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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3.28. 새벽예배 -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사순절 4-5)



12. 마1001to15 -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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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태복음 10장 10-15절


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각자가 다 누리는 은혜가 다르죠. 물론 은혜를 주시고 안 주시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이 누리면서 사는 은혜의 크기가 다른 것이 하나님의 책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는 일에 있어서는 성도들을 차별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게 되어 있던 인간이 자기 힘에 의지해서 살아보려고 하나님께 대해서 독립선언을 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바램이 너무도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 그러니까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던 그 복된 상태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일에 있어서는 절대로 차별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 각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다르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의 책임이며 그 이유가 우리 쪽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전도실습을 보내시면서 그 실습을 할 때 꼭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일단 사탄과 실력대결을 펼칠 때 승리할 수 있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에 의지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단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인의 고을에도 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얼핏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대우 하시는 것 같지만 이것은 모든 일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적절한 순서가 있게 마련인데 우리는 그것을 지켜고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획과 일정은 자신이 잡아 놓고 그 계획을 이루는 일에 대해서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데, 그것은 신앙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더디 가더라도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일정표에 나의 속도와 방향을 맞추어야 합니다. 거창한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계획과 일정이 없으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훨씬 더 올바른 것이고 그것이 정말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부작용이 없어지게 됩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징계이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특별히 개설하신 학교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번째로 강조한 내용은 제자들이 지켜야 할 여행과 생활의 원리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기까지는 제자들의 경제생활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라고 한다면 뒤에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머물 곳, 그러니까 거처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동네에 들어 갔을 때, 누군가가 영접하면 적어도 그 마을을 떠날 때까지는 그 집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갈 때는 항상 그저 평안만 빌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어떤 곳에 갔는데 전혀 영접하고 환영하지 않는다면 그 곳에서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성읍에 대한 처리를 주님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갑니다. 갈 때는 그저 옷 한 벌, 신발 하나, 그리고 지팡이 하나만을 들고 여분의 돈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영접하는 집이 있으면, 그 집에 평안을 빌어주고 그 동네를 떠날 때까지 그 집에만 머뭅니다. 영접하는 집이 하나도 없을 때는 그저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고 그 동네를 떠나면 됩니다. 그런 식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이것은 전도여행이 아니라 마치 신선놀음 같아 보일 정도입니다. 단 며칠 간의 여행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여행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까지 끌어 모아서 복음을 전해야지 거절한다고 그냥 떠나서는 안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여행도 불가능하고 또 복음을 전하는 일도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는 여행은 물론이고 복음 전파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정말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런 식으로 여행을 하며 그런 식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면 상식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꼭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우선 옷 한 벌,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베낭도 없고, 돈주머니도 없이 여행을 떠나려면 그렇게 했을 때 그 이후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옷이 떨어지면 옷을 주실 것이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먹을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을 아주 실제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신뢰해야 합니다. 복음전도라는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간 것인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그냥 그 마을을 떠나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만약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려면 그 사람에게는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사람을 구원하고, 또 내가 전하는 복음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박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앙갚음을 하거나 악한 감정을 품을 필요도 없습니다. 분노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완벽하게 처리할 것입니다. 용서를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고 또 그 일에 대해서 벌을 내리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그런 구체적인 일들은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전도자는 그저 전도하는 일에만 전념하면 됩니다. 


한 번 쯤은 그저 시험 삼아 믿음이 없어도 주님의 말씀처럼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들이 몸에 익은 삶의 원리가 되려면 제자들에게는 반드시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되어 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실습은 실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실습은 항상 실전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의 실습은 제자들이 앞으로 복음을 전할 때, 그대로 따라야 할 원리들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시키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날의 실습은 어느 날 갑자기 이것 하나만 외따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커다란 원리 안에서 실습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원리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라는 성도가 성도로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주님은 그 날 제자들에게 이것이 정말 진리인지 아닌지, 현실에서도 통하는 방식인지 아니면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지를 실험해 보고 확인해 볼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며칠을 그런 상태로 여행하면서 부족함이 없었으며 또 복음은 복음대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끙끙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짐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날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고 믿는대로 살았더니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면 충분하다는 것을 그의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은혜로운 기회를 얻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한 은혜는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은혜로 충분할 만큼의 은혜, 은혜 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은혜를 받으려면 나의 머리나 세상의 상식이 아니라 믿음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모든 은혜를 받는 하나 밖에 없는 손인데 은혜란 그래서 믿음의 크기에 따라서 주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믿음을 달라고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까지도 넉넉히 책임져 줄 수 있는 능력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니면 믿음이 부족하더라도 눈 한 번 질끈감고 믿음에 따라 모험을 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능력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 주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믿음으로 사는 첫 걸음이 두번째 발걸이 되고 우리가 사는 내내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죽음을 당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믿음은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을 믿는 믿음, 그래서 그 약속이 정말로 현실이 되게하는 그런 믿음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삶의 근심과 걱정을 이기게 하는 믿음, 그래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계획도 일정도 그리고 경제적인 필요에 있어서 까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살며 일하도록, 그렇게 세상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우리를 얽어매는 두려움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겨우 겨우 구원얻게 하는 믿음에 머물러 계시지 마시고 근심과 걱정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큰 믿음을 탐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단 하나 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되게 하십시오. 그래서 은혜로만 사시고 은혜로만 일하는 여러분이 되고, 참된 믿음의 능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증거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