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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3.1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민수기 24-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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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3월 13일 금요일




어제 23장은 살펴보지 않고서 그냥 넘어 갔는데요. 분량 때문에도 그랬지만 이야기의 흐름으로 볼 때, 24장과 함께 살펴보는 것이 더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발람은 그렇게 해서 발락 앞으로 왔습니다. 발락은 왜 이제야 왔느냐고 당신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한 내 말이 못 미더워서 그랬느냐고 간곡한 태도로 말을 건넨 후에 소와 양을 잡아서 잔치를 벌여 발람을 대접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발락은 발람을 데리고 바알의 산당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는 저주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눈에 다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이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합니다. 발람은 거기 일곱 개의 제단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마리, 숫양 일곱마리로 제사를 드릴 준비를 해 달라고 하고는 그렇게 준비된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상황이 재미있죠? 지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행해지는 곳은 바로 바알을 섬기는 산당입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갈 지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제사가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작전을 개시하셨습니다.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시는 대신에 발람이 자신은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할 수는 없다고는 뜻을 분명히 밝히게 하셨습니다. 발락은 아마도 발람이 눈 앞 들판에 가득 차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서 그런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끝자락만 보이는 다른 곳으로 발람을 데리고 가서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람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은 한 술 더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주도 아니었습니다. 발람의 자기 입장에 대한 변호도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시는 지를 밝혔습니다. 그 내용 중에 참 은혜로운 구절이 나오는데요. 21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에 계신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안으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정말 은혜로운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허물을 보지 않으십니다. 반역도 보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죄를 그냥 넘어가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그대로 다 갚아주시지 않고, 이스라엘의 허물 때문에 이스라엘을 저주하시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이스라엘을 해할 수 있는 복술은 없습니다. 아무리 그 누가 저주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과는 상관 없는 일이 됩니다. 


여기서도 실패한 발락은 발람을 또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람이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하실 분이 아니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며 그래서 누군가가 이스라엘을 축복할 때 그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얘 대놓고 이스라엘을 축복하기로 했습니다. 발람은 산 위에서 광야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 입을 열어 그들을 축복하려고 할 때,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발람의 위에 임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성령이 충만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축복을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할 때, 그 때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부어 주십니다. 


이번에도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안 발락은 화가 나서 바보 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느라고 스스로 존귀하게 될 기회를 저버렸다고 발람을 비난하고 협박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발락이 되돌려 받은 것은 그 지역에 사는 여러 족속들의 비참한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향한 저주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하고만 함께 함께 계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스라엘의 대적이 될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시는 지를 그대로 드러내셨고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시는지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르는 곳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고 계셨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고 또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주십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전혀 모르는 곳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러는 와중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산 위에 여기 저기서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동안에 산 밑 광야에서는 너무도 안타깝고 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싯딤에 머물러 있었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했습니다. 그 여인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청했는데 그들을 따라갔던 백성들이 그들과 먹고 마시다가 바알브올에게 절을 했고 또 남자들은 그 여인들과 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진정되었지만 그 날 그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염병으로 벌을 내리셨고 그래서 그 날 하루에 24000명이라는 엄청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비록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슬픔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십니다. 그런데, 막상 그러는 중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를 저지릅니다. 우상을 섬기고 이방여인들과 음행을 저지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관계는 이런 모양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참된 신앙은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진심과 진심이 통하는 참된 교제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위하고 계시는지, 얼마나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계신지를 생각해야 하며, 우리의 진심을 다해서 하나님의 진심에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이런 모양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 없이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면 결국 언젠가는 그 관계가 삐걱거리다가 크게 균열되는 일이 일어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복되게 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고 또 항상 우리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때에도 우리를 복되게 하시기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이러한 주님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으로 느껴지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과 닮아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삶을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 주심 가운데 평안한 삶을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려 주님을 사랑하고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