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 출애굽기 20장 18-26절
많은 성도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말고 진짜 이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또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보면 내가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렇지만 이런 말들은 전부가 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보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인간은 하나님을 보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 영광과 거룩하심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것을 보고 나서 보인 반응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백성들이 본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 임하실 때, 그 앞과 뒤에 일어난 일들을 보고 또 그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우레, 번개, 나팔 소리, 산의 연기… 그저 하나님이 임하실 때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이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하지 못해서 요동치며 소리를 내고 떠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두려움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그 두려움 때문에 가까이 오라고 하셨어도 가지 못할 정도가 되어 멀리 떨어져서 이렇게 말하기만 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정 그대로를 표현한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그 누구도 감당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온 우주라도 그 분의 임재를 견디어 낼 수 없을만큼 영광스럽고 거룩하며 크고 엄위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요동하며 소리를 내는 자연을 보면서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간단하고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과 함께 이런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간다는 뜻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삼고서 살아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는 사실에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굉장한 부담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원자력이 전기나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때는 너무나 강력한 힘이 되어 주지만 그것이 폭탄이 되어 터지면 감당 못할 위협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 또한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위험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꼭 하나님 앞에 무서워서 떨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조심스러울 필요는 있습니다.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들에게 말씀하지 않게 해 달라는 백성들을 향해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십니다.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단지 두려움으로 끝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두려움은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저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너무 너무 두려워 하지만 동시에 너무 너무 사랑하는 그런 감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게 되는 이유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짓지 않게 되어야 하고 또 하나님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짓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도 점점 더 거룩해져 가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처음 만나시면서 그렇게 엄청나고 두려운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가신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경외할만한 분이시고 그것 때문에 백성들이 백성들을 사랑하며 섬기지만 동시에 그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하지 않게 되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대면한 하나님의 두려운 모습을 기억하기를 바라셨습니다. 항상 그런 하나님을 기억하는 한,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고 또 하나님께 순종하며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쓸 테니까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여러가지 율법을 주시면서 처음에 우상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께 단을 쌓되 토단이나 손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아야 하며, 그 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제사장이 제단에 오를 때는 하체가 보이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고 말씀하신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원칙이니까요. 그래서 이것을 잊어 버리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해 드리지 못하게 되면 신앙 자체가 불가능해 지니까요.
하나님은 은혜가 한이 없으시고 또 사랑이 풍성하셔서 때로 우리에게 편하게 다가오십니다. 심지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셨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렇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며, 하나님을 가장 우선에 놓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변함 없이 가져가야 할 바른 모습이고 태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마땅히 두려워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거룩하시고 엄위하신 분이시라는 사실, 온 세상이라도 그 분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 우리 스스로도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신앙이 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