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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4.06.29. 전교인 기도회 -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2)



15. 계0307to13 -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2).pdf


20140629SE (#1).mp3.zip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7-13절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살펴 볼텐데요. 먼저 우리는 이 빌라델비아 교회가 하나님이 흥분하시면서까지 칭찬하셨던 교회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교회를 바라보시면서 가장 원하시는 것 한 가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자랑스러워 하시고 우리 때문에 흥분하시며 좋아하시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때로 그저 천국이나 가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 합니다. 저는 이것이 아주 좋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움을 아는 사람들의 소원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것보다는 조금 욕심을 내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왕 하늘나라에 갈 건데 가면 더 큰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의 더 큰 칭찬을 받겠다고 말입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욕심, 영원한 것에 대한 욕심은 그 욕심이 많으면 클수록 좋고 아무리 욕심을 내어도 전혀 부작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에게 그런 것들에 대한 욕심이 너무 없어서 문제입니다. 좀 더 욕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꼭 하나님 앞에서 큰 영광과 큰 칭찬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신 주님의 편지를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싱거울 정도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탓하거나 그것 때문에 기가 죽지 말고 믿음을 잘 지키면서 그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우리가 큰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를 칭찬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평가기준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믿음을 지키며 그 믿음에 합당한 아름답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그렇게 할 때 그것을 가장 높게 평가해 주십니다. 이런 교회, 이런 성도들 앞에 활짝 열린 하늘문, 그 누구도 닫을 수 없는 하늘문을 열어놓아 주십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이런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두 가지 약속을 더 살펴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약속은 하늘에서 누리게 될 복과 영광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놀랍게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9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게 하리라”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유대인들 때문에 많은 괴로움을 당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사단의 회라 부르시면서 그들 중에서 몇 명이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무릎을 꿇고 주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최고의 괴로움과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이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이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을까요?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지게 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적은 능력을 가지고 믿음을 지켜나가며 주님 주신 선한 양심을 배반하지 않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능력이 적고 가진 것이 없을 수록 내가 이런데, 우리가 이 모양인데 우리가 이런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가 쉬우니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예수 믿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이런 패배감은 없는지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성도와 교회에 이것보다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 앞에서 나와 교회의 모습에 전혀 신경쓰지 않게 만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나 하나 쯤이야 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가 뭐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런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작은 교회가 그 작은 능력을 가지고 믿음을 지키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은 주님의 대적들이 그 교회를 통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영광스럽고 놀라운 약속이죠.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 입장에서도 보면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이 저절로 무릎을 꿇고 돌아오게 만들 교회가 없어지는 셈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교회와 또 한 이런 교회의 성도가 되는 것은 정말 정말 중요한 일이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를 괴롭히고 무시했던 당사자들, 정말 하나님을 무시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와서 이제 나도 예수 믿겠노라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축복이 되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적은 능력으로 믿음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려고 애쓰는 일을 결코 작은 일로 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가 그야 말로 대적의 문을 얻는 능력있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


마지막 약속은 10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주님의 말씀을 인내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말씀을 지키려면, 인내가 필요하고, 말씀의 성취를 보려면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속전 속결이 미덕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금방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인정받는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신앙에 속전속결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말씀에 근거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특징은 충분한 때가 되어야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가 실패하기 쉬운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너무 성급하다는 것입니다. 결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실망합니다. 의심합니다. 참지를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대로 살아도, 믿음 지키며 살아도 오히려 일이 더 어려워질 때도 있습니다. 기도해도 전혀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포기합니다. 잘 인내하다가 그만 두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잉태하는 것은 출산을 위한 것이듯이, 우리의 기다림과 인내도 성취를 위한 것이고, 그 때까지는 기다리면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그 대로 살아가는 일이든, 아니면 그 성취를 보는 일이든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 이것이 말씀을 붙들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잊어서는 안되는 진리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고난과 역경,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믿음의 경주를 그만두지 않았으며, 말씀을 지켰습니다. 작고 연약한 교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교회였지만, 인내만큼은 그 어떤 교회에도 뒤지지 않는 그런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교회로 하여금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온 세상을 무시 무시한 시험으로 시험하시는 그 때, 그래서 진짜와 가짜, 알곡과 가라지를 가리시는 마지막 시험의 때를 면케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마지막 때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성도와 교회는 이 땅에 단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이 은혜로운 약속이 주어지는 이유를 잘 살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이런 특별한 복을 주십니까? 그것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마지막 시험을 치르기 이전에 이미 많이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대원 때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한 학기 동안 다 가르치고서 마지막에 그 모든 것에 대한 시험을 치르는 것입니다. 나머지 한 가지는 학기 중간에 매주 그 전 주에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짧은 퀴즈를 치르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시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에는 학기말 시험의 비중이 약해져서 시험에 대한 부담이 크게 적어집니다. 얼핏 생각해 보면 그냥 기말시험을 치르는 것이 훨씬 편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매주 퀴즈를 보고 기말시험을 면제받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하나님은 퀴즈로 점수를 매기는 교수와도 같습니다. 중간 중간 퀴즈를 잘 치러내면 무거운 기말시험을 면제해 주십니다. 그러나, 중간에 퀴즈를 피하거나 무시한 사람에게는 한꺼번에 몰아서 무거운 시험을 치르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평가하시면 좋겠습니까? 저는 살면서 인내하고서 마지막 무거운 시험을 면제 받으면 좋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받았던 축복의 약속들… 지금 우리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런 약속의 말씀을 직접 주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감격하겠습니까? 저는 정말 빌라델비아 교회가 부럽습니다. 그리고, 그 성도들이 부럽습니다. 그런데, 저를 더 부럽게 만드는 것은 그 교회를 향한 주님의 보증입니다. 12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한 때 아이들 사이에서는 약속을 할 때 재미있는 제스쳐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 약속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증할 때는 먼저 손을 잡고 엄지손가락을 대고 도장을 찍습니다. 그런 후에는 손바닥끼리 부딛히면서 복사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손등을 서로 문지르면서 코팅한다고 말합니다. 약속이 틀림 없다는 것을 그렇게 삼중으로 보증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 정확히 말하면 그 들 중에서 끝까지 진리를 붙들고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천국행을 삼중으로 보증하고 계십니다. 먼저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존재라 삼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무엇으로 보증하느냐 하면,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적습니다. 하나님이 보증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적습니다. 천국이 있는 것이 확실한 만큼 확실히 보증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을 적습니다. 말씀하시는 분이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끝가지 믿음을 버리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영광이 분명히 주어집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그 영광을 영원히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짓된 분이 아니라면, 하늘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약속이 예수님의 약속이 아니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이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시대이건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고난을 감수하고, 희생을 감내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시대이건 참된 믿음의 사람,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 그 놀라운 약속은 바로 이 소수에게만 주시는 주님의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믿음을 지키며 진리대로 살아서 이 모든 약속의 성치를 보게되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