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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6.11. 새벽기도회 - 성경읽기와 묵상(여호수아 4-5장)


20150611D (#1).mp3.zip





설교일 : 2015년 6월 11일 목요일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 예고된 후,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엘리 집안을 벌 주시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사용하신 전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엘리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벡에 진을 친 블레셋의 군대를 상대로 에벤에셀에 진을 쳤습니다. 첫번째 전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배였습니다. 4000명쯤 되는 전사자가 났던 것입니다. 


첫번째 전투의 결과를 보고 장로들은 나름대로 원인을 찾아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이 패배는 하나님이 패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음 전쟁에서는 분명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로의 성막에 있는 언약궤를 전쟁터로 옮겨오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당연히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수행했습니다. 그렇게 진영으로 들어오는 언약궤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호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이제 승리는 정해진 것이라고 본 것이지요. 법궤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진영에서는 정반대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말 그대로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기왕 그렇게 된 거 겁을 먹고 자포자기하기 보다는 힘을 내서 싸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재공격을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전투의 결과는 너무나 뜻 밖이었습니다. 승자가 되어야 할 이스라엘은 완전히 패자가 되고 패자가 되어야 할 블레셋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날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만 3만명이고 전쟁통에 홉니와 비느하스도 목숨을 잃고 언약궤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탈취를 당한 채로 전쟁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은 당연히 엘리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엘리는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충격으로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듣고 비느하스의 아내는 갑자기 진통을 하다가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영광이 없다는 뜻의 ‘이가봇’이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쉽게 착각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형식이 내용을 보증해 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이런 착각은 신앙의 영역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데요. 자꾸 형식을 제대로 갖추어 놓으면 내용은 그저 따라온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예배는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게서 받으시고... 아닌 것 같아도 자꾸 이렇게 생각하게 되고, 또 이렇게 믿어버리게 되는 것이 우리들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첫번 전투에서 패배하자 그들은 직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아서라고 말입니다. 바르게 반응했다면 뭔가 자기들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못하게 막는 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를 찾고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있는 영적인 환경을 만들었겠지요. 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저 언약궤를 가지고 옵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하나님께서도 따라오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100퍼센트 잘못된 생각이었고, 결국 대해하고 법궤까지 빼앗겨 버리고 말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에 자동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인격이시고 완전히 자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무언가가 자동적으로 이루어 진다고 생각되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이지 그것 또한 자동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법궤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 한 단어 한 단어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법궤는 분명히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였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보좌는 언제든지 왕이 떠날 수 있고 떠나면 아무 의미 없는 의자가 될 뿐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왕이지 보좌가 아닌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의자가 있으니 왕은 따라오게 되어 있는 부록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룹 사이, 그러니까 지극한 영광 가운데 계신 왕중의 왕이시요 온 세상을 지으신 홀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분이 의자가 움직인다고 자동적으로 그 의자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착각이었지만 오랜 세월 형식적인 신앙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잊게 되었고, 그래서 그렇게 말도 안되는 오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오해는 하나님을 섬기고 또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한 심각한 오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고서 섬기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알고 인식하지 못하면 결국 신앙은 신앙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중심입니다. 믿는 자들의 중심이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때, 그렇게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모실만한 그 분의 보좌가 되어 있을 때, 그 때 하나님은 그들과 충만하게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래야 믿는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좋은 것인지를 제대로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법궤는 언약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중심에 하나님의 언약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언약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언약 당사자들 모두가 다 언약에 신실할 때, 그 언약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보장되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해야 했습니다. 약속대로 하나님만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와 같은 약속과 의무를 잊은지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참고 참고 또 참으셨지요.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떠나십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떠난 이스라엘은 오합지졸,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털이의 비참한 신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블레셋은 승리를 거두고 좋다고 법궤를 빼앗아 갔지만 거기서 오히려 하나님의 법궤는 블레셋 사람들의 땅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립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얼마나 능력 많으시고 거룩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신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좋다고 거만하게 들고 갔던 법궤를 나중에는 서로 떠밀다가 결국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말 그대로 블레셋 전체가 그 작은 궤짝 하나를 감당하지 못해서 쩔쩔 맸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그 분의 용서와 은혜, 함께 해 주심과 공급해 주심, 그리고 우리 영혼에 부어 주시는 은혜 등... 이런 것들이 없으면 우리는 절대로 우리 답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룹 가운데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능력있고 그렇게 영광스러우며 완전히 자유로우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무엇에, 그리고 어디에 자동적으로 묶이는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머물러 계시도록, 우리 삶을 하나님의 보좌로 삼아 항상 거기 앉아 계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과 영혼과 삶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조심스럽게 살피며 다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삶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 놀라우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가 우리 삶과 우리 마음을 그룹들 사이에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로 잘 가꾸고 지켜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순간 순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하루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