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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7.0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무엘상 30-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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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출전을 거절당한 다윗은 다시 자신의 거주지인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다윗과 병사들의 눈 앞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멀리서 부터 그것을 알았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다윗이 없는 틈을 타서 시글락을 공격하고 다윗과 부하들의 식구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가면서 불을 질러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글락에 도착하니 성읍은 텅 비어 있고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윗과 부하들은 목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울었습니다. 식구들이 다 잡혀갔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이런 경우 슬픔은 결국 분노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하들은 다윗이 자신들을 이끌고 아기스의 전쟁에 참여하자고 해서 거기까지 갔었기 때문에 그 책임이 다윗에게 있다고 여기고 다윗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처음에 다윗은 무척이나 겁을 먹고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금새 하나님을 의지하고 정신을 차리고 일을 수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점점 지도자 다운 지도자로 성숙해 가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상황이 그렇게 되면 서로 다투고 갈등하기 마련인데, 아무 말 없이 아히멜렉에게 에봇을 가지고 오게 해서 우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지금 따라가면 아말렉 사람들을 따라 잡을 수 있고, 또 모든 것을 도로 되찾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600명의 부하들은 곧바로 아말렉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한 번 먼 길을 다녀온 뒤라 600명 중에서 200명쯤되는 숫자는 많이 지쳐 있었고 그래서 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그 200명은 브솔 시내가에 머물게 하고는 나머지 400명과 함께 아말렉 사람들을 계속 추격했습니다. 600명으로도 모라랄텐데 거기서 200명을 남겨 둘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용기를 낼 수 없을 때,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 올바른 편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추격하던 도중에 중간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병들고 굶주려 그냥 내버려 두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다윗에게로 데리고 왔고 다윗은 그에게 물을 주고 또 금새 기력을 회복하도록 단 것들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말렉 족속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게 해 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 애굽 사람은 시글락을 공격한 아말렉 족속 중 한 사람의 종이었는데, 중간에 병이 들자 버림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천사를 대접했던 아브라함처럼 다윗 또한 자기도 모르게 베푼 친절이 베푼 친절의 몇 십 배, 몇 백 배의 유익으로 되돌아 오는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일도 바쁩니다. 나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시간을 내고 물질을 내어서 도와 줍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할 때, 그렇게 하면 그 사람들도 나에게 무언가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그 사람에게 베풀었던 친절과 같은 친절을 베풀 것입니다. 나를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꼭 필요한 유익들은 나에게서 다른 사람에게에게로, 그 사람에게서 또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 갑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내가 누군가의 도움과 친절이 꼭 필요할 때, 나에게도 돌아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그렇게 해서 더 풍성하고 살 만한 곳이 되도록 그렇게 섭리해 가십니다. 중간에 누군가가 그 선을 끊어 뜨리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나는 이 세상에 사랑과 선을 더한 것이고, 그것은 결국 내가 하늘나라에 뿌린 씨앗과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족한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아말렉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내고 추격해서 격퇴한 다윗과 부하들은 잡혀갔던 가족들과 재산들을 고스란히 되찾고, 거기다가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빼앗은 물건들까지 모두 전리품으로 챙겨서 시글락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병사들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전리품을 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은 한 것이 없으니 그저 가족이나 돌려 받고 말게 할 것인가? 조금 냉정하고 매몰찬 사람들은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적용해서 그냥 가족만 되돌려 주고 말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그 모든 사람들에게 전리품을 똑같이 나누어 주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얘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의 법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이고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시장이 아닙니다. 한 만큼만 받을 자격이 있고 또 그만큼만 받아야 하는, 그런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런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은혜와 긍휼의 공동체 입니다. 때로 불공평한 듯하기도 합니다. 부당하게 생각되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그게 교회입니다. 이것은 바르지 않은 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은혜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미덕입니다. 자꾸 본전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될 수 있는대로 넉넉하게 베푸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조금 억울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게 하나님 앞에서 잘 하는 것이니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일들을 생각하면서 참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안 하는 사람들은 그냥 하나님께 맡겨 두시구요. 그러면 공동체가 풍성해 질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이 영광스러워 질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들하고만 전리품을 나누고 끝내지 않았습니다. 아말렉의 침략을 받고 많은 것을 빼앗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들이 빼앗긴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도자답게 세워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에서 자기 아들들과 함께 전사하고 맙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왕의 자리인데 결국 그 생애를 처참한 전사로 끝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시체의 목을 베어 가져가고 시체는 벧산 성벽에 매달아 모독했습니다. 겨우 용기를 내어서 이 시체를 거둬주고 장사를 지내 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덕분에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사울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남을 괴롭게 하고 그렇게 무언가에 집착해도 결국 마지막의 때와 모습은 자기가 정할 수가 없습니다. 사울과 같은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점에서는 다 마찬가지이지요. 인간은 완전할 수가 없고, 그래서 그 삶 또한 실수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에 지나친 욕심을 내고 또 집착하고 그것을 얻고 지키느라고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것은 그러지 않아도 불완전한 인생을 스스로 더 불완전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성도는 그 인생을 자신이 살지 않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살게 하셔서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삶이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항상 자신의 인생이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적은 그런 인생이 되도록 자리를 잘 정하고 마음을 잘 다스리며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