 정말로 진리를 기뻐하는 마음이니까요. 진리는 무관심해 하거나 거부하지 않으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리를 기뻐하는 마음이고, 그것이 바로 산상수훈을 대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합당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산상수훈의 첫번째 부분은 흔히 팔복이라고 불리는 여덟 가지 복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팔복설교를 통해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과연 어떤 사람이 하늘 백성인가? 어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하늘 백성인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팔복설교는 분명히 그런 사람들에게 복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하늘나라 백성들은 모두가 다 복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복을 주시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비록 산상수훈의 말씀들이 우리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살기에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 모든 말씀들 또한 복된 백성들에게 주신 복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상수훈을 우리에게 주신 복된 말씀으로 보게 될 때, 산상수훈의 진짜 은혜와 가치가 드러나게 됩니다. 앞으로 산상수훈의 말씀을 살피면서 계속해서 ‘짐’이 아니라 ‘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이 정말로 여러분을 복되게 하는 그런 말씀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 그러니까 마음과 영혼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이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음과 영혼이 가난해져 보신 분들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넉넉하게 소유하고, 또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는 마음과 영혼이 가난해 질 수 없습니다. 무언가 결핍된 것이 있어야만 마음의 가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자신에게 답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현실적으로도 그렇지만 영적으로 보아도 자기에게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늘나라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받을 수 없는 나라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 일에 있어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의 기쁨은 바로 여기서 솟아납니다. 그 마음에 은혜로 얻은 하늘나라가 이미 임하여 있으니 말할 수 없이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애통한다는 것은 통회하며 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통회하며 우는 사람들이 복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죄의 깊이와 세상에 만연해 있는 죄의 크기를 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슬퍼합니다. 그래서 웁니다. 그런데, 자신의 힘으로는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는 그 죄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통회하며 웁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할 수 있다, 괜찮다는 자기 최면이나 사람들의 격려가 아닙니다. 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죄 때문에 오셨고, 그렇게 죄로 인한 애통함 때문에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넘치는 법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죄 중에 있을 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는 이 세상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크고 깊은 기쁨이 됩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늘의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로 주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온유한 자는 교만한 자의 반대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복이 있는 이유를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원래 전쟁에서의 승리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 작아서 교만해 질 위험이 없는 자들이 승리를 얻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는 승리는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 자신을 부풀리는 사람들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를 아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승리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얻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정말로 정직하다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작은지 알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만이 진짜 승리이고 또 영원한 승리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마지막 승리, 영원한 승리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번째로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누가 의에 주리고 목이 마릅니까? 스스로의 의로움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해도 자신의 의로는, 그리고 세상의 의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배를 불려 주십니다. 이들이 갈망하는 완전한 의,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혀 주심으로써 하나님 앞에 서는 영광과 기쁨을 맛보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의가 덧입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번째로 주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을 측은히 여기는 사람 일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죄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순전한 자비하심 덕분에 자신이 하늘나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불쌍여겨주심 덕분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죄인들을 정죄하고 욕하기 전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죄인들을 긍휼이 여기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는 살아가는 내내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고, 마지막 심판 날에도 하나님의 긍휼히 여겨주심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섯번째로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청결하다는 말은 깨끗하다는 의미보다는 순수하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다른 것이 섞여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에 다른 것이 섞여있지 않은 사람들, 나누어지지 않은 하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만이 마음 속에 섞여 있는 불순한 다른 것들에 가려서 하나님을 보는 일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야 말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보다 우리의 영혼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며 또 만족하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곱번째로 주님은 화평케 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눠지게 하고 찟어지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화평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누고 찟긴 것을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자신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자기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가 복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십니다. 믿음 때문에 핍박당하는 나라들의 교회들이 우리에게 부탁하는 기도제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핍박이 끝나게 해 달라는 것도, 그리고 우리들 처럼 편하게 예수 믿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대가 그들이 우리에게 부탁하는 기도의 제목은 그들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왜 그들은 그런 기도를 부탁할까요? 그들에게는 정말 지키고 있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이 이 땅에서의 편안함이 아니라 하늘의 상입니다. 그 영원하고 완전한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영광을 놓치게 되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들에게 그런 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상을 바라보지 않는 자는 하늘의 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하늘의 상보다 큰 복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손해와 오해를 감수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장 원하는 하늘의 큰 상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죄 때문에 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아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죄인을 긍휼이 여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마음이 나뉘어지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나누는 자가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마음을 가진 사람들, 거듭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만 하늘의 복, 하늘을 가지는 복,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을 함께 묵상하시면서 세상이 복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복되다고 말씀하시는 거듭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심령이 그 소망과 기도로 채워져서 올 한 해 그 마음에 하늘을 품고 살아가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