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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3.24.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신명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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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3월 24일 화요일




오늘부터는 신명기를 함께 읽으면서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신명기는 이제 40년 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준 마지막 설교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의 마지막 장이 모세의 죽음으로 마감되고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 설교일 뿐 아니라 유언과도 같은 메세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딱딱한 역사나 율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세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리면서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는 이제 광야생활을 모두 끝내고 드디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명기는 오늘 이미 구원얻은 이후에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명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를 시작하면서 모세가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드디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때가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미 거기 자리를 잡고 살고 있던 사람들과 싸워야 합니다. 싸워 이겨야만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땅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통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 약속된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자신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그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분명히 싸움은 해야 하지만, 그 싸움에서 자신들이 이길 수 있을까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승리는 하나님께서 결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분명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믿음의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과연 이런 세상을 상대로 내가 믿음의 싸움을 계속할 수 있고 또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상대로 해야 할 세상이 아무리 크고 강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곳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삶의 자리라면, 적어도 영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 곳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약속의 땅입니다. 이길 수 있을까는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저 그 약속을 믿고 우리의 믿음을 무기삼아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곳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땅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싸움의 승패는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변화들과는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진 것 같지만 완승을 거두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이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완패한 경우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승리가 항상 현실적인 승리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면 그 곳은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가 다스리는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준 후에 다룬 것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위임해 주신 영역에 한해서는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그들을 세울 때, ‘지혜가 있고 백성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들을 선발해서 세웠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들에게 부탁할 것은 부탁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일러주었습니다. 모든 재판을 할 때, 그 어떤 이유로건 편파적이고 차별적인 재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든 아니면 두려움 때문이든 재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정의로운 나라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온 세상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교회 내부만큼은 하나님의 공의가 다스리는 곳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교회를 보거나 교단을 보거나 아니면 무슨 기독교 연합단체를 보거나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는 공의가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그저 인맥과 금권, 그리고 교권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굽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이래서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이라고 말할 수가 없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가 다 교회의 지도자들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원칙을 붙들고 살며 교회를 섬기는 일에 힘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의 지도자들이 공의로운 마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꼭 기도해 주십시오.  


1장에서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가데스 바네아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벌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이미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대로 정탐들의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하고 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아주 악한 말로 모독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로하셨고,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서는 단 한 사람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은 눈 앞에 놓고 가데스 바네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했고, 결국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지요. 하나님의 약속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사람은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 그 성취의 유익과 영광을 맛보는 장본인이 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전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가지는 집단적인 성격 때문인데요. 하나님의 약속은 개인을 향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를 향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성도 개개인을 향하기 이전에 교회를 향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지만,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 중에는 그런 복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은혜가 개개인에게 복이 되려면 성도 각자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또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원망과 불평과 싸워야 하며, 그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순종해야 합니다. 선한 결과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실 줄로 믿고서 말입니다. 그래야 그 은혜의 주인공이 됩니다. 물론 때로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에서 나오는 부스러기 은혜는 얻을 수 있지만, 진짜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은혜의 주인공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니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그렇지만 공동체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우리들이 그 주인공이 되지 못하게 가로 막는 장애물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망각이 될 수도 있고, 그 약속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 될 수도 있고, 또 그 불신에서 나오는 불평과 불만, 그리고 불순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게 교회를 이끌어 갈 때, 그것 또한 그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앞에 그런 장애물은 없는지 잘 살펴야 하고, 그런 장애물이 우리 앞을 가로 막지 않도록 해야 하며, 자꾸 생겨나는 장애물이 더 큰 장애물이 되기 전에 신속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약속의 땅 문 앞에서 다시 광야로 되돌아가는 아픈 경험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항상 자기 앞에 있는 불신앙의 장애물들을 잘 발견하고 또 잘 처리해서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의 주인공이 되는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