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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2.12.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레위기 9-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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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2월 12일 목요일




이제 일주일간의 위임식을 모두 마친 후, 드디어 아론이 대제사장으로서의 첫번째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것은 자신과 백성들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대제사장 자신을 위한 속죄제가 드려졌다는 것이 특별한데요. 이것은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은 그가 대제사장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용서받아야 할 불완전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가장 권위있고 거룩한 통로였던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기 죄를 먼저 용서받아야 했다면, 이 세상에 의인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 지니까요. 비록 우리가 예수님 덕분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거리낌 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우리는 항상 그것이 우리의 의나 거룩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론이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위한 속죄제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모세와 함께 회막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와 함께 백성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말했던 대로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 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타나났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하나님의 은혜는 함부로 아무 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사장도, 그리고 백성들도 온전한 제사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될 때, 비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제물삼아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회복되었습니다. 그 은혜는 이미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관계는 언제든지 죄로 인해서 소원해 질 수 있습니다. 다시 문제가 생겨서 은혜의 통로가 막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 대해서 민감해 져야 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아론이 드린 첫번째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져서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이 나타나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잔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이런 기쁨과 영광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 분향하였다가 향로에서 불이 치솟아서 두 사람이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그 때의 분위기도 그렇고, 또 겨우 그 정도의 일로 그런 엄청난 벌을 받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왜 두 사람이 그렇게 목숨을 잃게 되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람이 그 어떤 사람들보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님을 직접 모실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큰 특권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권이 큰 만큼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도 그만큼 큰 것이죠.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제사장이 된 것이 은혜가 아니라 마치 자신들의 권리나 자격이나 되는 양,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직접 먹칠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중간에 그 누구를 거치지 않고서 곧바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모시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나 큰 은혜고 특권이지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어제 말씀드렸던 베드로 전서 말씀의 후반부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도 똑같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으로 택하신 것은, 그렇게 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광을 만천하에 드러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드러내야 하는 책임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자기 친구처럼 편하게 생각하면서도, 전혀 자신을 통해 드러나야할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고 하나님께 대한 존중을 잃어버린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더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우리들 또한 우리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더욱 더 영광스러운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을 통해 드러나야 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은 사실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을 통해서 이것을 분명히 배워야 합니다. 


11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어도 되는 정한 음식과 먹으면 안되는 부정한 음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접촉하면 스스로도 부정해 지는 부정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예민한 관심사가 된 율법이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여겨진 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법과 관련해서 우리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런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지는 법을 주셨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저 먹는 것만 조심하고 만지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는 것이 이 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일까요?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금지된 것을 먹지만 않고 만지지만 않으면 다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 뿐만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바로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몸을 어디에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거룩이 지켜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몸과 가장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행동이 바로 먹는 것과 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할 것을 요구하시면서 먹는 것과 만지는 것을 주의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행동에 주의하게 하셔서 스스로를 거룩함을 더럽히지 않게 하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부정한 것을 먹고 만지지 말라는 것은 사실은 스스로를 구별하라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거룩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지 그것만 먹고 만지지 않으면 된다는 뜻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에서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주님을 가까이 모시고 사는 사람으로써 항상 주님의 영광을 더 찬란하게 드러내며, 항상 거룩을 위해서 힘쓰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드러내며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같이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항상 하나님과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 복과 영광을 누리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