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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07.12. 주일오전 -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여호수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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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여호수아 10장 16-40절(16-27절만 읽기)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일이 별 것 아닌것 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게 될 때 우리 삶에는 일종의 ‘변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순간 실은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의 의미와 질서가 거의 정반대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일단 하나님을 믿기 전에 우리는 그저 이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순간 우리에게는 그 이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하늘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꽉 막혀 있고 좁디 좁은 닫힌 세계에 살던 우리가 영원하고 무한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실 보다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도 참된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지요. 그렇지만, 이제는 그 현실이 우리 삶의 전부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영원히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이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또 한 가지 그러면서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육안으로 보이고 몸으로 경험되는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영적인 차원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요. 그 때부터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의 눈에 보이는 차원보다 영적인 차원이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고, 또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을 제일 중요한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서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나면 그게 다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거 정말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경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 경쟁에서 이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게 행했느냐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성공하면 비록 경쟁 자체에서 진다고 해도 진 것이 아니라 실은 그것이 진짜로 이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여전히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결과보다는 동기와 과정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려고 애썼는지 또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을 섬기려고 최선을 다했는지, 애초부터 그 열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 내려는 것이었는지가 더 중요해 집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좋아보이는 열매를 맺었다고 하더라도 그 열매가 그런 과정과 애씀의 결과가 아니라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르지 않고 오히려 그런 성공을 부끄러워 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들은 모두가 다 영적인 차원을 보게 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들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오늘 한국교회는 전혀 영광스럽지가 않습니다. 커다란 예배당 건물은 즐비하고 교인의 숫자는 천만명이 훨씬 넘는데도, 이 땅의 교회들이 거둔 성공을 보고 진심으로 축하하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고, 교회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 안에서 위에서 말씀드린 그런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도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가치의 체계가 거의 변하지 않고 여전히 육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전에 중요하던 것들이 여전히 제일 중요하고, 여전히 예전에 보던 것들만 보면서 그것만 붙들고 살아갑니다. 여전히 무엇을 얻고 이루는 것 자체를 성공이요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교회와 성도가 세상과 구별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뒤쫓는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세상도 그런 우리에게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우리 신앙을 가치있고 귀한 것으로 평가해 주지 않고, 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와 교회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영원한 것이며, 그래서 현실의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는 것보다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고 성공하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성공과 승리를 생각하는 틀 자체가 바르게 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그리고 이 나라의 교회들은 다시 한 번 칭찬받고 귀히 여김을 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성도들의 삶 속에서는 현실적인 승리와 영적인 승리가 일치할 때도 있지만 서로 상관이 없거나 반대가 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승리를 했지만 영적으로는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영적으로는 승리했지만 현실적인 면에서는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그들에게는 이 두 가 지가 항상 일치했습니다. 실제 전쟁에서의 승리는 곧 그들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뜻했고, 반대로 실제 전쟁에서의 패배는 늘 영적인 실패의 결과였습니다. 그들에게 이 두 가지가 이렇게 일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스라엘은 하나의 나라인 동시에 그 나라 전체가 교회인 아주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현실의 전쟁은 곧 영적인 전쟁이었고, 그래서 두 전쟁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항상 일치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나 구약성경의 여러 말씀들이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는데요. 이것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자신이 싸우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중요한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성 전투 후에 다섯 족속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은 이스라엘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분문말씀은 그 전쟁의 패잔병들과 도망친 다섯 족속의 왕들을 처리하는 이야기로 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다섯 왕은 막게다의 굴로 피신했다가 거기서 사로 잡혔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왕들을 붙잡아 처형합니다. 그런데, 그냥 처형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을 다 불러놓고 그들을 처형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다섯 왕을 무릎꿇게 해 놓고 지휘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까이 와서 이들의 목을 밟으라 두려워 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시리라” 그리고 나서 그들을 처형했습니다. 


