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2.11.새벽예배 -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창세기 114)


창3301to20 -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창114).pdf


20140211D (#01).mp3.zip





본   문 : 창세기 33장 




가끔씩 운전을 하다가 보면 이미 잘 알고 있는 가까운 길을 굉장히 오래 걸려서, 그것도 굉장히 멀리 돌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길이 막히는 것 같아서 어림잡아 길을 돌렸는데 그 길이 더 막히고 거리는 거리대로 멀어서 금새 갈 수 있는 길을 그렇게 오래 걸려서 가게 될 때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런 상황은 길을 갈 때도 발생하지만 인생을 살아갈 때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때는 아까운 인생도 정말 많이 낭비되지만 고통도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18절을 보면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땅 세겜 성읍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야곱에 대한 성경의 평가입니다. 분명히 야곱은 밧단아람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해서 가나안 땅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렇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보면 이 구절은 사실과는 조금 다릅니다. 일단 밧단아람을 떠나는 것부터가 몰래 야반도주를 벌여야 할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중간에는 또 어땠습니까? 삼촌 라반의 맹추격을 받아 붙들렸고 자칫하면 라헬이 라반의 우상을 훔친 일 때문에 큰 일이 날뻔 하기도 했습니다. 가나안 입구에 도착해서는 모든 재산과 가족들을 다 강건너로 건내 보내고는 정작 자신은 차마 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차에 천사를 만나 씨름을 벌이고 허벅지 뼈가 위골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축복을 받은 후 겨우 얍복나루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지만 가나안 땅을 건너자 마자 보게 된 것은 400명이나 되는 장정들과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 무서운 에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렇게 자신을 다가 오는 에서를 향해서 마치 석고대죄를 하는 심정으로 몇 걸음 걷다가 한 번, 몇 걸음 걷다가 또 한 번. 이렇게 일곱 번을 절하면서 다가갑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죠. 절은 복종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이제부터 자신은 형 에서에게 완전히 복종하는 종이 되겠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100퍼센트 진심은 아니었죠. 

다행히 에서가 그런 야곱을 받아주었지만 그래도 야곱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함께 돌아가자고 했지만 어린 자녀들과 짐승 새끼들 핑계를 대면서 뒤를 따라 갈테니 형이 먼저 가라고 돌려 보냅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세겜의 아들 하몰에게서 작은 땅덩어리를 사서 거기 머물게 됩니다. 약속의 땅,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집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도 돈을 주고 산 땅에 자리를 잡습니다. 야곱이 이 곳 이름을 ‘짐승우리들’이라는 뜻의 숙곳이라고 짓는데요. 이 지명이 참 재미있습니다. 야곱은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어도 집이 아니라 우릿간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는 말은 조금은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그 평안이란 결국 이름 뿐이고 껍데기 뿐인 평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편에서 본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야곱을 평안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밧단아람에서 빠져 나온 것, 추격해 온 삼촌 라반의 손에서 건져 주신 것, 그리고 형 에서의 마음을 그렇게 누그러 뜨려진 것 등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니까요. 우리는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라고 약속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 약속을 지켜 오셨고, 그래서 진짜로 야곱을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 오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것 저것 일을 저지르면서 자기 인생을 망가뜨려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따라 다니면서 그것을 정리해 주시면서 정말로 야곱이 가나안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해 주셨던 것입니다. 만약 야곱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따랐다면, 자신이 앞서가면서 이리 저리 일을 저지르지 않고 하나님을 앞세웠다면 야곱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아마도 훨씬 빨리, 그리고 훨씬 더 순적하게 그리고 완전히 자기 집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가 고향으로 되돌아와서 누릴 평화가 훨씬 더 커지고 완전해 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이루어 가십니다. 그 오래 전에 야곱과 하셨던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고 결국 야곱을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던 것처럼 계속 그 약속을 지키시고 또 이루어 가십니다. 그 약속이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든, 아니면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고, 인도자가 되어 주시며 또 모든 것이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든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약속은 정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키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이러한 신실하심이 아니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마음 놓고 믿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야곱을 닮은 기질입니다. 물론 우리는 야곱보다는 조금 나을지도 모릅니다. 아얘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불쑥 불쑥 우리 안에 있는 야곱을 닮은 기질이 나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처음부터 뻥 뚤린 대로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꽉 막힌 도로같이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답답하고 언제 도착할지 기약이 없고 진행속도는 느리기만 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음으로 출발했다가도 중간에 자꾸 야곱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데도 지금 당장 빨라 보이고 뻥 뚫린 것처럼 보이는 그런 길에 눈길을 주고 그 길로 방향을 틉니다.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예기치 못했던 공사현장도 맞딱뜨리게 되고 추돌사고 때문에 길이 막히기도 하죠. 그렇게 정말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자꾸 자꾸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언제나 우리에게 꼭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과 인내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까지는 우리가 우리에게 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때로는 답답해 보이고 느려 보이는 길을 묵묵하게 한 참 동안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속도가 나고 시원하게 길이 열립니다. 그게 현실적인 길이든 우리 마음의 길이든 정말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신다는 말의 의미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나중에 결산해 보면 훨씬 편하게 그리고 훨씬 더 빨리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매순간 어김 없이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시며 약속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문득 문득 내 안의 야곱이 고개를 들 때마다 이런 하나님을 생각하시며 묵묵히 가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앞서 가시지 마시고 하나님을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고 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살아가는 복을 놓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