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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1.16.특새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산상수훈 9)


9.마0707to14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pdf


20140116D (#01).mp3.zip





설교본문 : 마태복음 7장 7-14절



우리가 지금까지 묵상해 온 산상수훈은 크게 두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나라의 눈으로 볼 때, 진짜 복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하는것과 둘째는 그런 사람들이 하늘 백성의 복된 마음을 품고 살아갈 때, 드러나게 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의보다 나은 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삶의 원리들을 각자의 삶 속에 녹여내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산상수훈의 말씀들이 행동의 원리가 아니라 속 사람의 원리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의보다 나은 의가 되려면, 산상수훈의 원리를 따르려는 우리의 삶과 노력 속에는 항상 우리의 진심이 담겨져 있어야 하며,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서 팔복의 말씀이 전해주는 하늘 백성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다들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꾸미면서 살아가는데, 그리고 그 겉으로 보이는 행동들 조차도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데 행동과 삶의 겉모습도 아름답게 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속에 진심까지 담기 위해서 신경을 쓰고 끙끙거리면서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어리석게 여겨지고 또 쓸 데 없는 짓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도, 그리고 거기 담겨져 있어야 할 하늘 백성들의 마음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리새인들의 의도 없고, 그렇다고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나은 의도 없는 그런 신앙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편한 게 좋은 거다, 가벼운 게 좋은 거다’ 라는 사고방식이 신앙에도 파고 들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의 원리를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분위기가 유행하는 이 세상과 교회 안에서 어찌 보면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이 쉬울래야 쉬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산상수훈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산상수훈을 생각할 때, 자꾸 사람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모든 말씀들은 자기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렇지만 산상수훈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려는 사람들만이 순종할 수 있는 그런 원리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 백성의 마음을 담은 산상수훈의 삶을 살아가려면 절대로 우리의 힘과 의지로만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팔복의 말씀에서도 보았듯이 원래 산상수훈을 따르는 삶이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만 살아가는 삶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산상수훈을 따르는 삶은 결코 완전한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 하나의 율법을 지켜서 율법 전체를 지키면 완전해 지는 그런 모양이 아니라 그저 부족한 채로, 항상 연약한 채로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이 산상수훈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런 점에서 산상수훈의 가르침의 거의 마지막에 기도하라는 우리 예수님의 권면과 그 기도에 대한 약속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산상수훈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려면 기도를 통해서 그렇게 하는데 필요한 힘과 은혜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주님은 기도에 대한 말씀을 거기 두신 것입니다. 


산상수훈에 마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기도하라’고 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도에 대한 정말 든든한 약속도 주셨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 주님의 이 말씀은 그저 일반적인 기도에 대한 약속으로 받아들여도 너무 훌륭하고 든든한 약속이지만 산상수훈 이라는 큰 틀 속에서 보면 우리에게 이 말씀은 더욱 더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이 말씀을 산상수훈의 틀 속에서 바라보면 그 속에는 이런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하늘 백성의 마음을 가지고 산상수훈을 따라 살아갈 힘과 지혜가 필요하거든 구해라 그러면 얻을 것이고, 찾으면 찾게 될 것이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약속은 틀림없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로 해서 보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지극히 선하신 아버지, 그래서 가장 선한 것들만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이것이 확실하게 믿어진다면 이것보다 더 확실한 기도응답에 대한 보증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도를 통해서 산상수훈에 순종하기 위한 힘과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멍에 자체를 아얘 없애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 백성인 우리에게도 멍에는 있습니다. 율법의 멍에는 없어도 산상수훈의 멍에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우리가 보아 왔듯이 율법보다 더 완전한 수준을 요구하고 그래서 훨씬 더 무거워 보이는 산상수훈이 쉽고 가벼운 멍에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그 멍에를 함께 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선하심을 믿고서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더해지게 해 주어서 우리가 그 멍에를 가볍고 쉽게 지고 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오늘 본문의 12절 말씀인데요. 사실상 산상수훈의 삶에 대한 교훈을 마무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서 제가 읽어드리는 마태복음 22장 37절 이하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렇게 보니 7장 12절의 뒷 부분과 22장 40절이 똑같습니다. 그것은 이 두 본문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것이 율법을 통해서든 산상수훈을 통해서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삶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게 해 줍니다. 율법이든 산상수훈이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되면 율법도 지키게 되고 또 산상수훈도 지키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랑이 누구를 향한 사랑이건 사랑의 원리는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고자 하는 대접이 있다면,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을 대하면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받고자 하는 대접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그 마음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산상수훈에 순종하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 될 수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나도 남을 대접하는 것. 이것은 분명히 굉장히 단순한 원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원리를 따라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 원리를 따르는 삶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걷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또 좁은 길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주님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으니라” 넓은 문을 선택하고 넓은 길로 가는 지혜로운 것입니까? 그것이 유리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좁은 문을 선택하고 그리로 들어가려고 애쓰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로 유익한 것입니다. 좁은 문과 좁은 길만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좁다고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가고 또 그 길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을 갈 수 있는 은혜를 기도로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항상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진심이 담긴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힘입으면 우리는 그 좁은 길을 확신과 소망가운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좁은 길로 가다가 지치고 힘드신 분들이 있다면 다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서 생명을 얻게 해 달라고, 필요한 지혜와 힘을 달라고, 마음의 은혜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힘으로 다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약속을 잊지 마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를 통해서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 가운데 이 좁은 생명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복된 하늘 백성들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