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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2.18. 새벽예배 -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창세기 118)



창3516to22 -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창118).pdf


20140218D (#01).mp3.zip





본   문 : 창세기 35장 16-22절



요즘 우리나라에는 한 가지 커다란 근심이 있습니다. 사실 커다랗게 떠들어 대는 이런 저런 이슈들은 이 근심거리에 비교한다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근심거리란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이 줄고 있으며 그래서 인구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한 사회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가장 먼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요즘 두 자녀 이상을 낳는 가정보다는 한 자녀만을 낳는 가정이 더 많기 때문에 이런 추세로 한 세대나 두 세대가 지나가면 우리나라는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될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한 가족의 미래가 달려있는 가정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사실 한 가정은 한 사회와 국가의 일부분이라고 할 때, 가정에 자녀가 생겨나는 일은 그저 개인적인 의미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가정에 자녀가 태어난다는 것은 한 가정의 미래가 열렸다는 의미인 동시에 또한 한 나라의 미래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믿게 해주는 희망 넘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특히 구약성경이 이야기하는 복중의 복은 자녀를 낳는 복이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레아와 라헬 간의 아이 낳기 경쟁을 지켜 보았는데요. 이들이 자신이 아이를 낳고 낳지 못하는 일, 그리고 더 많이 낳고 적게 낳는 일에 그렇게 민감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녀가 곧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여인에게 한 가문의 미래를 열고 닫는 막중한 책임과 특권이 주어져 있었음을 생각해 볼 때, 자녀를 출산하는 일은 결혼한 여인들이 가장 큰 관심과 가치를 두는 일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자녀를 출산하는 일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는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고방식이죠.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니 하나님이 이 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실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라헬의 출산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라헬은 네 명의 아내 중에서 야곱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라헬에게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복은 허락하셨지만, 그 대신 자녀, 특히 아들을 낳는 복은 많이 주지 않으셨습니다. 레아가 6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은 반면에 라헬은 아들 둘을, 그것도 굉장히 힘들게 얻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라헬은 두번째 아들을 낳고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출산이 너무나 난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귀한 자녀가 태어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또 한 사람의 죽음을 가져오는 일이 된다면 그 출산이 기쁜 일이기 때문에 더욱 더 슬픈 그런 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며칠 전 동계 올림픽을 지켜보다가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가 금매달을 땄을 때 저는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 국기를 휘드르며 환호하는데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슬퍼 보이든지… 저는 안현수 선수나 그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 감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헬은 두번째 아들을 낳고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게 너무 슬펐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벤오니’ 그러니까 ‘슬픔의 아들’이라고 이름 붙여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그렇다고 해서 그 아들을 평생 슬픔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음은 비슷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른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이라고 붙여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라헬을 에브랏에 장사지냈습니다. 야곱은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으로 돌아왔고 이제 자기 자리로 되돌아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내 아들이 태어나는 가장 기쁜 날 유일하게 사랑했던 아내, 14년을 고생하면서도 그 세월을 며칠 처럼 여기게 해 주었던 그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커다란 기쁨 속에 가장 큰 상실의 슬픔이 들어 있었습니다. 오른 손처럼 여기는 아들 속에 눈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야곱은 가족들을 이끌고 에델망대를 지나서 장막을 쳤습니다. 그렇게 슬픔을 달래고 드디어 헤브론 지역으로 들어와 정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야곱에게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야곱의 맏아들인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했던 것입니다. 그 과정이 어떠했든지 간에 이것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단순히 성적인 타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그것을 정식으로 빼앗으려는 시도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끝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은 야곱에게서 야곱의 아들 세대로 넘어갑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이야기는 성경이 야곱의 인생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야곱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이 나고 있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왜 거의 평생을 치열한 다툼과 거짓, 그리고 속임수로 점철된 삶을 살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둘째 아들이라는 것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자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가문을 세우고 싶어했다는 뜻입니다. 그의 삶이란 그런 점에서 버젓히 자기 이름으로 시작하는 가문을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의 말년에 그가 그렇게 힘들게 이룩한 가정과 함께 고향으로 되돌아 왔을 때 오히려 그의 가정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장 기쁜 날에 가장 슬픈 상실을 경험해야 했고, 또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맏아들이 자기 권위를 빼앗으려고 자신을 모욕하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편 127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의 일찍이 일어나며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이 말씀은 제가 인생을 생각할 때마다 자주 떠올리고 묵상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인생은 정말 이 말씀이 있는 그대로 증명된 인생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신실하셨습니다. 내일 마저 생각해 보겠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모두 지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은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본대로 정말 허무한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복을 주시고, 위험할 때 보호해  주셨고,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 주셨지만 그래도 그의 인생은 결국 남는 것이 없는 허무한 인생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시편 127편에서 그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집을 세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집을 함께 세우지 않으시면 결국 그 수고가 헛됩니다. 사람이 성을 지키려고 밤새 파수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성을 함께 지켜주지 않으시면 그 성은 작은 실수 하나로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라지고 만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던 것보다 못한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허무한 그런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세우셔야 하고 또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합니다.


야곱의 인생은 우선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인생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누구도 자기 인생을 만만하게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우시는 분도 지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지키시도록 의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주체가 되고 주님이 조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체가 되고 나는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며 주님이 정하시는 방향 안에서 주님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 마치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훌륭한 태도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굉장히 소극적으로 들리고 못난 소리로 들리지만 이것이 성경이 우리 인생에 대해서 들려주는 가장 지혜로운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이 야곱의 인생이 야곱이 가장 집착했고 또 소중하게 여겼던 그 부분에서, 그것도 거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가장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또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에 대한 바른 시각을 품게 하려는 것일 것입니다. 


항상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이 세우시게 하시고 또 하나님이 지키시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내 인생의 조력자가 되는 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있는 우리의 삶이 언약 안에 있는 삶 답게 든든하게 세워지고 또 꽉 찬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세우시고 지키시는 은혜 가운데 약속 안에 사는 사람다운 든든하게 세워지고 꽉 찬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