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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2.1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레위기 12-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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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2월 13일 금요일




이제 레위기를 함께 읽은 지 한 주가 흘러가고 있는데요. 어떻게 레위기를 대하는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십니까? 마냥 은혜롭지만은 않으시죠? 거룩함과 정결함, 순종... 듣기는 참 좋은 말들인데, 직접 그 길을 가려고 하면 많이 갑갑하고 힘들어지는 말들임에 분명합니다. 물론 우리는 완전히 거룩하고 완전히 정결하고 완전히 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걸 아십니다. 그래서 제사법을 주셨던 것이고 제사장들을 세우셨으며, 또 우리에게는 우리의 의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불완전함을 대신 해결해 주시고 다시 가던 길을 가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원래부터 우리에게 맡겨진 거룩과 순결, 그리고 순종의 길은 우리 힘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에 의지해서 은혜 안에서 가는 것이죠. 이 길이 우리에게 갑갑하고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는 이 길을 우리가 우리 힘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원래부터 그렇게는 갈 수 없는 길인데 말이죠. 


이 길을 은혜에 의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에 의지해서 가다가 보면 내가 이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신기하고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그 길을 가고 있고, 또 그렇게 가는 길이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 길을 갈 때 비로소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영혼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함께 기뻐하고 하나님이 만족해 하실 때 함께 만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을 믿으며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부담스럽고 특별한 길을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참 영광과 능력이 있고, 참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의지하고 또 은혜에 의지해서 이 길을 갈 때, 우리는 그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까다롭고 갑갑하게 여겨질 때가 있더라도 꼭 이 영광과 기쁨의 길을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2장은 출산한 여인의 부정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13장은 우리가 흔히 문둥병으로 알고 있는 심한 피부병에 걸린 사람의 부정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13장은 거기에 덧붙여서 집안에 있는 벽이나 물건에 심각한 곰팡이가 생긴 경우 그것 또한 문둥병으로 규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표면에 무언가가 생겨서 심각하게 손상된 경우를 모두 문둥병이라고 일컬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의 생각으로는 출산한 후의 여인을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과 피부병에 걸린 사람을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이 참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출산을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혹은 피부병이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출산한 여인은 한 생명을 이 세상에 탄생시키기 위해서 사선을 넘는 고생을 한 사람입니다. 숭고하고 고결한 희생을 한 사람이죠. 그리고, 심한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참 불쌍한 피해자입니다. 그 질병으로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부정하다고 하다니 도대체 성경은 상식이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출산한 여인에 대해서 왜 부정하다고 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2장을 보시면 이런 여인의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산혈, 그러니까 출산할 때 흘린 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이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 피 때문이지요. 성경적으로 볼 때, 피는 생명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없이 피 흘리는 일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고 하셨고, 절대로 피는 먹으면 안된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피는 생명인데, 그 생명은 사람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니까요. 그런데, 이 피는 몸 안에 있을 때는 생명이지만 몸 밖으로 나오면 죽음이 됩니다. 피에 생명이 있으니 그 피가 몸 밖으로 나오면 생명이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출산을 하려면 피를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흘러나온 피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그 피에 접촉하는 것은 죽음과 접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래서 산후의 여인은 일정기간 그 산혈이 다 멈추고 마를 때까지 다시 정결하게 되어지는 기간을 지내야 했고, 그 기간이 지나면 정해진 제물을 드려서 자신의 다시 정결케 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원래의 정상적이 삶으로 되돌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13장에 나와 있는 나병은 피부의 심각한 변형을 가져오는 심한 피부병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심각한 변형 또한 죽음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의 피부의 경우 그런 심한 피부병에 걸리면 거기서 진물이 흘러 나오게 마련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한 피부병의 경우에 언제 낫는다는 보장이 없고 다 나을 때까지는 사람들과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13장을 보면 어떤 경우에 나병이라고 진단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 병이 다 나았다고 진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질병의 발병이나 완치에 대한 판단이 그만큼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출산한 여인과 심한 피부병에 걸린 사람이 부정하다는 판단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몸에 죽음의 흔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과 접촉하는 사람이 부정해 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비록 부정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해 주시기 위해서 그들의 부정함이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로부터 격리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대한 일반적인 원리를 하나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죽음은 멀리하고 생명은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란 이 세상에 죽음이나 혹은 죽음의 흔적들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생명을 더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고 상처를 입히고 불행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치유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더 행복하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꼭 다른 사람들을 위하고 또 이 세상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생명이 아니라 죽음과 죽음을 닮은 것들을 더하며 살 때, 우리 때문에 세상이 부정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부정하게 되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가까이 하며,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더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수록 세상도 정결해져서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그럴 수록 자신도 정결해 져서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도 복되게 하고 세상도 복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은 이 세상에 생명을 더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내가 죽음이나 죽음과 닮은 것들을 멀리하며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하나님과 거리낌 없이 교제하며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생명을 더하고 자신의 삶에 생명을 더함으로써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