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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3.14. 새벽예배 - 4.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사순절 5)


4. 눅0501to11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pdf


20140314D (#1).mp3.zip





성경본문 : 누가복음 5장 1-11절


사순절 둘째 주 다섯번째 날의 말씀은 누가복음에 나온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아침에 바닷가에 나와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여 왔고,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시기는 커녕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밀려서 게네사렛 호수에 빠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보시니 호수가에 배가 두 척이 있었습니다. 그 배들은 밤새 그 호수에서 고기를 잡느라고 밤을 세운 어부들의 배였습니다. 이제 어부들은 밤새 계속된 하루의 일을 마치고 고단한 몸으로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그 중의 한 배, 그러니까 시몬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사실 이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무례하고 황당한 일이지만 그 다음 예수님께서 하신 요구는 더욱 어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부들은 지금 밤새 고기잡는 일을 하고 돌아와서 다음 날 준비를 해 놓고 집으로 돌아가 고단한 몸을 쉴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배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배를 조금 빌리자고 하는데 그냥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람들을 가르칠 동안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호수 위에 띄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나사렛 예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호수가로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하던 일을 계속하던 것으로 보아서 예수님께 대해서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청을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을 배에 태워 호수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배를 띄워놓고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물론 그 배에 앉아서 그 배가 떠내려 가지 않게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대뜸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요구였습니다. 그 시각에는 물고기가 깊은 곳에 있을 때가 아니었고, 또 물고기가 잡히는 시간도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그 말을 한 사람이 어부도 아니 목수라니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정말 주제넘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그러니까 시몬은 예수님을 태운 배 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분의 말씀 속에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상식적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그 요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의 이야기 중에서 앞 부분은 베드로의 상식과 경험에 대한 내용입니다. 경험상 밤새 그물을 내렸는데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면 그 이후에는 물고기를 잡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니 하나마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물을 내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난생처음 경험하는 만선이었습니다. 배 하나로 모자라서 나머지 배 하나를 더 불러서 두 배를 가득 채우고서야 겨우 호수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경험을 한 직후에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별로 큰 관심도 또 그렇게 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질 때도 그냥 한 번 그렇게 해 본 것이지 그렇게 그물을 던지면 그렇게 만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만선은 지금까지의 어부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엎고, 자연법칙을 뒤집어 엎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물론 베드로 자신은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을 떠나달라고 간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 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그리고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배를 육지에 댄 후에 그렇게 많이 잡힌 고기도, 그물도 그리고 배까지도 그냥 내버려 둔 채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베드로가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가 하는 자초지종을 담고 있지만 또한 우리의 신앙에 대한 아주 중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첫째, 이 이야기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로 다가 오셨음을 말해 줍니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예수님께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소문은 들어 대충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는 그저 자기 관심사에만 사로 잡혀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일부러 그의 배를 빌리셔서 그 배에 타시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듣게 하셨고, 그래도 여전히 시큰둥 하는 그에게 정말 말도 안되고 이해할 수도 없는 만선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베드로에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넌지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첫번째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중에서 처음부터 지금처럼 예수를 믿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주님이 가까이 다가오셨고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인식하게 만드셨으며 그렇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이제는 신앙이 그리고 예수님이 삶의 의미인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자기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그저 주님이 다 하시고 은혜가 모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이란 결국 순종으로부터 비롯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처음의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긴가 민가할 수도 있고, 또 여전히 상식과 자기 경험을 앞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순종이라고 하기도 힘든 순종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순종이라도 순종이 있어야 우리가 예수님과 진리를 경험할 수 있게 되고, 바로 거기서 우리의 믿음은 시작되고 또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믿음이 성장해 가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니 신앙은 결국 항상 나의 머리에만 머물러 있는 나의 현실과 상관이 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쨋든 순종하지 않으면 진짜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셋째, 신앙이란 결국 깊은 곳에다 그물을 던지는 것이라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얕은 곳에 대해서 매력을 느낍니다. 일확천금을 꿈꾸고 어떻게 하면 적게 투자하고 많이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적게 일하고 많이 벌어들일 수 있을까를 궁리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신앙생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적게 개입하고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을까를 궁리하죠. 그러나 주님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깊은 곳에다 고기를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깊은 곳에 가야 진짜 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서 주신 주님의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자체가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었으며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한 부르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르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약속이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확신하는 것은 성도로 살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얄팍한 삶을 사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얄팍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신앙의 삶은 실제로 진검승부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진검승부를 하면서 힘들더라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진짜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넷째, 결국 신앙이란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결단입니다. 결국 주님을 따르는 결단이 믿음을 증명해 줍니다. 처음 신앙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시작되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신앙은 언젠가는 그 무게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로 움직여 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물고기를 잡아 올리던 사람도 결국에는 하늘나라를 위해 일하는 어부가 되기 위해 스스로 헌신하고 결단하는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좁디 좁은 자기 자신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정말로 영광스럽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에게 주님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왜 주님이 꼭 필요한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믿음이 순종으로 드러나게 되고 또 순종을 통해서 성장해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믿음으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우직하고 깊이 있는 삶을 살아서 주님이 주시는 것들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렇게 확인되고 증명된 믿음으로 우리 자신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하늘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시고 또 생명을 내어주신 이유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시며 또 완성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을 바라보고 또 우리의 믿음을 바라볼 때, 우리는 참된 영적인 성장과 믿음의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사순절은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믿음의 복을 주시려고 주님이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절기입니다. 이 절기 동안 주님을 많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절기가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더 견고하고 영광스러운 믿음을 세워가는 귀한 절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