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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5.06.28. 전교인 기도회 -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사사기 10)



20150628SE (#1).mp3.zip





    본문 : 사사기 2장 16-23절




    제가 나이가 조금씩 더 먹어가면서 문득 문득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 생각이 더 많이 납니다. 횟수만 그럴 뿐 아니라 깊이도 더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들 중에서 제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당혹스럽게 하는 것이 있는데, 때때로 그 때는 전혀 몰랐던 아버지의 어떤 행동이 실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일찍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사실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모르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 방식대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 때 저는 그게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만약 그 때 그걸 알았더라면 아버지와 좀 더 잘 지내고 더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몰랐기 때문에 아버지를 오해했고, 또 아버지가 저희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으시는 줄 아는 바보같은 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께 왜 그렇게 죄송스러운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과 아스다롯, 그리고 주변의 잡신들을 섬기자 하나님은 그들을 주변민족의 손에 붙이셨고, 또 직접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렇게 사람도, 땅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중적으로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은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용서해 달라고, 살려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음과 생각을 돌이키셔서 이스라엘을 구해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그들에게 사사들을 지도자로 주셨습니다. 사사는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인 동시에 군사지도자로 이방민족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뿐이었습니다. 조금 평안해 지면 또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고통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다시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소리를 들으시고 말입니다. 사사기의 역사는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는 이스라엘과 그 이스라엘을 건지시는 하나님에 대한 반복의 역사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결코 그 백성을 버리실 수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의 역사가 바로 사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항상 사랑하시며 우리를 항상 사랑으로 대하십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이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겪게 하시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표현임을 생각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되지 않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의 계획대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고 계시며 그 가운데서 그 계획을 세우시기 때문에데 그 계획을 바꾸실 필요가 전혀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아주 놀라운 사실을 일러 줍니다. 그것은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들 때문에 그 분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때리십니다. 다시는 징계를 거두시지 않을 것처럼 말씀하시고 그렇게 엄하게 우리를 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런 마음은 바뀝니다. 고통 당하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징계의 강도를 낮추시기도 하고, 그 기간을 단축시켜 주시기도 하십니다. 이번만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시겠다고 마음 먹으셨다가도 우리의 곤경과 고통을 보시고,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런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은혜가 없고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라서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 마음대로 행하시는 분인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마음을 바꾸시고, 생각을 돌이키십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럴만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그 뜻을 돌이킬만큼 훌륭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지요. 그 죄악의 깊이와 크기는 다를지라도 우리도 일생동안 반복해서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가슴 아프게 한 못난 자녀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들 때문에 그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마음과 생각을 바꾸십니다. 그렇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그렇게 만들 아무런 자격도 공로도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자식으로 철이 든다는 표시는 부모의 사랑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일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거듭 거듭 마음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신앙인으로서 철이 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의 그 엄중하신 뜻을 바꾸고 돌이키십니다. 자주 자주 그렇게 하시지요. 그런데, 그 사랑을 아는 우리는 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기가, 그 분께로 온전히 돌이키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설교를 준비하려고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런 질문이 떠올라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죄송스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대해주시는데,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너무 기계적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에게 베푸시는데, 나는 그 분을 그저 하나님이시니까 섬겨야 할 분 쯤으로만 생각하고 그렇게 대하고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죄송스런 마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의무적인 신앙, 율법적인 신앙, 그리고 기계적인 신앙을 벗어나려면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되어야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마땅히 우리의 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고, 우리는 마땅히 그 분을 섬겨야 할 의무가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참 신앙은 이런 의무를 만족시키는 데서 멈춰서면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종으로 섬기기 보다는 자녀로서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그렇게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이 그렇게 진심과 진심이 서로 통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돌립니까? 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일을 그렇게 힘들어 합니까? 그것은 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할 뿐, 그 분을 진실로, 기꺼이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불신앙으로 곤경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위해서 사사를 세워 이웃의 대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 때, 이스라엘은 사사를 따랐고, 그 사사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또 하나님을 떠나고 이웃의 신들을 섬기는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심지어는 아직도 자신들을 건진 사사가 살아있을 동안에도 그랬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용서받는 일을 인격적으로가 아니라 기계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계가 아닙니다. ‘죄 고백’이라는 동전을 넣으면 ‘용서’라는 제품을 내놓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용서는, 그 끊임없는 용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고 다함이 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사랑, 그것이 용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용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내는 일에 실패했고, 그래서 똑같은 실패를 늘 반복했던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어렸을 때에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주변의 좋지 않은 유혹에 대한 저항력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 속에서 성장할 때,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복음이 그 복음을 진실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고 또, 그에게 참된 인생을 되찾게 해 준다고 알고 또 그렇게 믿습니다. 그렇다면, 왜 복음은 그런 엄청난 능력이 있는 것입니까? 왜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을 그 단순한 복음이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복음이 하나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진심으로 대면한 사람이라면 그 사랑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복음의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의 참된 가치를 되찾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동일한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죄 짓고 용서받고 또 그 죄로 돌아가는 식의 반복을 거듭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주변이 유혹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어마 어마한 하나님의 그렇게 깊고 오래 참으시는 놀라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그래서 자신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깊은 사랑에 설득되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정말 소중한 존재로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무적인 신앙도 분명히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도 분명히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무적인 신앙은 그것이 의무적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의무가 우리에게 부여되면 우리는 먼저 그 의무가 올바른 것인지를 판단합니다. 옳다는 판단이 서면 그 다음에는 그 의무를 나의 의무로 받아들이고, 그 의무가 요구하는 것을 행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바로 이 결심이 그 의무를 향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의무에 머문다고 할 때 그래서, 그런 신앙의 중심은 항상 내 결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결심이 흔들린다는 게 문제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변화된 듯하다가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고 변화된 듯하다가도 제 자리로 돌아가는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까? 그들의 신앙이 결심에 의해서 시작되고 유지되는 의무적인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결심이 퇴색되고 약해질 때는 그들의 신앙도 함께 퇴보하는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의 지속적인 변화는 우리의 결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변하지 않을 만큼 강하지 않듯이, 우리의 결심도 그렇게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변화는 우리가 우리를 향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기 시작할 때 시작되고, 그 사랑을 누리며 성장하고, 그 사랑에 설득되었을 때에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일단은 그 신앙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되는 지점까지는 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신앙, 성품과 삶에 참된 변화가 일어나길 원하십니까? 그리고 그 변화가 잠시 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조변석개하는 변화가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까? 진정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우리 때문에 스스로 생각을 꺾으시고, 마음을 바꾸시는, 사랑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약해지시는 길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그 진심을 아는 일에 마음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그 속깊은 사랑에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여서 여러분도 하나님을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어 사랑하는 곳까지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때문에 마음과 생각을 계속 돌이키십니다. 우리를 징계하시려던 그 손을 사랑 때문에 거두시고, 미루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덕분에 부족하고 연약하며, 실패를 거듭하는 우리지만, 오늘도 이렇게 주님 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 때문에 그 마음을 돌이키시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돌이키기를 바라고 기다리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이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마음을 돌이키는 하나님의 철든 자식들이 되기로 작정하기를 바랍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