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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3.19. 새벽예배 -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사순절 3-3)



6. 막1228to31 -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pdf


20140319D (#1).mp3.zip






성경본문 : 마가복음 12장 28-31절



흔히들 어떤 사람의 신앙이 형식으로 흐를 때,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신앙을 일컬어 ‘율법적인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좋은 신앙을 가늠하는 기준이 어떤 조항을 지키고 지키지 않고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면 신앙이 좋다고 여기게 되는 그런 사고방식 위에 신앙이 세워질 때 그 신앙을 ‘율법적인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율법적인 신앙은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의 정해진 의무를 더 지킬 때마다 그만큼 자신을 더 의롭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사고방식 위에 세워진 신앙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와 복 또한 내가 그런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기도 많이 했으니까, 헌금 많이 했으니까,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했으니까 나는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더 큰 문제는 이런 기준을 다른 사람의 삶과 신앙을 평가하는데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키는 의무를 지키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쉽게 정죄하게 되고, 또 그 사람들에 대해서 영적인 우월감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바로 이런 신앙의 대표주자였습니다. 그들은 정말 율법을 지키는데 선수였습니다. 항상 정해진 것 이상으로 지켰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자기 의가 되어 그들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구분선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궁금해 하면서 항상 논쟁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계명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런 계명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했던 이유는 그 계명이 중요하고 큰 계명일수록 그것을 지켰을 때 더 큰 점수를 얻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배점이 높은 문제를 맞추려는 학생의 노력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느 날 서기관 중의 하나가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논쟁하시는 것을 지켜보다가 예수님이 참 지혜롭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는 바로 이 질문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가장 점수가 높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서기관은 제일 큰 계명 하나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계명 두 개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대답을 마치시면서 다시 그 두 가지를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계명들”이 아니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두 가지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둘째, 실은 이 두 가지가 한 가지라는 것입니다. 원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말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우리 머리 속에서만 이 두 가지가 나뉘어져 있을 뿐이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두 가지는 원래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참 힘든 말씀이지만 우리로서는 그저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들의 신앙을 바라보는 방식이니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만 치중하면서 그것만으로도 올바른 신앙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신앙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정면충돌할 때를 제외하면 두 사랑은 언제나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서기관은 가장 중요한 계명에 대해서 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속에 우리의 신앙이 율법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랑은 계명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사랑이 최고의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또 최선을 다해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우리에게 사랑하라는 명령을 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사랑하게 될 때만 모든 것은 율법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또 자기 의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무엇을 해 주고도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무엇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고 싶어서 하게 됩니다. 세상에 자기 아내 사랑한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남편이 없고 자기 자식 많이 사랑한다고 그걸 내세우는 부모가 없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이 되고, 또 그 일을 했을 때 자신 또한 가장 큰 기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고 그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랑하라는 명령을 주시고 그것이 계명 중에서 첫째가 되는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신앙이 사랑이 될 때, 그 때에만 신앙은 율법으로 변질되지 않을 수 있고 또 그 사람 스스로도 가장 기뻐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행하신 일이 바로 그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을 양식으로 삼았을 정도로, 예수님을 가장 만족하게 하고 풍성하게 채우는 일로 여겼을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또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실 정도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두 개의 계명, 두 개이면서 하나인 가장 큰 계명을 완전하게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분이셨고 또한 행복한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그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사랑 안에는 자기 부인의 희생도, 그리고 오해를 받는 일도 들어 있었지만 그 온전한 사랑이 예수님을 가장 기쁘고 행복한 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참된 신앙이 되는 출발점에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또 그렇게 우리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들을 사랑하게 될 때, 그 때 우리의 신앙 안에는 억지도, 자랑도 없어지게 되며 기쁨과 만족만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장 큰 계명, 그러니까 신앙이 참된 신앙이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계명으로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또 그렇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랑해야 합니다. 일단은 그렇게 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은 비로소 참된 신앙이 되어져 가기 시작할 수 있고 또 더 온전한 신앙으로 변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순절은 우리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념하는 절기이지만,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이유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또 우리들을 지극히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우리들 또한 이 절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사람들을 진실로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또 주님이 주신 이 가장 큰 계명에 순종하는 연습을 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은 꼭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를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은 기쁨이 되고 만족이 되며, 그래야 신앙은 우리의 자랑과 자기의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가장 큰 계명만을 생각하시고 그 계명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을 닮은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