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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7.08. 새벽예배 -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애굽기 9)


출0223to25 -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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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2장 23-25절




인간의 역사나 혹은 개인의 인생이란 결국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어 가시는 무대와 과정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일방적으로 이루어 가시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행동에 하나님께서 반응하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하나님의 행동에 우리가 반응을 통해서 개인의 인생이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가장 좋은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움직이시고 일하신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희일비하게 되는 것이죠. 당장 경험하는 현실이 사람들에게는 전부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돌아가 보면 모세의 입장에서 갑자기 광야의 도망자 신세가 되고 그래서 장인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살아가는 그의 경험은 그저 고통과 고난입니다. 처량한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 과정을 통해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족들의 아픔을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나그네들을 인도해 내는 지도자가 되어야 할 사람이었으니까요. 제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 안에서는 공짜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겪은 일들은 저마다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겪을 때는 힘들고 어려운 것들도 많이 있지만 나중에 겪게 될 일들이나 혹은 소명을 이루는데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어려움만 그런 역할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려움도 마찬가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갑자기 왕이 바뀌고 어떻게 보면 동반자의 입장에서 아얘 노예의 처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또한 민족이 사라져 버릴 위기도 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 세대가 흘러갔고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편안하기만한 했던 애굽이 정말 지옥같은 곳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살려달라고 탄원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는 비록 어려움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그 덕분에 애굽은 자신들의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의 변화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현실에 개입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는 이것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견딜 수 없이 무거워져만 가는 핍박 앞에서 신음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구합니다. 그 소리는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24절부터 읽어보면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이신 반응이 무엇인지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우리는 본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님의 네 가지 반응이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때마다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고통을 모르셨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사용된 ‘들었다’는 단어는 ‘경청하다, 듣고 응답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부를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은 허공을 울리는 소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개입해 달라는 자발적인 요청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을 듣고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 또한 그 전에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잊고 계셨다고 갑자기 기억해 내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 기억하셔야 할 것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정말 정말 중요한 은혜의 통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실 만큼 언약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그 언약에 따라서 움직이십니다. 이 언약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은 그 언약을 작동시키는 스위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스위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때 하나님께서 지키셔야 할 약속을 지키시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도움이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세째,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친절한 마음이나 그  사람과 똑같은 심정이 되어서 그 사람을 향해서 움직인다는 뜻인데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우리를 향해 달려 오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심정이 되어서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급하게 움직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우리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셨다고 말하는데, 원래 ‘아셨다’고 번역해야 정확한 번역이 됩니다. 우리 말로 안다는 것은 그저 어떤 사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지만 여기 사용된 ‘안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공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안다’는 표현은 아주 놀라운 표현입니다. 우리가 어떤 힘든 일을 경험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 순간 우리의 경험은 하나님의 경험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움직이지 않을래야 움직이지 않으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아픔이 당신의 아픔이 되고, 우리의 슬픔이 당신의 슬픔이 되니까요. 


성경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대한 이 네 가지 반응이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일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때 한꺼번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하나님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이며 또한 특권입니까? 하나님과 언약을 맺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복은 절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를 부르짖게 만드는 현실은 그것 자체로는 참 좋지 않은 일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짖음이 우리의 삶과 사람들의 역사 속으로 하나님을 끌어들이고 또한 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오히려 엄청난 은혜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항상 결핍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건, 건강이건, 그도 아니면 영적인 것이건 부족함과 갈급함이 있으며 그래서 적어도 약간의 아픔과 안타까움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짖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큰 손해이니까요. 


항상 부르짖을 줄 아는 영성을 잃어버리지 말아서, 부르짖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함께하시는 능력을 놓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