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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4.23.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신명기 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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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4월 23일 목요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물려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지은 노래입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노래를 지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 주라고 하신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헤어짐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지은 노래도 아니고 축복하기 위해서 지은 노래도 아닙니다. 이 노래는 애석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떠나고 배신할 것을 기정사실로 해 놓고,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러야 할 그런 노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거기서 필요한 것들을 얻게 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을 더 열심히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고 배신하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왜 넉넉하고 풍성할 때 하나님을 더 잘 믿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게 될까요? 사실 사람은 넉넉하고 풍성할 때 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끝까지 믿지 못합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살게 하신다고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이것은 형식적으로는 하나님 곁에 있어도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일이 해결되고 편안해지고 넉넉해 지면 그 때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고 상황을 해결해 주시면 그때부터는 교만과 나태함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은데도 실은 자신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의지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 느슨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지 않아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됩니다. 정말 많은 성도들이 이 길을 갑니다. 성도들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죄로 기우는 습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이후의 인간은 본성이 향하는 방향이 완전히 비틀어져서 무언가 의지할 수 있는 것만 있으면 인간은 그것을 붙들려고 하지 하나님을 붙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성도들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자신의 과거와 과거의 은혜를 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축복입니다. 잊어버려야 할 것을 잊지 못하면 사람은 절대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 망각이 잊지 말아야 할 것까지 잊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성도도 이런 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 이런 것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하나님 밖에 없다고 고백했는데, 하나님만 사랑한다고 노래했는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고백도 사라지고 그런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는 충만하고 기쁜 삶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누리고 있는 진짜가 아닌 형편없는 복에 익숙해져 있어서 별로 예전의 참된 은혜의 자리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마음도 절실하지 않습니다. 죄악됨과 망각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꾸 하나님 아닌 것으로 향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마음은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결코 죄 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라” 자녀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자녀됨을 취소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따끔하게 징계하십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주셨던 모든 좋은 것들을 거두어 가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방패가 되어 주시고 산성이 되어 주셨지만, 이제는 그렇게 해 주시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자꾸 하나님께서 현실적인 복들을 빼앗으시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것만 징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이러한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복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크고 무서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영혼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에 평안이 사라집니다. 마음에 기쁨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무감각해 집니다. 말씀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듣는 말씀이 기쁨과 믿음의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은 불안하고 허전해 지기 시작합니다. 몸도 건강하고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마음이 그렇고 영혼이 그렇습니다. 삶은 푸석푸석해 지고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모양이 되어져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단히 붙들어 주시지 않을 때,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실 때 일어나는 정말 큰 일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삶이 망가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중요하고 복된 영혼의 복과 은혜가 사라지는 것, 이것이 성도의 삶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일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눈에 보이는 삶에 아무런 이상이 없을 때에도 자기 마음과 영혼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영혼에 기쁨과 감격이 사라지고, 마음이 건조해지고 냉냉해져 가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때문에 그만큼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비록 일시적으로지만 그냥 내버려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는 다른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 다른 것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내 삶에 손을 대시고,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흔들리게 내버려 두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없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의 노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긋난 길을 가다가 고통을 당할 때, 다시 불러야 할 노래였고, 이 노래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충분하였듯이 오늘 우리도 이 노래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이 노래를 거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주신 노래로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 평생에 이런 노래는 부르지 않으면 더 좋겠지요. 그렇지만 불러야 할 상황이 생기더라도, 그런 곳까지 우리가 어긋나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이 모세의 노래를 기억해 내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소망이 있습니다. 죽이신 분이 살리실 것이고 상하게 하신 분이 고쳐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우리의 삶이든 우리의 영혼이든 말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래를 다 가르친 후에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그런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야 생명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참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비록 우리에게 회복의 은혜, 다시 낫게 해 주시는 은혜가 있지만 항상 성도들의 참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거기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그래서 생명과 평안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