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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4.10.26. 전교인 기도회 - 이스라엘의 조건1(사사기 3)



20141026SE.mp3.zip





본문 : 사사기 1장 16-26절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사사기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사기가 들려주는 가나안 땅 정복 이야기는 대부분이 실패의 이야기이며 심지어는 이방인들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사사기의 처음 시작을 장식하는 이야기들은 유다지파가 정복전쟁에 승리한 이야기들인데요. 거기에는 전체로서의 유다지파의 승리 이야기가 맨 처음에 나오고 그 다음에 갈렙, 옷니엘, 그리고 겐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뒤이어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전체 이야기에서 온전히 승리를 거둔 사람들은 옷니엘과 함께 드빌을 쳐서 복속시킨 사람들 밖에 없습니다. 1장 처음에 보면 유다는 시므온 지파와 함께 아도니베섹을 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되어 있고 17절과 18절 또한 계속되는 승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19절로 가 보면 이야기가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 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이것을 보면 유다지파의 승리가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 승승장구한 것이 아니라 골짜기에 사는 족속들은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철병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미 우리가 살펴 본 대로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철병거가 없다고 이기고 철병거가 있다고 지는 그런 전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편에 서면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는 전쟁입니다. 그렇다면 유다지파가 골짜기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철병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다지파가 철병거가 무서워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유다지파라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대표적인 지파였지만 그들 또한 하나님의 전쟁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일에 실패했고 그래서 결국 자신들에게 주어진 몫의 땅을 전부 다 차지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는 중에도 개인적으로는 자신에게 할당된 땅을 온전히 차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갈렙과 그의 조카인 옷니엘이 그 당사자들입니다. 갈렙은 너무나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70살에 자신에게 약속된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그 땅을 정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옷니엘은 드빌을 정복하고 남방의 땅을 차지한 사람이구요. 제가 지난 번에 갈렙이 유다지파이고 옷니엘은 당연히 그의 조카이니까 유다지파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 두 사람은 순수 유다지파 사람들이 아닙니다. 민수기 32장 11절에 보면 그는 그나스 족속의 후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카 옷니엘의 아버지인 그의 동생의 이름도 그나스인데요. 이 이름은 자기 조상의 이름을 따라 지어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갈렙과 그나스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빠져 나올 때 이스라엘을 따라 나왔던 성경이 ‘중다한 잡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 속해 있었던 것입니다. 귀화한 이방인이었던 셈이지요. 그런데, 성경은 순수 유다지파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땅을 차지하는데 실패한 반면에 그저 유다지파에 편입되었던 이방인들은 가장 정복하기 힘든 땅도 거뜬하게 정복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16절 이하에는 겐 족속이 차지한 지역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요. 겐 족속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들입니다. 성경이 이들을 이드로의 후손들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드로 또한 겐 족속의 한 사람이었는데, 이들 중에 일부가 이드로가 모세에게 올 때, 함께 왔다가 유다지파에 편입된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또한 땅을 차지했습니다. 유다지파가 종려나무 성읍으로 올라갈 때, 그들과 함께 올라갔다가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유다지파 사람들과 함께 그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겐 족속은 이야기 상으로만 보면 갈렙과 옷니엘과는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지점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같은 이방인들이면서도 갈렙과 옷니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열심히 싸워 땅을 차지했던 사람들이라면 겐 족속들은 그저 유다지파가 종려나무 성읍으로 올라갈 때, 따라서 올라갔다가 거기서 살 땅을 얻게 된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만약 이들이 갈렙과 옷니엘처럼 무언가 전쟁에서 세운 공이 확실하다면 성경은 그 일을 기록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이들은 그렇게 유다지파와 함께 종려나무 성읍으로 올라간 것 이외에 특별히 기록할 만한 한 일이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자기 몫의 땅을 기업으로 받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면 처음에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 호기당당하게 약속의 땅을 차지하러 갔던 유다지파는 잘 나가다가 중간에 병거를 가진 족속들을 두려워 하여 자신들에게 주어진 땅을 완전히 차지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렇기는 21절을 장식하고 있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요. 반면에 정식 이스라엘 지파도 아닌 유다지파에 편입된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그의 조카인 옷니엘은 가장 차지하기 힘든 땅을 완전히 차지합니다. 게다가 나중에 살펴 보겠지만 이 옷니엘은 이스라엘을 구하는 초대사사가 됩니다. 모든 정통 이스라엘 사람들을 재치고 그만큼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 것이죠. 그렇다면 성경은 과연 어떤 사람들을 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야곱의 열 두 아들들로 부터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은 이 열 두 아들들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혈통을 지닌 나라가 되죠.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중에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물려받은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생각 속에 있는 이스라엘은 그런 모양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은 그저 혼자 특별한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약속받은 복은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한 복이 되는 그런 복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되는 그런 복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후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그 약속 속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명은 하나님을 모르는 족속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서 그들을 하나님이 백성이 되도록 도와주는 그런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그 누구라도 아브라함처럼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어떤 신분의 어떤 혈통을 지닌 사람이든지 다 참된 이스라엘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다족속이나 베냐민 족속을 비롯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었던 갈렙과 그나스가 온전히 땅을 차지한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온전히 차지하게 해 주심으로써 이 사람들이 참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 일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조건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고 그러면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만 생각해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은 정말 놀라운 은혜인 것이 분명하지만 겐 족속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일의 더 풍성한 은혜를 깨닫게 해 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겐 족속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들은 그저 이스라엘의 중심지파인 유다지파를 따라다녔습니다. 