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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금요기도회

2015.01.02. 금요기도회 - 믿음의 기도는






    본문 : 야고보서 5장 13-18절



오늘은 2015년도 첫 금요일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한 해 동안 쉰 두 번의 금요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 때마다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이 일년을 기도로 채우고 또 기도 위에 이 한 해를 세워갈 것입니다. 물론 새벽기도도 그렇지만 저는 이 금요기도회 시간이 우리들과 우리 교회,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한 아주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우리 개인보다는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이 세상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같은 기도제목으로 마음과 생각을 모아서 기도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특히 우리가 금요기도회 시간에 드린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것을 더욱 더 기뻐하신다고 믿습니다. 올해는 이러한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우리가 충만한 기쁨 가운데 더욱 더 기도에 힘쓰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올해도 기도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그리고 신실하고 변함 없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기도의 자리를 잘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의 기도에 자신의 기도를 덧붙여 갈 때,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더욱 더 든든한 끈이 되어서 우리 교회를 붙들어 줄 것이고, 나아가서 우리 모두의 삶도 기도의 증거들로 더욱 더 든든해져 갈 것입니다. 올 한 해 동안도 열심히 기도해서 그런 기도의 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올해의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소중한 약속 하나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다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약속을 붙드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든 부분에 경쟁과 차별이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에 차이가 있고 또 그 차이에 따라서 받고 누리는 것이 다른 차별이 존재하는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모든 것을 거의 자동적으로 모든 것을 그런 틀에서 바라보는 버릇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도 그런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데요. 신앙의 세계에서도 우등과 열등을 구별하고 거기에 따라 주어지는 차별적인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과연 신앙에는 우등과 열등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에 따라서 하나님께 받는 복과 은혜가 다른가? 또 그래서 신앙이 열등한 사람들은 신앙적으로 볼 때 자기보다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기도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기도에 능력이 더 많으니까 항상 기도를 해 주어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사람에게 기도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는 덜 들어 주시고, 어떤 사람의 기도는 더 잘 들어 주시는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는 물론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신앙생활을 할 때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틀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기도이니까 기도에 국한해서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해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선한 것이고 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마치 효험있는 부적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또 나는 기도에 능력이 부족하니까 별로 기도하지 않아도 되고 저 사람은 기도의 능력이 많으니까 그 사람만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래서 기도를 부탁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기도는 마치 무당 푸닥거리처럼 되어 버리고 또 기도하는 사람의 공로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주님은 고난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당사자가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분명히 남에게 기도를 부탁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14절에서도 병든 자가 있거든 그 사람은 장로들을 청해서 기도를 부탁하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그리고 지금 질병에 걸려 있는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은사가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질병의 치료에 더 효과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병고침이라는 특별한 경우의 이야기이고 또 은사이기 때문에, 다른 은사들처럼 그저 하나님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그 사람에게 맡기신 것 뿐이지 그 사람이 뭔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점이 있어서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 아닙니다. 그저 은사를 가진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처럼 존중해 줄 뿐이지 그 사람 자체를 우리와는 태생부터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병든 자들을 향해서 장로들을 청하라고 말하면서도 그 장로들을 향해서는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주의 이름으로!’ 적지 않은 분들이 주님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마치 무슨 귀신이나 병을 좇아내는 주문처럼 생각하는데요. 우리는 절대로 그러면 안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거나 혹은 기름을 바르는 일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동입니다. 그런 일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그것을 통해서 기도하고 기름을 바르는 사람들은 ‘주님, 우리가 기름 바르는 일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일 자체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름 바르는 일이,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는 일이 효력이 있는 이유는 거기 예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사역을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아주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무리 설교를 잘 한다고 해도, 제가 아무리 탁월하게 잘 가르친다고 해도 그것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를 잘 하고 말씀을 잘 가르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아주 좋은 반응을 보입니다. 굉장히 기뻐하고 큰 은혜를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뭔가 이룬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다시 제 자리로 갑니다. 의미있는 열매가 별로 없습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저는 사람의 수고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하시기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그것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마음 속에 역사하지 않으시면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아주 절절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히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종으로 세우신 사람들을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돌보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지만, 여러분 보시기에 그 사람이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그 사람에게 집중하시면 안됩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이든, 그리고 여러분에게 끼친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대단하든 그것은 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신앙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잘못되어도, 무조건 그 사람을 따라 가게 됩니다. 많은 한국교회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유익을 나눠주고 있다면 고맙고 감사해 하며, 그런 역할을 하는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면 됩니다.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뜻에 잘 순종하고요. 그렇지만 그 이상은 안됩니다. 그러면 둘 다 위험해 집니다. 기도에 대해서도 똑같습니다. 누군가가 기도로 여러분을 섬겼다면,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정말 감사할만한 일이고 그렇게 기도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 이상이 되면 안됩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엘리야는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결투를 벌여 그들을 제거해 버렸고, 말이 모는 병거보다 빨리 달렸으며, 엘리사가 보는 앞에서 불타는 병거를 타고 하늘로 들려 올라간 사람입니다. 그리고,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다가 다시 기도하니 비가 내렸던 그런 사람입니다. 이렇게 보면 엘리야는 절대로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하고는 태생부터 급이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가까이 가기도 힘든 사람같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이 그런 엘리야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엘리야가 우리와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하는데요. 우리와 성정이 같다는 말은 우리와 외모도 같을 뿐만 아니라 그 본성과 연약함과 부족함까지도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도 그 증거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그는 450명의 바알의 선지자와 결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 후에 아합이 두려워서 도망치고 맙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너무 침체가 되어서 그릿 시냇가에 가서 말 그대로 나자빠지고 맙니다. 영적으로 탈진이 되어서 더 이상 하나님을 신뢰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갔던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까마귀가 가져다 주는 음식을 여러번 받아 먹고 나서야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어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엘리야가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똑같은 사람이었다고 강조해서 알려 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그리고 기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성경의 배려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의 기도만 들으신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기도에 낙심하게 됩니다. 기도하기에 게으르게 되고 기도하는 일에 기대를 품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기도의 사람이었던 엘리야도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한 명의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낙심치 말고, 다른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 있어서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의 기도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기도를 특별한 것으로 우러러 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됩니다.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그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이 더 기쁘게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기도가 되게 하기 위해서 꼭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15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또 16절은 그 말씀을 받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기도 응답에 차별이 생기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기도, 의인의 기도는 더 잘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가지고 드리는 기도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드리는 기도보다 더 능력있게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이 기도 응답에 있어서 차별이라면 차별이겠지만 실제로 그것은 차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을 믿는 일은 누구에게든 활짝 열려 있는 문과도 같으니까요.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선택받은 후에 누가 더 잘 믿을 것인가 하는 것까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이 믿음의 크기와 깊이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지함과 신실함에 달려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 믿음을 잘 가꾸고 든든하게 만들어 가는 일에 얼마나 헌신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열심히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이 그 믿음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은 기도에 묶여 있는 정말 복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2015년도의 첫번 금요기도회를 드리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기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의 기도는 잘 들어 주십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에는 더욱 더 능력있게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이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믿음입니다.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기도를 멸시치 않으시며, 무엇이든 원하시면 언제든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정말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분명히 기도하게 되어 있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십니다. 

올 한 해도 먼저 기도자로서 자신의 믿음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며 그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시라는 믿음,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것이 없으시다는 믿음부터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그러면 엘리야를 통해 하늘을 움직이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역사하는 힘이 많은 기도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이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소망넘치는 기도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