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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2.19. 새벽예배 - 야곱의 아들은 열 둘이라(창세기 119)


창3523to3643 - 야곱의 아들은 열 둘이라(창11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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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35장 23-36장 43절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이 말은 지금은 조금 덜 하지만 예전에 우리나라가 잘 살지 못하던 시절에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모으는 역할을 했고, 또 그렇게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예수를 열심히 믿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단골메뉴같은 메세지였습니다. 물론 정말 이 말 그대로 된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고 하는 일들이 잘 풀렸던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말이 꼭 진리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 해도 부자가 되질 않습니다. 부자가 되기는 커녕 더 가난해 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보면 대개는 둘 중의 한 쪽에  속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쪽에서는 하나님께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도 열심히 예수 믿었는데 왜 나한테는 복을 주지 않느냐고 투덜거립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영적인 좌절에 빠집니다. 예수 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데 자신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으시니 자신은 예수를 잘못 믿고 있다는 영적인 열등감에 시달립니다. 또 예수 믿고 복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말에 예수를 믿었으니 복을 받으면 예수 믿는 목적이 끝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받고 나서 부터는 신앙이 흐지부지해 지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받은 복 누리려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이미 충분한 복을 받았으면서도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해서 복에 매달려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신앙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복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메세지가 만들어낸 아주 심각한 영적인 부작용들 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 안에는 여전히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는 메세지가 울려 퍼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런 메세지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런 부작용들은 다른 문제로 놓는다면, 과연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이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일까요? 물론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많이 받게 해 주시겠다는 수많은 약속들을 기록하고 있고 또 그 약속대로 복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오히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겼기 때문에 핍박을 받고 고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말라기 1장 2-3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고…” 참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지만 이것이 바로 야곱과 그의 형인 에서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증언입니다. 하나님의 편애는 이 두 사람이 리브가의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뱃속에 있는 쌍둥이 아들 중에서 형이 아니라 동생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장자권을 주면서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정이야 어쨋든 결국 동생인 야곱이 장자권을 가지게 되었고 또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에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차별을 받았습니다. 장남이지만 장남의 권리도 얻지 못하고 장남으로서의 축복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야곱은 어마 어마한 복을 받아야 하고 에서는 박복한 삶을 살아갈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야곱이 복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야곱의 못된 성품과 부도덕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 야곱과 함께 하셨고 그에게 많은 재산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쨋든 네 명의 아내에게서 13명의 자녀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참 크고 특별한 복입니다. 그렇다면 에서는 어때야 할까요? 야곱이 장자권도 장자의 축복도 다 가져가 버렸으니 받을 복이 없어야 정상일 것입니다. 적어도 야곱보다는 훨씬 복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중간의 두 곳을 제외하면 36장 전체가 에서의 족보인데요. 정말 어마 어마합니다. 우선 36장 1절부터 9절은 에서가 세 명의 아내를 얻어 살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도 엄청난 재산을 주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그는 이미 야곱을 만날 때 400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야곱에게로 왔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소유했던 사병들보다도 훨씬 더 큰 규모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아브라함보다도 더 부자였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6절을 보면 에서가 결국 야곱을 떠났다고 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두 사람의 재산이 너무 많아서 헤브론의 마므레 지역을 떠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그 때부터 세일산지에 거주하게 되는데, 거기서도 에서의 자손들은 엄청나게 불어납니다. 15절 이하를 보면 에서의 자손에게서 나온 족장들만 14명입니다. 그리고 31절 이하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생기기도 전에 에돔 땅에는 수많은 왕이 시대를 이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에서가 살던 지역이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세일 산, 에돔의 땅에는 그러한 번영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는 동안에도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고 또 광야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택함을 받은 것도 야곱이고, 또 장자권을 가지고 장자의 축복까지 받은 것도 야곱인데 야곱 개인의 역사 뿐만 아니라 야곱을 통해 생겨난 열 두 명의 아들들이 족장이 된 이스라엘 또한 에서와 그의 자손들이 만들어 낸 역사에 비해 훨씬 빈약하고 빛이 나지 않는 역사만을 기록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장자권을 지닌다는 것, 또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은 ‘… 보다 더 많은’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또 복을 주십니다. 그렇지만, 그 복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받는 복보다 더 많은 복이 아닙니다. 또 더 잘 믿는다고 무조건 더 많이 주어지는 그런 복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조건 부자는 다 예수믿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습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두번째는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인 복은 영적인 복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복들은 몸을 입고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많든 적든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인 복들, 특히 구약성경이 말하는 물질적인 복들은 영적인 복들의 희미한 그림자입니다. 일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가장 타락한 시기에 물질적이고 정치적으로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도 야곱이고 또 더 사랑하신 것도 야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더 잘 살고 더 번성한 것은 에서였다는 성경의 증언은 우리가 복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요청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말,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이 반드시 우리를 현실적으로 잘 되게 해 주신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복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불편함과 손해를 감당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 분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과 복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해답을 이후에 이어지는 야곱 자손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에서에 비해서 큰 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당대에 뿐만 아니라 자손들 세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과 야곱의 가족들은 아브라함의 복을 온 세상에 전달해 주는 전달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복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턱없는 부족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세상에 약속된 메시야가 태어나게 하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복도 꼭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복은 우리가 참으로 복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저 확실치 않은 참고사항에 불과합니다. 혹시 여전히 우리 머리 속에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공식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 사고방식을 빨리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신앙에 대해서 오해하기가 쉽고 하나님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것 자체가 이미 최고의 복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 그래서 구원얻은 백성이 되었으며 또 그래서 하나님 나라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이니까요. 혹시 사시다가 ‘나는 왜 복이 없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이 상하시거든 야곱과 에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에서의 복이 아니라 야곱의 복을 이어받은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눈에 보이는 복의 있고 없음 때문에 이미 받은 영원한 복을 즐거워 하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