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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4.12.25. 새벽예배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2014년 성탄절 새벽)






본   문 : 이사야 9장 1-7절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우리 주님이 태어나신 것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탄절을 맞이하는 첫 시간인 이 새벽은 굉장한 특별한 마음을 주는 것 같습니다. 가볍고 상쾌합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흥분도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거룩하게 느껴지는 차분함도 있습니다. 이런 느낌은 성탄절 아침이 아니고는 가질 수 없는 느낌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믿고 그 분 덕분에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주는 의미가 크고 놀라운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아기로 오셨습니다. 여인의 몸을 빌어 완전한 사람의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와 똑같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이셨습니다. 온전히 우리 중의 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 아픔과 한계까지도 모두 느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은 저와 여러분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니 이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유익과 능력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이사야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들 조차도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참 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참 빛을 사랑하고 또 참 빛을 찾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참 빛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무엇을 가져다 준 들 해결할 수 없는 목마름이나 배고픔 같은 것이니까요. 또 하나님의 백성들, 참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흑암 자체로 인해서도 고통을 당합니다. 언제나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은 참 빛을 찾는 사람들을 힘들고 어렵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참 빛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어둠을 거둬내시기 시작하셨고, 결국 완전히 거둬내 버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흑암 때문에 그리고 참 빛이 없어서 고통 받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고통을 당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6절은 그래서 그 참 빛이신, 이 세상에 인간의 아기로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라고 말합니다. 무심고 지나치는 구절이지만 실은 굉장히 어색한 구절입니다. 아기는 태어났다고 표현되든지 아니면 어머니가 낳았다고 표현되지 누구에게 났다고 표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오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기로 결정하셨고, 그래서 아기로 태어나시는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 나심의 방향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쪽을 향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기, 우리에게 나신 그 한 아기가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그 유익은 죄인인 우리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이겠지만 그것말고도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유익은 차고도 넘칩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그 아기의 어깨에 어둠에게 있었던 정사를 맡기셨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실 권력을 그 아기의 어깨에 두신 것입니다. 그 아기는 자라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셔서 사시는 동안에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 슬픔을 겪으셨습니다. 가장 깊은 배신감도 경험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어둠이 아니라 빛이십니다. 그 분에게 어둠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분의 상처와 고통은 그 어둠 때문에 오히려 이 세상에 어둠을 더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완전히 빛이셨기 때문에 그 분의 다스리심은 이 세상에서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더하는 그런 다스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셔야 하며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빛이신 예수님이 비춰주시는 그 영광스러운 빛이 우리 삶을 가득 채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아기의 이름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 아기의 첫번째 이름은 ‘기묘자이며 모사’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놀라운 상담자’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삶의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예수님께 모든 지혜가 있고 가장 탁월한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분에게서 참 유익을 누리려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의 놀랍고 경이로운 상담자로 주신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상의하며 의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분이 얼마나 놀랍고 완전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지를 경험할 수 있고 그 풍성한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아기의 두 번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아기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영광과 능력과 존귀하심이 똑같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아기가 바로 전능자이십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상의하며 예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예수님이 우리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전능하십니다. 그 분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믿고 맡겨도 좋고 순종해도 괜찮고 그 분께 피하면 항상 안전합니다. 


세번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그 아기 안에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영원히 변치 않으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마지막 네 번째 이름은 평강의 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곳에는 항상 평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며 예수님 앞에 무릎꿇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평강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온 우주가 예수님의 이런 다르리심 아래서 이런 놀라운 은혜들을 누리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스며들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반죽 속의 누룩처럼, 그리고 뿌려진 겨자씨처럼 작지만 계속해서 자라가는 하나님 나라를 보며, 예수님과 상의하고 예수님께 의탁하며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만이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난 그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기는 우리에게 났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아기는 바로 우리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그 아기의 이 놀라운 이름들 하나 하나를 묵상해 보시고, 진정으로 그 아기를 그런 분으로 맞아들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새벽에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 그리고 오늘 온 세상 이 곳 저 곳에서 주님 오심을 기뻐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그리고 이 빛과 평화를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