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4.02. 새벽예배 -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2015 고난주간)



20150402D.mp3.zip





본   문 : 요한복음 13장 1-17절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식사 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일은 사실 단순히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후에도 제자들이 여전히 하나가 되어서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신 것이고, 나아가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공동체란 어떤 모습이어야만 하는 지를 보여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2절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유다 속에 있는 악한 마음과 그로 인해 하게 될 행동도 다 알고 계셨지만 유다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은 바로 그와 같은 끝까지 용서하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이 담겨진 몸짓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갑자기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발을 씻기시자 당황스러워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하시는 예수님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자신의 발은 씻기실 수가 없다고 예수님의 행동을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 수 없을 것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만약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발 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말을 받아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이지요. 우리는 베드로 덕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발을 씻어주는 행위 속에는 섬김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용서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제자들, 그리고 우리들은 이미 목욕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먼지투성이의 길을 걷다가 더러워진 발처럼 살아가다가 다시 더럽혀진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들을 다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내놓고 다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와 주님은 상관이 없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없다 하면 우리는 거짓말 하는 자가 되고 또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분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번 하나님의 커다란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계속 반복해서 자신의 죄악됨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 분의 깨끗게 해 주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와 하나님, 우리와 예수님 사이의 관계를 온전케 하는 핵심입니다. 그 은혜가 끊어지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주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14절과 15절에서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의 행동은 하나의 본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대로 하라고 보여주신 시청각 교재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길 수 없다고 만류하는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말씀드린 대로 이것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있게 하고 또 유지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용서해 주시고, 제자들은 죄를 고백하고 죄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는 상관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자들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행동이 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주요 선생으로 그렇게 했으니 너희도 서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은 계속해서 의미있는 관계를 지속할 수 있으며, 하나됨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잘못될 수 밖에 없습니다. 크고 작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서로 어울려서 함께 살며 일하다 보면 서로에게도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죄가 관계를 깨뜨리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을 막으려면 서로가 서로를 용서해 주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팔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룟 유다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고 그래서 다른 제자들처럼 그의 발도 씻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려면 그 사람이 가진 허물을 보고, 또 나에게 저지른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항상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잇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란 감정적인 호감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감정보다는 의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1절은 예수님의 사랑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여기서도 그것이 분명해 집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와 선한 책임감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사랑을 그저 마음 속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절대로 이런 사랑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랑은 상대방이 사랑스러울 때만 사랑하는 그런 사랑일 수 밖에 없고, 상대방이 내 맘에 안 들거나 나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입히면 이내 정죄와 증오로 바뀔 수 밖에 없는 값싼 감정에 불과하니까요. 이런 얄팍한 감정만 가지고는 결코 서로를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며 서로의 발을 씻길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왜 우리가 서로를 끝까지 사랑하지 못할까요? 왜 우리는 서로를 그런 사랑으로 용서하며 용납하기를 그렇게 어려워할까요? 주님이 말씀해 주시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잘 모르고 있고 둘째는 여전히 내가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보다 더 높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완전히 순결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죄 뿐만 아니라 죄인과도 가까이 하실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고 우리를 용납해 주셨습니다. 과연 그 일이 하나님께 쉬운 일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 성자 하나님을 종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죽게 하는 무한한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의 죄를 온통 뒤집어 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가장 낮고 처참한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한히 낮추신 은혜 덕분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 너무 많이 높아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내가 용서하고 용납하며 섬겨야 할 다른 지체들보다 너무나 많이 높아져 있습니다. 주님도 아니고 선생도 아닌 그저 똑같은 죄인들에 불과하면서도 말이지요. 그래서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그래서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깨어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종이 되셔서 우리를 섬기셨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의 발을 씻어주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버림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기 위해서 무한히 낮아져 목숨을 다해 섬기시는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끝까지 사랑하기 위한 댓가를 지불하면서 서로의 발을 씻겨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서 우리는 주님이 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고, 우리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지 그 복된 이유를 몸된 교회 안에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서로가 발을 씻기는 우리들이 될 때, 예수님께서 복되다 하신 그 복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지 알고 누리는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그 안에서 이 복을 놓치지 않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