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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2.05. 새벽예배 -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창세기 111)



창3201to12 -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창11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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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32장 1-12절




흔히들 ‘인격은 습관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의 인격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반응을 통해 표현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선하고 아름답게 반응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그게 몸에 익을 정도가 된다면, 적어도 겉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인격은 분명히 습관을 통해 형성되고 결정되는 부분이 상당히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가지 사람의 행동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바뀌기 전에 행동을 바꾸면 그 행동에 따라 마음도 어느 정도는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게 됩니다. 물론 신앙적으로 볼 때, 정말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마음과 영혼이지만 그 두 가지에 미치는 우리 행동의 영향도 작다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이 다 변할 때까지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미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변화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계는 신앙과 행동 사이에도 존재합니다. 일방적으로 믿음이 우리의 삶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동 또한 우리의 믿음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라반과 헤어진 후 길을 가는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이 때 갑자기 그를 찾아온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지금까지 야곱과 줄곧 함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의 삶이 그나마 유지되어져 왔고 또 여러 번의 위기를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야곱 앞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났던 것은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믿게 해 주시려는 야곱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기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그 사자들이 자기 앞에 나타난 곳을 “마하나임” 그러니까 ‘두 진영’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통해서 그 때 야곱 앞에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사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숫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진영이라고 부를 만큼 많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렇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항상 야곱의 곁에는 두 진영이나 되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여주고 또 믿게 해 주시기 위해서 그 날 거기서 그 모든 사자들을 보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너무 감동해서 그 곳의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거기서 더 나가지 못했습니다. 3절을 보면 야곱은 그렇게 자신에게 두 진영이나 되는 사자들을 보내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또 다시 머리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는 형에게 가기 전에 먼저 전령을 보냈습니다. 자신을 에서의 종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자신에게 많은 재산이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면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다시 돌아온 전령들은 에서가 400명이나 되는 부하들과 함께 야곱을 행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우선 재산을 둘로 나누고 절반을 먼저 앞세우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에서가 그 절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머지 절반이라도 건질 심산이었습니다. 야곱은 재산에 대한 집착이 정말 강한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재산에 신경이 더 먼저 쓰이고 또 그 재산 중 절반이라도 건져 보겠다고 또 머리를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정말 답답하고 두려운 심정으로 야곱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여전히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셨던 명령과 주신 복들, 그리고 약속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는 것, 그러면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하셨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하지 않았는데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지금 굉장한 두려움에 빠져 있다는 것, 또 자신을 향해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들을 하나님께 주절이 주절이 늘어놓았습니다. 


야곱은 이제 믿음의 발걸음을 옮길 때가 충분히 지났습니다. 그 오랜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셨고, 그래서 자신을 잘 되게 해 주셨으며, 여러 번의 위기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을 스스로의 입으로도 고백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하나님께서 두 진영이나 되는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까지 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야곱은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만 터지고 일만 생기면 하나님 보다는 자신의 머리를 더 의지하는 그런 모습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람쥐 채바퀴 돌 듯 말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을 주셨고, 또 지금까지 그 많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통해 보호해 주셨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여전히 거의 제 자리입니다. 그 많은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인생을 자기 손에 붙들고 있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더 이상 표현할 길이 없는 그런 과거의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던 것처럼 너무도 명확하게 하나님을 경험한 그런 일들도 참 많습니다. 성도들과 이야기해 보면 다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들 또한 야곱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손에 자기 인생을 쥐고서 전전긍긍하며 현실과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그 분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게 될까요? 우리는 야곱의 인생을 살펴보면서 왜 야곱이 그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편들어 주심 속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지 못했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믿음의 모험 속으로 던져 넣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진정한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서 살려면,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믿음의 모험에 자신의 인생을 던져 넣어보고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하나님이 정답이라는 것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현실속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하나님을 진짜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고, 그래야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근심과 걱정, 두려움으로부터 풀어 자유케 해 줍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도 항상 제 자리이고 근심과 걱정, 두려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거기 붙들려 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현실 속에서도 충분히 승산있는 삶의 방식임을 확인할만큼 그만큼 믿음의 모험을 감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모험을 하기에 충분한 믿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충분한 믿음이란 실제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경험은 신앙의 모험을 감행할 때에만 할 수 있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모험은 그야 말로 말그대로 모험입니다. 보장이 없기 때문에 모험이죠. 그렇지만 믿음의 모험은 실제로 모험이 아닙니다. 이미 변함없이 신실한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고 그저 우리의 삶을 그 방향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항상 내가 이것 저것 다 생각하고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되고 그래서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만 살아서는 결코 믿음다운 믿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신뢰하고 넉넉하게 이기며 살아가는 믿음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의지하고서 살아가기에 충분한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문제는 과거의 경험의 부족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경험을 근거로 믿음의 모험을 감행하기 위해서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놓지 않는데 있습니다. 


여전히 믿음의 능력이 막연하게만 느껴지신다면, 그래서 여전히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이 무겁게만 느껴진다면 과감히 믿음의 발걸음을 옮겨놓아 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믿음을 믿음답게 만들고, 또 그 믿음이 실제로 능력있는 믿음이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두 진영이나 되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항상 여러분의 눈에 보이게 하는 방법입니다. 믿음을 위한 은혜는 이미 충분합니다. 이제는 발걸음을 움직일 차례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의 발걸음을 옮겨놓으시며 더 크고 견고한 믿음, 정말 붙들고 살아가며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