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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6.19. 새벽예배 -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세기 163)

창5015to21 -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16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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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창세기 50장 15-21절




요셉과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의 장례를 마치고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죽음은 형제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런 사건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동안은 아버지가 방패막이가 되어서 요셉의 복수로 부터 자신들을 지켜 주었는데, 이제 그 방패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모여 요셉이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 하면서 의논을 한 후에 요셉에게 사람을 보내서 메세지를 전달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당신의 형제들이 당신에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를 부디 용서해 주소서.” 얼마나 두려웠으면 자신들과 요셉을 동일선상에 놓지도 못합니다. 자기들의 아버지인데도 야곱을 ‘당신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을 요셉보다 훨씬 더 아래에 놓습니다. 요셉은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자신은 형제들을 다 용서한 이후이고 또 이제까지 그렇게 선하게 대해 주었지만 형제들은 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자신을 두려워 하고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픈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형제들이 직접 요셉을 찾아와 요셉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 이 말을 듣는 요셉의 마음은 정말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자신은 이미 완전히 용서한 그 일에 붙들려서 형제들은 그렇게 자신을 두려워 하며 동생인 자기 앞에 꿇어 엎드렸으니까요. 요셉은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마세요. 제가 하나님을 대신 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그렇게 자기 앞에 엎드려 있는 형제들을 보면서 요셉의 마음은 더 슬프고 아팠겠지만 오히려 요셉은 그런 형제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킵니다. 그들 뿐만이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 책임지고 양육하겠다고 보장까지 해 줍니다. 


우리가 이 사건 속에서 사람을 믿고 살아가는 것과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일이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요셉의 형제들은 사람이 사람에 의지해서 살아갈 때 결국 어떤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는가를 보여 줍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할 때, 그 대상은 둘 입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이고 둘째는 남입니다. 자기가 힘이 있을 때는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힘이 없을 때는 다른 사람들을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의 형제들은 그런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어렸을 때, 요셉보다 힘에 셌을 때는 작당해서 요셉을 어딘지도 모를 곳에 종으로 팔아넘겼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애굽으로 와서는 요셉보다 힘이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을 믿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아버지 야곱을 방패막이로 놓고 비열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그 방패막이가 사라져 버립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극단적인 두려움에 사로 잡힐 수 밖에 없었고, 요셉에게 거짓말 까지 하면서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합니다. 이것이 사람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게 자신이든 남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입니다. 지금은 내가 더 강하지만 얼마든지 나보다 더 강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지금은 내가 의지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은 결코 영원히 의지할 바가 못 됩니다. 그래서 계속 사람에만 의지하면 결국 언젠가는 커다란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꼭 사람 뿐만이 아니죠. 이 세상에 있는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똑같습니다. 그것들은 일시적이고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랑과 안전감은 언제든지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저는 요셉의 형제들은 그것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요셉은 누군가가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저 인생이 든든한 것 뿐만이 아닙니다. 걱정과 근심에서 자유로운 정도가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아주 놀라운 선물을 주십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과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분별하며 거기에 맞춰서 반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그 사람을 얼마나 확신있고 여유있게 하며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지 모릅니다. 요셉은 비록 종으로 애굽에 팔려왔지만 그의 마음과 생각은 절대로 비참한 절망 속에 갇힌 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사람의 뜻에 따라 사람을 의지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비록 신분은 사람의 종이었고 또 옥에 갇힌 죄수였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는 참 놀라웠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인도해 오셨는지 그 이유와 깊은 뜻이 분명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21절에 나오는 요셉의 말이 그 깨달음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고, 그 깨달음으로 인해서 요셉 자신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그는 분명히 형제들이 행한 일은 악한 일이 맞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결과가 좋다고 과정에서 있었던 일까지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분별력입니다. 때로 악한 일이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재료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바로 그 악한 일 때문에 선한 결과가 나왔으니 그 악한 일을 합리화하고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악한 일은 악한 일입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악한 일을 하나님이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재료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지금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들이 자기에게 행한 악한 일을 바꿔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놀랍도록 선한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자신이 있으셨고, 또 그렇게 하실 목적으로 요셉이 그런 일을 당하는데도 그냥 놓아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요셉의 형제들의 자유의지를 건드리지 않으시면서 그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과 목적을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물론 요셉의 형제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은 다른 방식으로 분명히 이루어 졌겠지만 말입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아차렸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바른 이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니 자신의 형제들은 비록 악한 사람들이었지만 참 불쌍한 사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요셉은 그렇게 커다란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서 그런 형제들을 다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엄청난 피해자였고 또 그래서 충분히 복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가해자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분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런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 분의 뜻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기 삶에 일어난 일들을 그저 행운이나 무의미한 일, 혹은 우연에 불과한 불쾌하고 고통스럽기만 한 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엇일지라도 심지어는 악하고 힘든 일일지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 눈으로 자기 인생과 이 세상을 해석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악을 악이라고 분별하면서도 그 악을 행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세상을 위로하고 치료해 줄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됩니다. 


사람이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꼭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분을 의지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른 눈으로 자신의 인생을 보고 다른 반응을 보이며 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자리에서 그렇게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 요셉처럼 사용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면서 스스로도 확신과 풍성한 여유 가운데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항상 ‘악을 선케 바꾸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지혜롭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