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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4.09.28. 주일오후 - 유다가 올라가매(사사기 2)



삿0104to15 - 2. 유다가 올라가매.pdf


20140928SE.mp3.zip







본문 : 사사기 1장 4-15절

 



여호수아서의 바로 뒤에 이어지는 사사기는 원래 영광스러운 승리의 기록들로 채워져야 할 책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면,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에서 큰 틀에서의 승리를 거둔 후에, 이제는 각 지파가 자신에게 주어진 땅들을 세부적으로 정복해 가는 이야기가 이어질 차례이고, 그 이야기가 사사기에 기록되어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사사기에는 승리의 광채가 아니라 어두운 그림자들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일에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성도 여러분, 약속의 땅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차지하는 일에 실패할 수 있을까요? 이미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오래 전에 약속하셨고, 거기까지 그들을 인도해 오셨고 이미 큰 틀에서는 승리를 거둔 이후였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그 약속은 그저 듣기 좋은 공수표였을까요? 우리는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이 혼란스러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우리가 이 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실 때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애굽에서 400년 넘는 세월을 종살이만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7장 4절인데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지라” 여기서 하나님은 그 오합지졸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놀랍게도 ‘내 군대’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인 동시에 하나님의 군대로 보고 또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합지졸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선택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이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서 싸울 싸움의 승패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이나 무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른 모든 전쟁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해 주는 아주 좋은 구절이 있습니다. 역대하 20장 15절 말씀인데요. 여호사밧이 아람 족속과 전쟁을 벌일 때, 숫적인 열세로 그들 앞에서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야하시엘이라는 레위인을 시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 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싸우라고 하셨던 모든 전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전쟁도 마찬가지였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 군대는 왜 있습니까? 전쟁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의 승패는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나 전쟁수행 능력에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그 승패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는 그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 그것 밖에 없었습니다. 때로는 싸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다 해치우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일이란 그저 하나님께서 이기실 것을 믿고 여호와의 승리와 구원을 지켜보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약속의 땅에 이미 들어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가나안 땅을 싸워서 정복해야만 했습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대해서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땅이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든 그들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게 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가나안 땅은 그런 땅이 아닙니다. 그 땅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의 땅이고 또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이었지만 그 땅은 거저 주어지는 땅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야 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다른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름이 없엇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불신앙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그 믿음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사기의 처음에 등장하는 전쟁의 기록은 유다지파가 이루어 낸 영광스러운 승리의 기록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자 이제는 이스라엘이 직접 하나님께 묻고 대답을 들어야만 했고, 그래서 그들은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전쟁을 벌여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유다지파가 그들에게 주어진 땅으로 먼저 올라가서 거기 사는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시므온 지파를 설득해서 함께 자기 지파에게 주어진 땅으로 쳐 들어 갔습니다. 결과는 대승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지역의 맹주였던 베섹의 왕인 아도니 베섹을 격퇴하고 그를 사로 잡아 엄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랐습니다. 그는 이전에 70명의 왕을 똑같은 방법으로 욕보인 엄청난 힘을 지닌 왕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 치욕을 그대로 당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유다지파는 예루살렘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헤브론을 차지하고요. 그 뒤에 이어지는 갈렙의 이야기 또한 유다지파의 승리 이야기입니다. 갈렙은 유다지파 여분네의 아들이었으니까요. 물론 갈렙이 직접 드빌을 정복한 것은 아니지만 그와 함께 전쟁을 치렀던 그의 조카 옷니엘은 남쪽의 드빌을 정복한 후에 그 상으로 갈렙의 딸인 악사와 결혼을 하여 그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세 개의 이야기는 모두 기분 좋은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유다지파의 승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주어진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대답대로 먼저 올라가 싸웠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 또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외형적으로는 여느 전쟁과 전혀 다른 점이 없지만, 이 전쟁은 믿음의 싸움이고 또 순종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다른 전쟁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전쟁을 하는 행동 자체는 형식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전쟁은 어차피 믿음을 가지고 싸우기만 하면 이기게 되어 있는 하나님의 전쟁이었으니까요. 만약 유다지파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이 이어지는 모든 전쟁에서 이런 방식으로 싸웠고, 또한 약속의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살았다면 그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너무 쉽게, 그리고 영원히 이스라엘의 땅이 되었을 것이며, 그 안에서 그들은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 보겠지만 이 이후의 200년간의 역사는 전혀 그렇게 아름답고 평화롭게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땅도 제대로 차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이방민족들, 특히 블레셋 사람들에게 괴롭힘과 모욕을 당하는 괴로운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430년간의 종살이 후에 40년의 광야생활을 거쳐 겨우 들어온 약속의 땅에서 그들은 그렇게 모진 200년을 더 보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그들이 자신의 믿음을 지켜내지 못했고,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들 또한 이미 약속의 땅에 들어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을 얻은 것처럼 우리들 또한 예수님의 은혜로 인해 구원을 얻어 새 생명을 얻었으니까요. 그런데 구약성경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군대라고 말하는 것처럼 신약성경은 우리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이유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유가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군대였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편에 서서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약속의 땅을 정복해 가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또한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 편에 서서 싸워야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순종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자리를 약속의 땅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많은 경우 가나안 땅을 낙원이나 하늘나라에 비유하지만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그 비유는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 자체가 낙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까요. 낙원은 그들이 그렇게 가나안 땅을 온전히 정복한 후에 거기서 누리게 될 평강의 삶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나안 땅은 그들이 믿음의 순종을 통해 낙원으로 가꾸어야 갈 때,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젖과 꿀을 내어주는 그런 약속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에덴은 그야 말로 그 자체로 낙원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낙원으로 가꾸어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죠.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 났습니다. 낙원은 그들에게 금지의 땅이 되었고, 그들의 삶의 자리는 그들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거친 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낙원에 살게 하는 것은 낙원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이 우리의 삶의 자리를 낙원으로 만들고 또 낙원에 살게 합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삶이 능력있고 풍성한 삶이 되게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약속의 땅에 들어와 있지만, 우리가 실제로 그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며 능력 있고 풍성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또 알더라도 앞으로 살펴볼 이야기들 속의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그 싸움을 기꺼이 싸우려고 하지 않으니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평강이 넘치는 삶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정말로 복된 하나님의 약속들이 무수하게 많습니다. 그러나, 그 복된 약속들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려면 우리는 반드시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서 순종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언약은 그 언약을 진짜로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인데, 그 믿음의 증거가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에 순종의 싸움은 성도의 삶에서 생략할 수가 없습니다. 


순종의 싸움도 싸움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서 있었던 가나안 족속들처럼 우리의 순종을 방해하는 현실은 항상 우리 눈 앞에서 우리를 압도하며 우리를 두렵게 하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그 두려움을 믿음으로 이기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이기는 군대가 되게 하시고, 우리가 서 있는 그 곳을 풍성하고 능력있는 삶의 자리로 만들어 주십니다.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말하면 항상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현실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우리가 믿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편하게 내버려 두는 법이 없는 놈입니다. 현실은 항상 믿음의 장애물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현실은 넘지 못할 장벽이 아니라 장애물 달리기의 장애물들입니다. 넘어서야만 결승선을 통과하고 승리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장애물들 말입니다. 우리가 그 장애물만 본다면 우리는 출발선에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대신 싸우시는 하나님을 보고, 우리의 믿음을 단단히 챙겨 믿음의 경주를 시작한다면 그 장애물들을 하나 하나 넘어서 영광스러운 결승선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가능성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으니 믿음으로 그 분 편에 서는 우리들도 분명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를 한 걸음씩 승리의 영광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