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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08.27. 새벽예배 - 온 천하에 전파되게(출애굽기 34)



출0913to21 - 온 천하에 전파되게(출3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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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출애굽기 9장 13-21절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고 또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때로 일 자체는 그렇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렇게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죄인인 우리들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어떤 특별한 역할을 할 때도 그렇지만 그저 우리의 일상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우리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특별한 역할이건 아니면 평범한 일상이건 간에 우리의 삶은 항상 긍정적인 면에서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지고 그 뜻에 자신의 삶을 맞추어 가는 사람 뿐만 아니라 전혀 그렇게 하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 심지어는 그 일을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게 내리셨던 열 가지 재앙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는데요. 이 이야기 속에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모세와 바로입니다. 모세는 힘들고 어렵지만 정말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바로는 그러한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거역했습니다. 그것도 여러 번 거짓말까지 하면서 말이죠. 그렇다면 바로의 이런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고 방해를 받은 것일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고요. 그렇지만 그거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내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 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섯 번째 재앙을 내리실 때, 애굽을 완전히 끝장내 버릴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 때 내리셨던 심한 돌림병을 애굽의 가축들이 아니라 바로와 애굽사람들에게 내리셨다면 애굽은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일부러 가축들에게만 돌림병이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의 가축들이 돌림병으로 생명을 잃게 된 것은 그들 편에서 보면 커다란 재앙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오히려 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남겨 두심으로써 바로와 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도 알게 하고 또 나아가서 온 세상도 그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재앙이 더해질수록 자꾸 마음을 거짓되고 교만하게 만들어 갔습니다. 바로는 자신의 의지로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로를 죽이지 않으시고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고집과 반항을 통해서 하나님을 애굽과 온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을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하지 않으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포기하시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에 손해를 보시면서도 가만히 계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붙드시고 끝까지 이루고야 맙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들의 반항과 불신앙을 그대로 놓아두시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봐야 결국 이기는 것은 하나님이시고 이루어지는 것은 그들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에 손해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바로의 고집과 불순종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커다란 상처를 입히고 손해를 입힌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바로는 그렇게 하나님께 대들고 반항하면서 오히려 자기 자신과 애굽, 그리고 나아가서 그 당시 그 지역 전체에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분이신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통해 당시의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을 말씀 한 마디로 초토화시키는 분이시며, 애굽이 섬기는 모든 거짓 신들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하나나님이심을 증명해 보이셨던 것입니다. 우박재앙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애굽사람들 중에서도 자기 가축을 집안으로 옮겨 놓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바로 애굽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고 두려워 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를 통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그 뜻을 거스르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그러한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결국에는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도 같은 것은 아닙니다. 비록 바로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바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여전히 내 백성 앞에 교만하여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느냐?” 교만은 교만입니다. 불순종은 불순종입니다. 단지 그 교만과 불순종이 하나님의 뜻을 좌절시킬 수 없었을 뿐이고,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했을 뿐이지 그것이 바로가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한 부정적인 도구가 아니라 선하고 아름다운 도구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힘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불순종의 시험이 닥쳐 올 때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온전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진리를 기억하시고 그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더 많이 순종하고 더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