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4.08.31. 전교인 기도회 -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사사기 1)


20140831SE.mp3.zip


삿0101to03 - 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pdf





     본문 : 사사기 1장 1-3절




 오늘부터 전교인 기도회 시간에는 사사기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사기’를 생각하면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사사라고 불리는 신앙영웅일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기록을 보아도 11장 32절에서 믿음의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사사시대의 역사가 사사라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사 개인을 보면 신앙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고 또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득 찬 위대한 신앙인이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역사 속에 간간히 등장하면서 이어간 하나님 백성들이 역사는 그다지 밝은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사사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시기의 전체적인 색채는 무척 어둡고 침울합니다. 혼란과 하나님을 향한 심각한 범죄, 그리고 전쟁과 고난의 역사입니다. 물론 사사들이 활동했던 시대 중에 룻기의 배경이 될 만큼 밝은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은 칠흑 같은 신앙의 어둠 속에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성도들이 켜 놓은 작은 횃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아주 중요한 배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왔던 모세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애굽에서 나와서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기적적인 은혜들을 다 경험하였으며,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여호수아도 죽었습니다. 2장 10절은 이 시대를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는 말로 요약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의 세대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었습니다. 이제 출애굽 1세대와 2세대는 다 죽었습니다. 출애굽과 가나안 입성을 함께 하고 경험했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남겨진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모르는 세대였습니다. 


분명히 아버지 세대로부터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겠지만, 그것은 그 아버지 세대의 경험일 뿐, 이미 그들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수아와 그 세대가 다 떠난 지금 그들은 아버지 세대의 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경험을 자신들의 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사사기는 이 세대의 이러한 임무가 철저히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실패 때문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사사시대 내내 어둡고 침울한 역사로 기록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전 세대의 영적인 성공이 다음 세대의 영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물론 도움이야 되겠지요.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가 남겨 놓은 영적인 유산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것이 저절로 자녀들에게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세대의 은혜가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의 다음 세대를 위한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도 안됩니다. 그 다음 세대 또한 스스로 하나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 관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전 세대도, 그리고 지금 사사기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세대도 그 일에 있어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1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앞으로의 거취를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워야 하는지, 직접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의미였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들의 시대는 갔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커다란 위기였습니다. 위대한 영적인 리더십이 사라진 신앙공동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상황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막막했을까요?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혼란이 어떠했습니까? 실수와 허점 투성이의 그저 인간적이기만한 지도자가 사라졌어도 그러했는데,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이 어떠했겠습니까? 


비록 도시국가들이었지만,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에는 이미 왕정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왕정이라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구심점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체계적이고 강력한 군사력도 갖추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가나안에 살고 있던 민족들은 이미 다 그런 나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나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나라들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이것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이었고, 이스라엘은 그저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싸우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이 앞으로 싸워야 할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싸우러 올라가기 전에 하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움을 시작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처럼 의지했던 지도자가 없어졌지만 그들은 그런 혼란과 당황스러운 상황을 잘 추스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미완으로 남아있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과업이 무엇인지를 잘 인식하고 있었고, 그 전쟁은 자신들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임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앞으로의 전쟁계획을 물었던 것입니다. 그 말에 대해서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고, 그러면, 그들을 승리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호수아의 죽음은 이스라엘에게 정말로 큰 위기임에 분명합니다. 가나안 정복이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눈 앞에 놓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지요. 그렇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것은 오히려 이제는 인간 지도자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직접 증명하고 평가해 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여호수아와 하나님의 시대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제는 직접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는 성숙의 시대가 왔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의 시대를 우리는 성령시대라고 부릅니다. 성령시대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내주하시면서 직접 그들을 이끌어 가시는 시대임을 뜻하는 것이고, 우리 편에서 보면 직접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그 분께 순종하는 시대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성령의 시대라는 의미는 이제 외부의 규율에 의해서 기계적으로나 마지 못해 하는 복종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내 속에 내주하시면서 나를 순종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님께 기꺼이 순종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사기 시대에는 여호수아라는 인간 지도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시대에서 직접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는 시대로 넘어갔지만 그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내주하시지 않고 필요에 따라 임재하시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사는 성령시대는 훨씬 더 큰 특권을 누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제는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의지, 감정이 100퍼센트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심각하게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험을 피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제는 더 이상 뺄 수도 더할 수도 없는 책이 되어 버린 성경입니다. 성경만큼 하나님을 잘 말해주는 책도 없고, 또 성경 밖에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을 방법도 없습니다. 우리가 내면적으로 얻게 되는 마음의 느낌이나 확신, 그리고 인도하심은 성경을 통해 배운 하나님께 대한 지식의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참된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는 정직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속에 새롭게 창조해 주신 양심에 대해 민감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있다면 아무리 마음에 확신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려는 관심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고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주관적인 느낌이나 마음의 확신을 섣불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확신하는 위험을 피할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질문에 대해서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라고 하나님께서 예전에 해 주셨던 약속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라고 물었던 것은 이들도 하나님의 이런 약속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지는 과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땅을 얻기 위해서 싸우기는 싸워야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누가 먼저 그 일에 앞장 서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시면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전쟁은 실제로는 그들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전에는 모세나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 순종해야 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그런 질문을 드렸던 것입니다. 큰 약속이 이루어질 것은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구체적으로 어떤 일정과 과정을 통해서 이루실 줄은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변함 없고 신실한 언약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또 우리의 구원은 가장 확실한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확실히 알고 또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나를 어떻게 인도해 가실 것인지,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하나님께 언제 어떤 순종을 어떤 방법으로 드려야 하는지…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묻고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정직하고 겸손하게 묻고 얻은 응답대로 순종할 때, 우리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순적하게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중에 한 청년이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포항 옆에 있는 흥해 청년인데 10대 때 헤어진 친모를 찾아서 대구에 왔다고 했습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그 청년에게 약간의 정서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잘 타이르고 줄 수 있는 도움을 주어서 집으로 돌려 보냈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 청년이 우리 교회에 들르기 전에 다른 교회를 들려서 왔다고 하면서 그 교회에 가서 도움을 청하니 한 분이 “오늘 여기서 말씀 들으면 인생의 길이 보인다.”고 해서 지금까지 세 시간 동안 설교만 듣고 왔다고 했습니다. 뭔가 꼬롬한 냄새가 나서 물어보니 조기 아랫 동네에 있는 이단교회였습니다. 저는 참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설교 한 번 듣는다고 남의 인생의 길이 발견될 것을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지, 정말 이단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생과 신앙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우리가 뭣하러 매주 주님 앞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또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하겠습니까? 


우리는 어쩌면 우리에게 아주 정확하게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줄 인간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지식을 보장한다고 주장하는 거짓말에 속아서 말도 안되는 이단으로 이끌려 가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 지도자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최고의 인도자를 주셨습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만큼 정확하고 온전한 인도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위대한 성경이 있습니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줄 수 밖에 없는 성경이 있습니다. 정직하게 성경을 묵상하며 가르침을 받고, 또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우리는 우리의 최고의 인도자 되시는 성령님의 온전하신 인도하심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절대로 바꾸거나 취소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그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해 주시겠다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겠다는 그 약속을 정말로 믿어야 합니다. 항상 이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꼭 이 믿음은 지니시고 또 흔들리지 않도록 잘 지켜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면서 계속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확신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우리들 또한 우리의 앞선 세대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는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기록된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 기도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우리의 참되신 인도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