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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4.11. 새벽예배 - 곧 닭이 울더라(사순절 6-5)


18. 마2669to75 - 곧 닭이 울더라.pdf


20140411D (#1).mp3.zip





성경본문 : 마태복음 26장 69-75절



 

“나는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꿈은 이루어 진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물론 스스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낫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들은 그저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다시 힘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임시방편일 뿐, 보장이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이런 말 밖에는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습니다. 온 세상에 자기 혼자이고 자기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록 이런 말들이 근거도 희박하고 또 보장할 수도 없는 말이지만, 스스로에게 이렇게라도 말해주지 않고 또 이런 생각으로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아 가지 않고서는 적어도 밝고 건강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인생강연이나 혹은 성공특강 같은 것을 들어보면 결국은 그 메세지가 그 메세지입니다. 자신을 믿어라,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나, 여전히 그런 이야기들은 무언가 크게 부족하고 공허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든든하고 자유로운지 모릅니다. 우선 우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를 절대로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이 주어집니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 된다 안된다를 속단하고 거기에 자신을 맞춰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된다고,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불안해 하는 자기 자신을 달랠 필요도 없고, 미리 안된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럴 때 주어지는 것이 최고로 선한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이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끙끙거리며 살아가는 삶에만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불안하고 무의미한 삶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결과가 주님께 있고 주님께서 주시는 결과가 최선의 결과라는 것을 믿는다면 이러한 삶처럼 자유롭고 확신에 찬 삶은 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장담할 필요도 없고, 또 장담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도움이자 변수이니까요. 


인간이란 인류 전체의 운명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상황이라는 것이 항상 변하는 것이고 그렇게 변하는 상황 속에는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며, 또 막상 예측했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생각만 할 때와 직접 그 상황 속에 들어갔을 때는 그야 말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 함께 성경공부를 하던 집사님들에게 “만약 지금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을 했다고 제가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분들이 뭐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그런 용감한 장담이 나오는지 저는 사실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직 그 분들의 신앙이 그렇게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 자신으로말한다면 저는 지금도 그렇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모릅니다. 목숨을 걸만한 일 뿐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작은 일에 대해서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모든 상황이 주는 압박이 어떤지를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어느 정도의 압박을 견딜 수 있을지 그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닭 울기 전에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도대체 자신을 뭘로 보느냐는 듯이 펄쩍 뛰면서 자기가 목숨을 내놓을 지언정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예수님을 둘러싼 상황은 정말 대책을 세워놓을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갔고, 제자들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래도 용감했습니다. 멀찍이서 구경꾼을 가장해서 예수님을 따라 갔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저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합니다. 여기 저기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베드로는 부인했습니다. 사람 잘 못 봤다고 딱 잡아 뗐습니다. 두번째는 맹세하면서 세 번째는 저주까지 하면서 철저하게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수탉이 울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할 때까지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베드로는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얘졌습니다. 그제서야 예수님의 말씀,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는 말씀이 떠 올랐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깥으로 뛰쳐 나갔고 나가자 마자 글자 그대로 통곡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보통 사람의 평범한 모습을 지닌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조금 극적인 모습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그게 나 자신이건 혹은 다른 사람들이건 진실로 믿을만한 존재는 되지 못합니다. 특히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목숨을 걸고 충성을 맹세하는 베드로의 모습도 있습니다. 멀직이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습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아주 훌륭한 모습이죠. 충성스럽고 변함 없는 모습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우리 안에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 맹세까지 하면 예수님을 모른다고 잡아 떼는 베드로를 닮은 모습도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며, 또한 그 각각의 상황에서 어떤 베드로의 모습을 바깥으로 내놓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태도는 무엇보다도 겸손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대로’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음을 아는 겸손함, 그래서 항상 자기 자신을 조심스럽게 살피게 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겸손함은 무척 중요합니다. 이 겸손함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평상시에 자신을 살피고 조심하지 않게 되고 그만큼 실패하고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 그 겸손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겸손함 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은 그 겸손함 자체가 우리에게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능력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어떻게 변할지 모를 상황이지만 그 어떤 상황 속에 놓여지게 되더라도 주님 앞에서 크게 실패하지 않게 해 달라고, 그 은혜로 나를 꼭 붙들어 달라고 잊지 말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겸손하면 겸손할 수록 우리를 지키는 힘이 더 강해집니다. 기도가 겸손할수록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만큼 더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그래서 더 크고 강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자신감이나 자기 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나 자신을 상대화하고 하나님을 절대적인 분으로 신뢰하면서 그 믿음과 은혜를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삼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할 수 없어도 좋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분이시니까요. 나 자신은 믿을 수 없어도 좋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신뢰할만한 분이시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믿지 못해도 불안하지 않으며 우리가 할 수 없어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은 자기 신뢰를 내려놓고 그 신뢰의 중심을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 얼마나 성공하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신앙의 능력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래서 그 사람의 영적인 승리 여부도 결정하게 됩니다. 결과를 스스로 만들어 내려 하지 마시고 결과는 주님께 맡기십시오. 원래부터 결과는 주님의 몫이니까요. 그리고, 더욱 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이런 변화들이 일어나는 과정이 되게 할 때,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 자유롭고, 주님으로 인해 든든한 은혜로 사는 삶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은혜만 구하며 그저 정직하게 최선을 다함으로써 주님이 주시는 가장 온전한 열매들로 삶을 채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