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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4.03. 새벽예배 - 나는 선한 목자라(사순절 5-4)


13. 요1010to15 - 나는 선한 목자라.pdf


20140403D (#1).mp3.zip





성경본문 : 요한복음 10장 10-15절



 

오늘 본문은 어제의 본문에서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목자가 되신다는 말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어 주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양의 문은 목자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양의 문인 목자를 통해 우리에 드나 들어야 안전할 수 있고 또 참된 꼴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우리의 영혼은 안전할 수 있으며 또 하늘의 참된 꼴로 배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인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양이라면, 그리고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 안에 머물고 있다면 이 분별력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지만 또한 절대로 다른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고 또 따라가지 않으려는 단호한 결단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듣기에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가 아니라 나에게 들려지는 여러 음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비교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성경과 다르다면 나에게 아무리 좋아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안전할 수 있고 하늘의 꼴로 배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라는 말씀으로 당신의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양이 되어 그 분의 돌보심과 인도를 받으며 그 유익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바로 예수님은 항상 최고로 선하신 나의 목자라는 확신입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해 가더라도 나의 목자되신 예수님은 결국 나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가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양이 목자에 대해서 가져야 할 신뢰입니다. 이런 신뢰가 없으면 인도를 제대로 받을 수 없고, 인도를 제대로 받을 수 없으면 주님의 목자되어 주심의 진짜 유익과 능력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런 철썩같은 믿음이 굉장한 믿음이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목자의 음성이 아닌 다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참된 믿음이라고 말하는 믿음은 항상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님을 그야 말로 흔들림이 없이 신뢰하는 믿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우리 예수님을 나를 위한 선한 목자로 믿는 믿음이 없거나 많이 부족하다면 이 믿음부터 구하시고 이 믿음부터 챙기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 복을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여러분이 이 믿음을 어느 정도라도 확실하게 소유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욕심을 친구삼아 살았던 삶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실한 삶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항상 애쓰시고 신경쓰시는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양들을 진실로 사랑하는 목자라면 아마 여러분도 양들을 위해서 그것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신경쓰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인간 목자가 아니십니다. 인간 목자라면 양이 풍성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과 삶의 목자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든든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여러가지 일들 중의 하나로 우리를 돌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주시기 위해서, 그 이유와 목적 때문에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든든한 은혜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양들을 진실로 알고 아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일 때문에 오셨고, 또 그 일만 하신다니 말입니다. 이 사실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든 우리의 풍성한 생명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돌보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려고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셨고 우리의 목자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어떤 목자가 자신의 목자 노릇을 그저 죽어가는 양을 살려 놓거나 혹은 그저 목숨이나 붙어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 하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양을 팔아먹으려고 해도 그 양이 토실토실 건강하게 자라도록 좋은 꼴을 먹이려고 애쓸 터인 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냥 목자가 아니죠.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과연 우리 영혼을 살려놓고서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니 더 이상은 모른다고 하실까요?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살려놓는 것은 그야 말로 시작이고 또 기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목자노릇을 절대로 거기서 멈추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이 주신 새 생명을 얻고 나서 그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도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고 또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의 공급자가 되어 주십니다. 


여러분의 현실 속의 경험들 때문에 이런 예수님의 선한 목자되어주심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면 그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때로는 목자들은 맹수들이 공격해 올 때,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맹수들과 싸웁니다. 그러나 항상 목숨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럴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 뿐이죠. 그런데,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정말로 목숨을 내어 주신다고 말씀하셨고 결국 그 말씀 그대로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선하신 목자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선하신 목자이십니까? 양들을 위해서 정말 목숨을 내어주셨을 정도로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의 양들이 우리들의 생명을 살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예수님께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시는 일을 포기하시거나 대충 하시겠습니까? 이미 목숨을 내어 주셨는데 그렇게 해서 살려 놓았는데 그 다음에는 나 몰라라 하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시라는 것을 전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부정적인 현실 속의 경험들은 항상 우리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감정은 전혀 믿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래서 감정에 믿음을 묶어 놓으면 그 믿음은 항상 불안하고 언제든지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 우리의 믿음을 묶어 놓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이 예수님의 선한 목자되어 주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느낌을 통해서 입니다. 감정이 흔들리고 그 다음에 생각이 흔들리고 그 다음에는 믿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현실이 예수님의 선한 목자되어주심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한다면 그 때는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오. 이미 예수님께서 그 분의 양인 나를 위해서 그 분의 목숨을 내어 주셨음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감정이 아니라 그 ‘사실’에 여러분의 생각을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십자가에 고정되어 있는 한, 예수님께서 나의 선한 목자시라는 확신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을 너무나 잘 아는 그 분의 양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생명을 내어 주셨지만, 우리는 그 분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앎이 우리의 믿음의 재료가 되고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실은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 위의 사랑도 변할 수 없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라는 사실도 변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으며, 더 풍성한 생명을 살게 하시려고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공급자가 되어 주고 계신다는 사실도 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목숨을 내어주시는 일로 자신이 얼마나 선한 목자인지를 증명해 보이셨는데, 다른 어떤 증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 예수님께서 여전히 우리의 선한 목자로 계신다는 것을 증명할 또 다른 증거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예수님께서 나의 목자시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불신앙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선한 목자시라는 확신이 흔들릴 때마다 십자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미 나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실 정도로 선하신 나의 목자라는 사실이 다시 확실해 질 때까지 그 십자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 또 그 일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속에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어 이 땅에서도 부족함과 두려움이 없는 주님의 양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