갈렙과 그나스처럼 눈에 띠는 믿음의 증거를 보여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몫의 땅을 얻고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이들의 무엇을 보시고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것일까요? 겐 족속은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자기들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그저 광야 4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따라다녔더니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셨다고 말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거룩한 싸움을 적극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저 묵묵히 한 번 정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초지일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믿는 자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내는 일도 그에 못지 않은 영광스러운 승리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백성임을 드러내는 가장 명확한 증거가 됩니다. 산지를 싸워서 얻은 갈렙과 옷니엘이나 겐 족속 모두가 약속의 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런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겐 족속이 약속의 땅을 얻은 것은 분명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 그들이 땅을 얻게 된 것은 유다지파가 그들에게 그 땅을 나눠 주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 유다지파도 아니었고, 또 특별히 세운 공도 없었지만 어찌보면 이제까지 유다지파를 따라다니면서 식객노릇이나 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을 어엿한 자신들의 일부로 받아들여 주고 또 실제로 자기들의 땅의 일부분을 떼어 주었던 유다지파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포도원 일꾼을 구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에 나가서 한 데나리온씩 주기로 약속하고 고용합니다. 아침 아홉 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11시에도 나갔고, 오후 1시에도 나갔습니다. 오후 3시에도 나가서 동일한 조건으로 일꾼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일을 마칠 때, 주인은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루 종일 일한 자신들과 적게는 한, 두 시간부터 길게는 10시간 정도나 적게 일한 사람에게 동일한 액수를 지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포도원 주인은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라는 말 한 마디로 그러한 불만을 일축해 버립니다. 아주 유명한 예수님의 비유인데요. 이 비유는 서로 서로 비교하면서 너는 나만 못하다고 그러니까 너는 나와 똑같은 은혜를 받을 자격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계산법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주신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은혜로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일의 결과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해서, 인간적인 생각이나 조건과 상관없이 생겨나고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일컫는 성경의 특별한 용어입니다. 은혜는 공짜일 뿐 아니라, 인간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계산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학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산법은 인간의 계산법과 다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천국을 가장 닮아있는 곳입니다. 또 하나님 나라를 가장 열심히 닮아가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우리 식의 계산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계산법,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은혜의 계산법을 사용하면서 그렇게 얻은 답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또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를 바라 볼 때 절대로 생각해서는 안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자격’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여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하는 사람도 생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교회에 크게 공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는 그런 사람들도 있지요. 또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그 교회를 섬긴 사람도 있지만 교회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나누고 이 사람은 이래서 이런 것을 받고 누릴 자격이 있지만 저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모두 이방인들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지만 그저 은혜로 언약 안으로 들어왔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통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갈렙과 옷니엘 같은 사람들이고 포도나무 비유로 하면 오후 세 시에 포도원에 들어와 일하기 시작한 일꾼들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자격이 있어서 그런 은혜를 얻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에 그저 그 은혜 앞에 겸손하고 또 겸손할 밖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참 이스라엘은 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또 하나님 편에서 싸우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은혜는 자격 없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믿음을 가지고 또 주님을 위한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 순전히 은혜로 된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믿음의 싸움을 싸우면서도 겸손할 수 밖에 없고, 또 서로를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은혜의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의 계산법은 잊어 버리십시오. 한 만큼 받을 자격을 얻고 그래서 그만큼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은혜로만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각입니다. 항상 이 은혜의 계산법을 잊지 말아서 항상 하나님을 위해서 가장 열심히 싸우면서도 결코 그것을 자격이나 특권으로 생각하지 않는 참 이스라엘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먼저 갈렙과 옷니엘, 그리고 겐 족속같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해 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2. 이 은혜를 잊지 않고서 겸손하게 믿음의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계산법으로 서로를 바라볼 줄 아는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