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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3.13. 새벽예배 - 씨를 뿌리는 자가(사순절 3)



3. 마1301to09 - 씨를 뿌리는 자가.pdf


20140313D (#1).mp3.zip





성경본문 : 마태복음 13장 1-9절



오늘 우리가 사순절 둘째 주간의 네째 날을 맞이하여서 함께 묵상할 본문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로 너무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과 말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봄이 되어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들에 나갑니다. 들에 나가서 씨앗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밭고랑을 갈고 그 고랑에다가 조심스럽게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기 저기 씨앗을 흩뿌립니다. 그래서 씨앗은 갈 가에 떨어지기도 하고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기도 하고 가시떨기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도 있었습니다. 씨앗의 운명은 그 씨앗 자체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씨앗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바로 그 씨앗이 떨어진 땅이었습니다. 먼저 길가에 떨어진 씨앗들은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오히려 싹은 빨리 나왔지만 뿌리가 없으니 나중에 해가 나온 후에는 그 열기에 바싹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가시떨기의 씨앗을 숨기고 있던 땅에 떨어진 씨앗은 처음에는 잘 자라났지만 결국 자기보다 빨리 자란 가시나무에 그 기운이 가로 막혀서 더 이상 자랄 수가 없었습니다. 열매를 맺게 된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 밖에 없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들만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18절 이하를 보면 이 비유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지만 오늘 본문만 보면 이 말씀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농부와 씨앗은 땅을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은 것은 좋은 땅 하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씨앗은 19절을 보면 천국 말씀, 그러니까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사람을 가려가면서 씨앗을 뿌리지 않으셨습니다. 지질 검사를 면밀하게 한 후에 땅에 등급을 매기고 나서 그 등급에 따라 씨앗을 뿌릴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지도 않으셨고 또 어떤 땅에는 좋은 씨앗을 뿌리고 어떤 땅에는 좋지 않은 씨앗을 뿌릴 것인가를 결정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때가 되니 들에 나가서 마치 눈 감고 마치 새에게 모이를 주듯이 씨앗을 여기 저기 흩어 뿌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뿌려진 씨앗은 완전히 똑같은 씨앗이었습니다. 그 씨앗의 이름은 ‘천국복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책임이거나 혹은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진 복음보다 훨씬 질낮은 복음이 들려졌다고, 그래서 복음을 믿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의 삶에는 복음이 맺는 열매가 맺혀지지 않았다고 핑계를 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열매가 맺혀지지 않는 것은 순전히 땅 때문입니다. 씨앗을 받아들인 땅, 그러니까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 때문입니다. 결국 듣는 사람의 마음 상태가 복음을 들을만한 상태인가 아닌가가 열매가 맺힐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가지는 교훈입니다. 주님은 씨앗에도 문제가 없고 씨 뿌리는 자에게도 문제가 없으니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밭을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기에 알맞는 상태로 유지하고 또 가꾸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고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에게 소망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마음 상태는 분명히 말씀이라는 씨앗을 받아들여서 열매를 맺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어 있어야만 하지만 그 땅,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의 상태는 얼마든지 자기 결단과 애씀에 따라서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좋지 않은 땅에서 좋은 땅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말씀을 주시면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이 비유를 듣는 청중들 중에도 이런 저런 상태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었지만 주님은 그들 모두가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되기를 원하시면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만 하면 열매는 맺혀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주님이 이 말씀을 하기 전에 주님이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누가 내 어머니와 동생들이냐 나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어떤 사람들로 부터 예수님의 가족이 밖에 와 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나의 가족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어떤 조건을 가진다고 해서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나라의 상속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늘나라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누가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요 또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을까요? 의지가 강한 사람일까요? 생각이 바른 사람일까요? 그런 것들이 분명히 도움이 되겠지만 진짜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영혼 깊숙하게 받아들여서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여 열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바로 하늘나라의 백성이며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또 수난을 당하시고 죽음까지 당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또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사순절을 지내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죽음을 당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면서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친 백성을 만드시고 또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진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그것을 삶의 열매로 맺게 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 상태를 잘 점검하고 또 우리 삶에서 맺혀지고 있는 말씀에 대한 순종의 열매를 잘 잘 가꾸어 가는 일은 결국 우리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여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 이유가 단지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였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진짜 상속자가 되고 하나님의 진짜 자녀들이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였음을 묵상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도 그 분의 은혜를 제대로 생각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말씀을 향해 굳어져 버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마음을 되돌려서 말씀을 깊이 받아들여 열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땅으로 바꾸는 것이 이 사순절을 가장 사순절 답게 보내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순절 기간 동안에 우리 마음의 구석 구석이 주님의 말씀을 달게 듣고 순종할 수 있는 좋은 땅이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당하신 수난과 죽음의 참 목적을 이루어 가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