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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수요일 저녁

2014.05.08. 새벽예배 - 꾼 꿈을 생각하고(창세기 139)


창4206to017 - 꾼 꿈을 생각하고(창13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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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42장 6-16절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려고 힘쓰며 그렇게 분별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편할 때는 그래도 순종하기 쉽지만 상황이 힘들 때는 순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때에도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운지를 잘 헤아리고 그것에 우리의 삶을 맞춰가야 합니다. 


요셉은 정말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미 우리가 여러차례 살펴보았듯이 갑자기 형들의 손에 팔려서 머나먼 이국 땅의 노예로 팔려갔고, 그랬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희망을 걸었던 사람에게 잊혀져서 감옥에 계속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똑같은 바람직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성실함과 정직함 속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 봤자 노예의 일이고 감옥 안에서 간수장이 해야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정직하게, 성실하게 일과 사람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지만 요셉은 그렇게 했습니다. 사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도 그는, 맡은 역할만 달라졌을 뿐, 전혀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성실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흉년이 찾아왔고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을 판 형제들이 애굽으로 식량을 사러 오게 되었습니다. 식량을 파는 일은 요셉이 직접 관장하던 터라 식량을 사려면 반드시 요셉을 만나야만 했습니다. 당연히 식량을 사러 온 입장이고 게다가 대국인 애굽의 총리 앞이니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 앞에 무릅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당연히 요셉은 그들이 자기 형제인 줄 알았고, 형제들은 자기들 눈 앞에 있는 애굽 총리가 요셉인 줄은 정말 꿈에도 알 수가 없었죠. 요셉은 형제들을 간첩으로 몰아서 가둬 버렸습니다. 우리가 후에 보겠지만 이러한 요셉의 행동은 굉장히 사려깊고 선한 목적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보자 마자 노발대발하면서 자신이 그들이 팔았던 요셉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복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애굽의 총리 쯤 되면 그렇게 하든 말든 누가 뭐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요셉의 태도로 보아서 그가 그렇게 행동하리라고 생각하기는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고 또 지금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그렇다면 왜 요셉은 우리로서는 정말 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행동을 그렇게 오랫동안 변함없이 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성품이 워낙 탁월하게 좋았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의 성품도 커다란 역할을 했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삶의 순간 순간에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 하나님께서 그에게 꾸게 하셨던 꿈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거두어 들인 곡식단에 나머지 식구들이 거둬들인 곡식단이 절을 하는 꿈, 그리고 해와 달, 그리고 열 한 별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 이 두 번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요셉은 이 꿈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언젠가는 그 꿈이 분명히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서 꾸게 하신 꿈이었으니까요.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움직일 수 없이 확실합니다. 그것은 그저 요셉이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꾸게 된 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이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요셉의 꿈은 요셉이 꾼 꿈이 아니라 요셉의 인생을 위한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것이 분명한 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일들은 모두 그저 그 꿈이 실현되어져 가는 중간에 만나는 일들에 불과합니다. 그것 하나 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집착하고 전전긍긍해야 할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삶에서 만나는 이런 저런 일들을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 하나 그랬기 때문에 요셉은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정하고 선택할 때,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욕심이나 이기심이 가리키는 대로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거쳐야 하는 하나 하나의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는 재료들이라면, 그것 하나 하나를 소홀히 대할 수가 없었으며,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가장 합당한지를 헤아리고 그것에 따라서 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그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변함 없는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것들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가족들의 절을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영광스러운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 영광에 대한 꿈입니다. 천사들보다 더 높아져서 우리 주님과 영원히 다스리게 될 그런 꿈이 있습니다. 이 꿈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꿈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정도로 영광스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영광의 크기와 광채는 이 땅에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헤아리며 거기 자신의 삶을 맞추어 갔느냐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고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상황을 핑계대고 입장을 이야기하며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은 그러면 안됩니다. 상황도 있고 입장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입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영광이 정말 중요한 꿈이고 소망이라면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 영광이 가벼워지고 또 희미해 지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에게는 하늘의 영광스러운 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도 그 꿈을 여러분의 삶의 한 가운데 놓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영광스러운 꿈이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게 하시고, 또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리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삶을 사시고, 나중에 그 삶이 가져다 주는 하늘 영광으로 영원히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