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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5.02.22. 전교인 기도회 -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사사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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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사사기 2장 6-10절



 심방을 해 보면, 의외로 자녀들의 신앙 때문에 고민하시고 걱정하시며 기도하시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녀가 고등학교 까지는 교회도 잘 다니고 열심히 했는데, 대학교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면서,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신앙을 잃어버렸다고 한숨을 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자녀가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앙을 놓치고 있으니 부모의 마음은 죄책감과 안타까움으로 무거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릴 때야 어떻게 윽박질러서라도 교회에 데리고 오지만, 10대 후반이 넘어서면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부모는 교회와 신앙에서 멀어져 가는 자녀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은 결국 하나님과 한 개인사이의 일이어서 그 사이에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한 개인이나 혹은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신앙에 있어서 먼저 믿은 사람들이나, 혹은 신앙의 이전 세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 말씀을 통해서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앞섭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사람이 그 뒤를 따릅니다. 한 세대가 앞섭니다. 그리고, 그 뒷 세대가 그 뒤를 따릅니다. 신앙은 언제나 그렇게 전해지고 또 이어져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한 세대는 그 세대만 보면 신앙의 주인공이지만, 길게 보면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 다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그 다리를 통해서 신앙을 전수받아야 할 다음 세대는 불안하고 불완전한 신앙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다리가 끊어진다면, 그 다음 세대는 신앙에 있어서 아주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이어지는 두 세대의 신앙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로 대표되는 출애굽 2세대와 그들의 자녀세대인 출애굽 3세대입니다. 짧은 다섯 절이지만,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신앙적으로 양육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이 무엇이며, 그 일에 실패했을 때, 다음 세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은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의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그 세대의 정복전쟁은 가나안 정복전쟁의 역사 속에서만 보면 제 역할을 다 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해야할 일도 많이 남아있었고, 또 다음 세대로 넘겨 주어야 할 사명도 남아있었지만, 자신들의 몫은 충실히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갈렙과 함께 출애굽부터 시작해서 가나안 입성과 정복전쟁의 초기까지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다 경험했던 유일한 사람이었고, 본문에 기록된 장로들은 40년 광야시대 동안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나이가 들어 장로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광야에서의 기적과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의 기적과 같은 전쟁의 승리를 다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사람들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라고 이야기하며, 이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도 또 그와 함께 이스라엘을 돌보았던 장로들도 좋은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경험한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피부로 직접 경험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었습니다. 거기서 끝났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신앙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신앙의 과거형과 현재형만 있었을 뿐, 미래형이 없었던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그 다음 세대에 대해서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다음에 바로 이어진 자녀들 세대에 대한 기록이라니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어떤 세대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에 대한 살아있는 경험도 많이 했고, 또 그래서 하나님도 잘 아는 세대가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를 사는 세대, 어려운 시절을 사는 세대들이 주로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편안한 시대, 넉넉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에는 그만큼 평범하고 밋밋한 시간들만 계속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경험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셔야만 할 일이 적으니 하나님을 몸으로 경험해서 아는 지식이 그만큼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세대의 성도들은 사실 그만큼 영적으로 더 하나님의 은혜에 민감해야만 신앙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는 일상 속에서 동행하심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시는 경우기 많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일, 일상적인 은혜 속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면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기가 그만큼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출애굽 2세대는 광야에서, 그리고 여리고 함락을 포함한 초기의 정복전쟁을 통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경험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전쟁에서 터무니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뒤를 이어 태어난 세대는 달랐습니다. 전쟁은 어른들이 했지 아이들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런 기적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습니다. 긴장은 있었지만 평안하고 풍성한 시기에 자라났던 사람들이 바로 출애굽 3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버지 세대는 기적을 일상처럼 경험하던 세대였는데, 그 세대가 다 세상을 떠나자 그들이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가 되었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그런 세대였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두 세대간의 단절이 아무리 심하고, 세대차가 아무리 심하게 난다고 해도 이렇게 단절된 두 세대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불신앙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 누구의 책임일까요? 저는 뒤따르는 세대가 아니라 이전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대로 그들은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그들의 믿음은 전혀 영향력이 없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식들 조차도 부모인 그들의 신앙에 영향과 도전을 받지 못 할만큼 말입니다.


제가 처음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경험했던 일입니다. 성도님 중 한 분이 어머님의 추도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예배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추도예배 분위기가 다른 가정의 추도예배 분위기하고는 뭔가 모르게 너무 달랐습니다. 함께 동행한 구역장님으로부터 “고인이신 집사님은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 하셨어요. 기도도 많이 하시고, 교회 일이라면 항상 몸을 아끼지 않았죠. 정말 천사 같은 분이셨어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기대를 많이 하고 갔는데, 막상 그 집 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너무나 당황스러울 정도로 이상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아들 둘을 두셨었는데, 장남은 저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동생은 오히려 기독교에 대해서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묘한 분위기 속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서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자리가 어머니의 추도예배 후임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서 아주 냉소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어머니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만나려면 교회로 가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 이상한 추도예배 분위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 3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세대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윗 세대가 삶으로, 인격으로 하나님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경험으로 자녀 세대를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진한 곳에서 묽은 곳으로,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영향이 미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모른다면 윗 세대가 가르쳐 주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 세대가 평안하게 산다고, 아무 일 없이 산다고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됩니다. 부모로서의 우리의 책임은 우리의 신앙적이고 영적인 경험이 우리 자녀의 세대의 경험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해서 알게된 하나님을 자녀들에게도 경험시켜 알게 하는 것,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도와 주는 것이 바로 은혜를 아는 부모의 책임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부모의 실패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사기의 연단은 이미 그 이전 세대부터 예고되어있었던,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준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평안하게 풍성하게 살아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부모는  조금 달라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넘어서서, 자녀들에게 평안함과 풍성함을 누리게 해 주기 이전에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는 자녀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모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을 위한 모험의 자리로 끌어내야 합니다. 


자녀가 책임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원한다면, 자녀를 향한 부모의 인지상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줄 아는 진지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부모의 본능적인 마음을 접고, 자녀들을 하나님이 계시는 광야로 데리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의 하시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신앙을 붙들고 모험하는 길로 내 몰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들이 그 길로 가려고 할 때, 말리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자녀들은 평생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살아있고 견고한 신앙을 가진 신앙인, 현실 속에서 다가오는 충격과 유혹을 넉넉히 이겨내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강한 신앙인은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출애굽 2세대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 자녀들 곁을 떠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알고 하나님도 잘 섬겼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떠나고 난 후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물론 내가 내 자녀의 신앙을 다 책임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그들의 신앙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살아있는 신앙이 되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믿는 부모라면 무엇보다도 이 소명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에 주신 가장 중요한 인생의 의무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법이라는 사실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얻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신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으나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도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신 일들도 다 알았더라” 우리가 떠난 후,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록하셨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아멘.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여 우리 광현교회를 이런 교회로, 대대로 주님을 알고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더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