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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1.20.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예레미야 5-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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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6년 1월 20일 수요일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성경을 비현실적인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또 성경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그저 ‘그게 맞지만, 그게 진리이지만…’이라고 생각하고서 그 말씀을 정말로 삶으로 옮겨내는 일에는 그다지 열심을 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만큼 현실적인 것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말씀만큼 현실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꼭 필요한 곳이 있어서 어떤 기계를 만든다면, 그 기계의 설계부터 시작해서, 작동원리, 그리고 그 기계가 실제로 만들어낼 결과까지 모든 것이 다 그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설계도, 또 움직여 가는 원리, 그리고 그 원리에 따라 움직여 갈 때 나오는 결과들도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이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 따라야 할 원리 또한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도 하나님에게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이 세상에서 살기 시작할 때, 두 사람과 이 세상의 만물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갈등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모든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사랑하며 돌보았고, 그렇게 사랑과 돌봄을 받는 자연만물은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고 그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이 관계가 깨졌습니다. 땀을 흘려야 겨우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두 사람에게 친절하고 후하던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자연과 인간은 서로 갈등하고 다투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변한 것은 없습니다. 단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순종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부터 자연은 두 사람에게 거칠게 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원래 인간의 인생을 움직이는 원리도, 그리고 자연을 움직이는 원리도 한 가지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최상의 열매를 내고 최고로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을 포함한 온 우주를 복되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원리였죠. 그런데, 인간이 그 원리를 깨뜨린 것입니다. 다른 원리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 또한 그런 인간을 순순히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폭군인 왕이 가자는 대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흥하는 길이 아니라 망하는 길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연은, 그리고 인간을 제외한 온 세상은 그 때부터 인간에게는 적대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그 때부터 자연이 인간을 그런 방식으로 대하도록 내버려 두실 수 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방향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하는 일마다 잘 된다면, 성공하고 번영한다면 인간은 어떤 착각에 빠지게 될까요? 그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더 빠르게 달려갈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그렇게 되는 것을 막아서시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자연이 인간이 저지르는 죄의 크기와 정도에 비례하게 인간을 적대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고,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그 안에서 복되고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벌주시고 징계하시는 일을 가능한 한 뒤로 연기하십니다. 5장 18절을 보면 그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무서운 징벌을 선언하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하지는 아니하리라” 벌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아닙니다. 기회를 더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저 죄를 지었으니까 벌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만 생각하시고, 그저 적당하게 벌을 내리시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냥 한 번에 끝내시면 되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벌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서 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런 복을 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언제까지나 마지막으로 징계를 내리시는 것을 미루실 수 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편안함과 번영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유익과 온 세상을 지키는 일도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벌을 받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과 이 세상을 움직여 가는 모든 원리가 그 모든 것들을 만드신 하나님으로 부터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또 풍성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절대로 그 분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만큼 현실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현실적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의 말씀은 완전히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만든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이 가장 제대로 잘 되고 번영하는 원리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이 잘 되는 것은, 진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잘 되 보이는 것 뿐입니다. 언젠가 그것은 모레성처럼 무너지고 맙니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사용설명서로 삼아 진짜로, 영원히, 그리고 부작용 없이 잘 되는 길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