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8.19. 새벽예배 - 그들의 지팡이를 삼킨지라(출애굽기 29)



출0708to13 - 그들의 지팡이를 삼킨지라(출29).pdf


20140819D (#1).mp3.zip





본   문 : 출애굽기 7장 8-13절



‘피개이파악독우메흑장’ 오늘 본문을 대하는데 문득 신대원 입학시험을 준비할 때, 출애굽기에 나오는 열 가지의 재앙을 외우기 위해서 사용했었던 이 말이 생각났습니다. ‘피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악한 전염병의 재앙, 독종의 재앙, 우박의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의 재앙, 장자를 죽이는 재앙’ 이 열 가지 재앙을 외우기 위해서 아주 이상한 말을 만들어 낸 것이지만 한 번 외우고 나니 그 열 가지가 잊혀지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이 열 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벌 주시고 또한 온 세상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려고 행하신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만나게 될 무서운 재앙들을 생각할 때, 그래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연만물을 정말 마음대로 다루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하나님이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 분이시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시려고 하신다면 능력이 모자라서 하지 못하실 일이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내가 이런 하나님을 믿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정말로 든든한 일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삶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됩니다. 둘째로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그 엄청난 능력을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순종하며 자신이 사는 세상을 망가뜨리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일에도 사용하신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도 경험하는 모든 좋지 않은 일들이 전부 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우리에게 가해지는 징벌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들 중에는 그래서 생겨나게 되는 일들도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이런 이유로 우리 삶에 생겨나는 하나님의 징벌들을 끌어 들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망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망치게 되니까요. 


오늘 우리가 묵상할 본문은 모세가 바로 앞에서 처음으로 행한 이적에 대한 본문이지만 이것은 재앙이 아니라 앞으로의 재앙들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는 중에도 바로의 완악함은 모세와 바로의 술사들 사이의 싸움을 일으키는데요. 이것 또한 하나님과 잡신들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가 바로에게로 가자 바로는 이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 않으니까 도움을 받기 위해서 요구하는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 위에 서서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스스로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주 악한 것이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는 것도 이렇게 자기가 중심이 될 때는 아주 악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자신이 바라는 이적을 본다고 해도 결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연결되지 못합니다. 모세는 바로의 요구대로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으니까요. 모세는 그저 말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습니다. 이 대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바로의 교만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바로는 자신의 술사들과 현인들을 불러서 똑같은 일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일은 그 정도는 누구나 한다는 뜻이었죠. 너희가 믿는 하나님도 별 것 아니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놀랍고 충격적인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뱀이 된 모세의 지팡이가 바로의 술사들이 만들어낸 뱀들을 모조리 집어 삼킨 것입니다. 그냥 보시기에도 아시겠지만 이것은 힘의 대결이었습니다. 숫자 상으로 보면 바로의 술사들이 이길 싸움이었죠. 그렇지만 숫자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짜와 가짜 사이의 싸움이었고 그래서 진짜가 이기게 되어 있는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같은 것은 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게다가 규모나 숫자가 더 크기까지 하면 그것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무엇이 진짜인가 하는 것만이 중요하고 그것만이 진짜 능력을 갖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겉으로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 보다는 그것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분별하는 능력이 중요하고, 진짜를 추구하고 진짜라고 생각되어지는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12절을 보면 성경은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뱀의 싸움이었는데 말이죠. 지팡이는 능력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의 참된 능력이 거짓 능력을 이기고 삼켜버렸다는 뜻입니다. 같은 지팡이었습니다. 겉모습도 훨씬 더 화려하고 숫자 또한 바로의 술사들의 지팡이가 훨씬 더 많았죠. 그런데, 그 초라한 목동의 지팡이 하나가 그 모든 것들을 집어 삼켰습니다. 왜냐하면 그 초라한 지팡이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이제 앞으로 애굽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결과과 어떻게 되어질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앞으로 애굽은, 그 나라가 아무리 크고 대단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에 집어 삼키워질 것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지팡이 사건이 들려주는 메세지 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오히려 그 마음이 더 강퍅해 졌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대로 였지만 보여달라는 이적을 보고도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더 대적하는 자리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며 그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이 가진 힘이 더 커 보이고,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훌륭해 보입니다. 그러나, 진짜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가짜와 별다르지 않게 보이고 때로는 훨씬 더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진짜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만 참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거짓된 것들을 이기는 능력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참된 길을 가려면 우리에게 그것을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이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크고 화려한 것, 더 강해 보이는 것에 눈과 마음을 빼앗겨서 초라한 지팡이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 능력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초라하고 불편한 진짜 보다는 화려하고 편안하며 부담없는 가짜를 더 선택하면서도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의 진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화력하고 편안한 가짜가 눈 앞에 있는데 불편하고 힘든 진짜를 선택하는 것은 과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일에 우리 신앙의 능력과 운명이 놓여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선택해야 할 이유와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의 손이 아니라 모세의 손, 초라한 지팡이 속에 있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결국 그 초라한 지팡이가 더 화려하고 많은 애굽의 지팡이들을 집어 삼켰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들려주신 초라한 지팡이를 끝까지 손에 들고 참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복이 이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