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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4.05.25. 금요기도회 -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2(사도행전 58)



행1036to43 -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2(사도행전5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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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도행전 10장 36-43절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에 대해서 묵상하며 배워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복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복음이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그래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적어도 이런 것에 대해서는 내용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스스로 그 복음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복음을 너무 간단한 것으로만, 그리고 너무 형식적으로만 가르치고 때 이해해 왔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며, 다시 살아나셨으며, 승천하셨고, 언젠가 다시 오신다”라고 말하며 “당신은 이것을 믿느냐?”라는 질문 한 마디로 복음을 믿는 믿음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끝냈습니다.성도들은 그저 “아멘!”이라는 대답 한 마디로 끝냈구요.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첫째로 처음 믿는 순간부터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안되기 때문에, 둘째로 믿음이라는 것이 어차피 그 누구도 확실히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 선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복음을 그런 정도로만 취급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복음은 그런 정도로만 다루어도 충분한 것이고, 그래서 그저 그런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는 그런 것일까요?


물론 처음 복음을 전할 때, 길거리에 세워 놓고 복음에 대해 몇 시간씩 늘어 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리고 예수 믿는 일에 관심을 보이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자세한 복음으로 양육을 받는 일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자세한 복음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성도들은 그 자세한 복음을 들으면서 그 내용 하나 하나를 자신이 믿는 내용으로 확증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계약서에 나의 도장을 찍는 행동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도장이 찍히지 않은 계약서가 효력이 없듯이 복음에 대해서 내 믿음을 더해 확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그 복음은 나에게 구체적인 효력을 미치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용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받아들인 복음이 과연 나에게 어떤 능력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복음을 믿었는데도 그 복음이 여러분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또 능력이 되고 있지 못하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복음의 내용 하나 하나에 대해서 여러분 스스로가 믿음을 더하고 순종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 여기 저기에 복음이, 그것도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참 은혜롭고 유익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본문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복음을 대하고 또 대할 수 있으며, 그 복음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왕이시라고 선포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복음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예수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나의 구세주, 그러니까 구원자요 왕이시라는 것을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은혜 안에서 백성이 왕에게 순종하듯이 예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의 소원이 생겨나야 합니다. 마음 속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아직 복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가 쉽습니다. 한 번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내 죄를 용서하셔서 나를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지신 분으로 믿는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내 뜻과 욕심이 아니라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순복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거룩한 의지가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이런 마음이 생겨나고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일이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만큼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복음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항상 복음이 들려지고 받아 들여지기 전에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가장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강력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38절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아주 아주 능력있게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선한 일이 행해졌고 귀신에 붙들린 사람들이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단지 놀라운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직접 이 세상을 되찾으시고 또 다스리기 시작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셔서 사탄의 나라와 싸우기 시작하셨고 또 자신의 백성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시기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자동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풀려난 후에 자유를 얻어 광야로 나왔습니다. 다 좋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애굽에서 자신들이 먹던 음식이 그리워 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평합니다. 애굽에서는 부추도 먹고 마늘도 먹었는데, 또 가끔씩 고기도 먹었는데 여기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입니다. 차라리 애굽에서 종 살이 할 때가 나았다고 말입니다. 적어도 이런 불평에 빠진 사람들은 아직 자유인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애굽의 종살이를 하는 애굽의 종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일도 똑같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려면 그 이전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닌 모습으로 살던 삶의 방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맛보면서 살아가는 복을 놓치게 됩니다. 미국에 갔으면 미국 법을 따라야 미국에 사는 유익을 누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불편하고 믿음의 풍성한 유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그 사람에게는 아직 자신의 주인이 바뀌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이었죠? 그는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고, 또 그 일을 위해서 살다가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그 일을 위해서 내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요한이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세례”를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요한이 전한 세례를 말할 때,  그냥 세례가 아니라 “그 세례”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 세례 요한의 세례는 다른 세례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세례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요한의 세례 말고도 다른 세례들도 있었습니다. 다른 세례는 그저 깨끗하게 하고 정결하게 하는 예식이었고, 또는 자신이 유대교의 어떤 특정 종파에 소속되어 있다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요한이 전한 세례는 그런 세례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세례 요한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와 있으니까 그 나라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그 사탄이 주인노릇 했던 나라의 법을 따라서 살아갔던 삶을 떠나야 하며, 그 표시로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3장을 보면 세례 요한이 이런 회개의 세례를 외치자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 요한에게로 왔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세리들에게는 “부과된 것 이외에는 거두지 말라” 군인들에게는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의 이런 말들 속에서 성경이 말하는 회개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 쌓아 놓는 삶에서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는데 자신은 필요 이상으로 쌓아 놓고 살아갈까요? 욕심 때문이죠. 그런데 사람이 욕심을 부리는 것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두려움과 걱정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과 걱정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가진 것에 의지해서 살아가려는 마음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세례 요한이 지적한 것처럼 법을 어기고 힘을 이용해서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간다면, 그 은혜가 자신에게 충분하다고 여기면서 살아간다면 절대로 법을 어기거나 혹은 남의 것을 힘으로 빼앗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삶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닏. 


우리는 회개라는 말을 들으면 이전에 짓던 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저 그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을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회개이지만 원래 회개란 말은 이것보다 더욱 더 근본적인 것입니다. 회개란 이전에 자신이 주인되어서 살아가던 삶을 청산하고 이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다스림 속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 에덴 동산에서 누리던 그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에게 이런 의미의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과연 정말로 하나님의 왕되심을 받아들이며 그 분의 다스리심에 자신의 삶을 맡기겠다는 의지가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결단을 내리는 행동이었습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에덴동산의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살아가는 든든하고 풍성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 않는 삶의 태도와 방향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베드로는 요한이 전한 ‘그 세례’라고 말한 것이고, 이 세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요한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려면 꼭 회개를 해야 하며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딱 한 가지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너에게 줄테니 너 자신만 나에게 주어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어 줄테니 너를 나에게 내놓아라”라고 말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이러한 하나님의 거래요청에 반드시 응해야 합니다. 당장에 완전해 질 수는 없겠지만, 복음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문을 통과하기 전에 내가 이제는 사탄의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해야 하며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더욱 더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미 예수를 믿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한가 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교회 안에는 이런 과정을 한 번도 거치지 않고서 수십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그런 과정을 거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삶에는 또 다시 내가 주인되고 이 세상이 주인되는 부분들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면서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온전한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로 가져다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회자로서 여러분에게 진지하게 말씀드립니다. 혹시 아직도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받아들이고 그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면 오늘 그 분의 백성이 되는 결단을 내리시고 온전한 복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들였지만 다시 사탄에게 내어준 내 삶의 부분이 있습니까? 그러면 오늘 이 복음을 다시 들으시면서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의 복된 통치 가운데로 가져다 놓는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나의 왕되심을 온전히 받아들이시고 예수님의 은혜의 통치 아래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다시 자기 영토로 만들려는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마시고 항상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면 살아가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