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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3.17.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민수기 27-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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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3월 17일 화요일




이제 또 한 번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인구조사도 끝났고, 또 아직 정복하기 전이지만 각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주는 일도 끝이 났습니다. 저는 어제 분배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한 또 하나의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26장 52절 아래쪽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각 지파별 사람 수를 헤아리게 하셨던 것은 그 숫자에 따라서 땅을 분배해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람 수가 많은 지파에게는 많은 땅을 주고 사람 수가 적은 지파에게는 적은 땅을 주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땅을 나눈 다음에 그 크기에 따라서 이 땅은 무슨 지파, 또 이 땅은 무슨 지파... 이런 식으로 나누어 주면 될텐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는 대신에 각 지파의 대표가 나와서 제비를 뽑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뽑은 땅을 자기 땅으로 차지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첫번째로 정하신 분배의 원칙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지파의 크기에 따라서 땅 크기가 달라지게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제비뽑기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큰 지파라고 큰 땅을 뽑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작은 지파라고 작은 땅만 뽑게 되지도 않을 것이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가지 땅 분배의 방식을 모두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분배원칙 중에서 어떤 것이 어떤 것에 맞춰져야 땅 분배는 조화롭고 공평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제비뽑기의 결과가 지파 크기에 따라 땅 크기가 달라지는 원칙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땅을 나눠주는 일은 뒤죽박죽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국 제비뽑기가 첫번째 분배의 원칙에 맞춰졌을까요? 그렇죠. 그렇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결국 우연이 하나님의 정의로운 법칙에 맞춰지게 된 것입니다. 


제비뽑기만큼 복불복이 없습니다. 그것만큼 제 멋대로 인것이 없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백성들에게는 이런 제비뽑기 조차 하나님의 뜻을 더욱더 온전하게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살다가 보면 참 불합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도 만나게 되고, 이것은 정말 순전히 우연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 혹시 이런 일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나 이 세상이 망가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의 삶이 과연 이런 것들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고 엉망진창이 될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비뽑기를 통해서도 이스라엘에게 완전하게 땅분배를 해 주셨던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의 역사가 아무리 예측불허이고 또한 변수가 많아도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 과정이 어떨지, 방법은 또 어떤 방법이 될지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그래서 우왕좌왕하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선택을 한다면 오히려 그런 것들이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우리의 삶과 이 세상의 역사를 망가뜨리고 뒤죽박죽이 되게 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꼭 믿고서 그 믿음에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 삶에 우리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는 우연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우연 때문에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항상 우리 삶을 완전하게 붙들고 계시고 또 완벽하게 다루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며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첫 이야기는 슬로보핫의 딸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슬로보핫에게는 딸들 밖에 없었는데, 슬로보앗이 광야에서 죽는 바람에 이 딸들에게는 땅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땅은 남자를 중심으로 주어졌으니까요. 그래서 슬로보핫의 딸들은 자기 지파를 찾아가 자기 집안 몫의 땅을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부동산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재산이 탐나서가 아니죠. 당시 땅은 곧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 일을 하나님께로 가져갔고 하나님께서는 이 일만 해결해 주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줄 아주 중요한 원칙 하나를 더 덧붙여 주셨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한 집안에 딸들만 있는 경우에는 딸들에게도 똑같이 땅을 상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하고 획기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당시로서는 여인이 가문을 대표하고 재산을 상속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여인이기 때문에 차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을 결코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원칙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원칙을 조금 더 확장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땅을 상속받을 직계가족이 없는 경우에는 가장 가까운 친척을 찾아서 그 땅을 상속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니었습니다.  각 지파들에게 나누어 주신 땅이 항상 동일한 지파에게 주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조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처음 모습대로 유지되게 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28장에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절기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각각의 절기를 지키는 방법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지만, 28장 첫 부분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아주 독특한 요구를 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여기를 보면 화제물은 하나님께서 당연히 받으시는 헌물이고 또 하나님의 음식이며 또 하나님께 향기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화제란 원래 그저 불로 태워드리는 제사라는 뜻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나의 음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물이 하나님의 음식이라는 말은 아마도 그렇게 익숙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제물들 중에서 화제로 드리는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양식이라고 말입니다. 양식의 역할은 만족을 주고 배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먹지 않는다고 죽는 분이 아니시니까 하나님께 양식의 의미는 만족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하나님께 만족이 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제물은 항상 신앙과 헌신의 표시이며, 또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제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음식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첫째로 하나님이 그것을 그렇게 드시고 싶어하신다는 뜻이고, 그것으로 배부르게 하시며 또 거기서 만족을 얻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그렇게 해 드릴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바치라’고 명령하고 계시니까요. 


신앙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먼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참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기쁜 마음을 자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사랑한다면 저절로 그렇게 할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정말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제물을 담아서 하나님께 드릴 때, 그것은 하나님께 만족을 주며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그것이 태워져서 하늘로 올라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역한 냄새를 달콤한 향수냄새처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 제물은 분명히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의 소유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진짜로 드려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이지만 그것과 더불어 하나님께 무언가 우리에게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 구체적인 헌신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가장 완전하게 섭리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항상 우리에게 그렇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의 삶 속에서도 분명히 그렇해 주십니다. 그러니 그 분은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실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의 헌신을 달라고 하실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하나님을 기쁘게 만족하게 해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한다면 거기에 억지가 있을 수 있을까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 주시는데, 피조물인 우리에게 그런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과한 것일까요? 


항상 하나님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기쁜 헌신과 사랑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그저 마음 속에만 품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만족하게 해 드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귀한 것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때, 그것이 오늘의 화제가 되어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마음을 표현하시기 위해서 방법을 찾으시고 또 그 방법을 몸을 움직여 실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고 만족하게 해 드리는 순간들이 많이 포함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