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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5.07. 새벽예배 -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창세기 138)


창4201to05 -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창13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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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42장 1-5절




모든 일은 요셉의 말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애굽 땅에는 일곱 해 동안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풍년이 왔지만 그 기간이 끝나자 이번에는 정말 유래 없이 심한 흉년이 7년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걱정이 없었습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준비는 그저 애굽을 위한 준비가 아니었습니다. 고대의 근동지방이라고 불리는 아주 넓은 지역 전체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풍년은 어떤지 모르지만 흉년은 이 모든 지역이 함께 겪는 불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방 팔방에서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흉년은 당연히 야곱 가족이 머물던 가나안 지역까지 휩쓸게 되었고 그래서 야곱의 가족도 양식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애굽에 식량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아들들을 나무랐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얼굴만 보고 있느냐? 내가 들으니 애굽에는 양식이 있다고 하니 가서 사오도록 해라. 그래야 우리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막내인 베냐민을 제외한 나머지 열 명의 아들들은 애굽을 향해 양식을 구하러 떠났습니다. 막내는 야곱이 모든 아들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양식을 구하러 가는 여행에서 제외시켰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야곱의 가족이라고 해서 그 심각한 흉년에서 열외가 될 수는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야곱 가족은 그 당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던 가나안 땅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약속의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 가족은 이런 환란에서 면제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약속의 자손들이 약속의 땅에 머물고 있다는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하실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성도들은 대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만은 하나님께서 환란의 무풍지대에서 살게 해 주시면 좋겠다는 기대입니다. 물론 우리 삶에는 그런 일이 일정기간 동안 계속되기도 합니다. 정말 우리가 ‘복’이라고 부르는 것만 계속해서 받으면서 그 가운데서 걱정도 근심도 없이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나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에게도 어려움이 닥쳐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어려움들은 더 큰 그림의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야곱 가족은 물론이고 그 지역에 살던 모든 사람들은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가는 것 밖에는 전혀 다른 대안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애굽을 제외한 다른 곳은 그 어떤 곳도 농사가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른 곳에서 양식을 구할 수 있었다면 야곱의 아들들은 거기서 양식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게 거리상으로도 그렇게 위험성으로도 그렇게 훨씬 유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상황이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애굽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가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은 당연히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 흉년이 아니었다면 갈 일이 없었을 애굽이었지만 흉년 때문에 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되어질 일이지만 결국 이 발걸음은 이스라엘의 400년 동안의 애굽생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냥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들지 않고 애굽까지 데리고 가셨을까요?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양육되려면 가나안 족속들이 그 땅을 비워 주어야 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 당시에는 아직 가나안인들의 죄악이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낼 만큼 크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70명 남짓한 야곱의 가족으로는 그 험한 지역에서 그 곳 주민들과 싸우면서 한 나라로 성장해 가기에는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가족을 이스라엘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양육시키기에는 야곱이 머물고 있던 땅의 환경이 적절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양육하고 싶으셨고 그래서 애굽을 아직은 아기 같은 이스라엘을 커다란 나라로 양육하기 위한 편안한 요람으로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가나안에 흉년이 찾아오지 않았거나 혹은 애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야곱 가족은 절대로 애굽으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야곱 가족, 그러니까 미래의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셨던 것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애굽에 7년 동안의 엄청난 풍년을 주셔서 오직 애굽에만 양식이 있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야곱 가족에게 닥친 흉년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정이지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야곱 가족을 더 풍성하게 먹이시고 또 양육하셔서 이스라엘로 만들어 가시기 위한 과정의 한 단계에 속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앞을 내다보면서 살지 못합니다. 그저 바로 앞에 눈에 보이게 닥쳐오는 일만을 보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획과 약속을 가지고 이 세상의 역사를,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4절을 보면 야곱은 베냐민을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한꺼번에 모든 아들들을 다 잃어버릴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야곱을 십분 이해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들 하나라도 남아 있어야 집안이 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야곱이 어떤 사람인지 압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의 약속을 물려 받은 사람입니다. 스스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구요. 그런 점에서 야곱은 야곱 개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담고 있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야곱은 스스로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숯한 위기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의 인생을 그런 식으로 끝나게 하실까요? 그 모든 약속이 있는데 말이죠. 


만약 야곱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은 차치하고서라도 너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던 자신에게 주셨던 약속만 확실히 붙들고 있었더라도 그런 두려움은 가지지 않았을 것이고, 또 잠시 두려워 했다고 하더라도 금새 떨쳐 버리고 담대하게 대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 와서도 야곱은 여전히 뒷 일을 자기가 책임져 보려는 시도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약속이 있는데도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일들은 전부 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심지어는 우리 자신의 죽음일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풍년과 흉년을 사용하셨습니다. 애굽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는 곡식 한 톨 구할 수 없게 만드셔서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올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애굽을 요람삼아 야곱 가족을 이스라엘로 양육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신실함이고 또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또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확실합니다. 다른 것들 중에는 확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애굽에만 곡식이 있게 만드셨던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때 우리는 항상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물면서 담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는 행복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