    그 지역 최고의 맹주들이었던 다섯 왕들입니다. 이들이 힘을 합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쟁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승리로 끝났고, 이제 그 다섯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때, 그들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똑같은 전쟁을 치러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 줄 가장 좋은 신앙교육의 자료였지요. 그렇게 강대한 다섯 왕들과 성읍들을 하루 아침에 우박으로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편을 들어주신다면 더 이상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약함과 적음을 보고 또 상대방의 강함과 많음을 보느라고 두려워하며 떨 이유가 없어집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다섯 왕들을 처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백성들의 믿음을 격려하는 여호수아의 말을 가만히 들어 보면 그 말들이 전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들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말들을 어디서 들었지요? 그렇습니다. 이 말들은 전부 다 하나님께서 두려워 하는 여호수아에게 찾아오셔서 약속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대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가 그 말을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전에는 여호수아도 두려워 했습니다. 놀라고 마음이 흔들렸지요. 자신이 해야할 일들 앞에서, 그리고 자신이 싸워야 할 적들 앞에서 그는 전혀 담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수아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놀라지 말라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입니다. 격려 받던 자가 격려자가 되어 있고, 믿음이 필요했던 사람이 믿음을 독려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도들 속에서 만들어 내기를 바라시는 변화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신대원에 다닐 때만 해도 참 철이 없고 믿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저는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라는 답만 들려주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 했습니다. 이상한 전도사도 다 있다 싶으시겠지만 제가 바로 그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토로해 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요. 힘들어 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저도 그 말부터 합니다. 물론 제가 “기도만 하면 다 돼.”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기도하자는 말부터 합니다. 그렇다면 왜 저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제가 그 이후에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선물인지를 반복해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비밀을 배웠기 때문이지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제가 이것을 직접 반복해서 경험하고 나니까 그것이 제가 그런 분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이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그랬습니다. 여호수아도 그 동안의 경험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두려움을 몰아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가장 실제적인 능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어떤 미사여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두려워 하고 있는 자신에게 들려주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해 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가 참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 때부터 그는 그 입에서 자신이 진실로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보다 확실하고 능력있는 해답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배웠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의 입술에서도 이런 믿음의 말, 여러분이 진실로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항상 여러분을 위한 답이 되고, 또 다른 이들을 위해 들려 주는 능력있는 답이 되는 복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이런 놀랍고 복된 변화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 성읍과의 전투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 28절부터 마지막절까지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치렀던 싸움들과 그 싸움들의 결과에 대한 기록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 모든 기록이 실은 거의 똑같습니다. 어느 성과 전쟁을 벌여서 그 성을 진멸하여 바쳤다는 기록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40절과 41절에서는 그 모든 전쟁들의 실제적인 결과를 이렇게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4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여기 나열 되어 있는 곳은 전부 가나안 땅의 남방지역이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당히 짧은 시간 동안에 가나안의 남방지역을 전부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41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아래쪽의 훨씬 넓은 지역까지도 더불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8절부터 42절까지의 말씀을 전부 요약해 보면,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된 한 번 한 번의 작은 승리들이 모여서 커다란 승리가 되었고, 그 승리는 또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더 큰 승리의 일부분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인 영역에 속하는 일들 중에는 한 번에 전부 다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작은 것들이 모여 결국 큰 것이 되는 원리, 사소한 것이 모여서 의미있는 것이 되는 원리는 영적인 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단번에 은혜 받아 신령하고 거룩한 사람이 될 수가 없구요, 한 번 받은 은혜가 그 사람을 영원히 견고하고 풍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한 번 한 번의 참된 기도와 말씀에 대한 헌신이 쌓이고 쌓여서 점점 더 크고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전쟁에서 승리해 보지 않고서 큰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 작은 싸움에서 이겨 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원리를 큰 싸움에도 적용해서 이길 수 있고, 그렇게 자기 삶 전체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약속의 땅으로 만들어 가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하늘을 맛보며 가나안 땅에 사는 것과 같은 참으로 복된 삶을 살아가려면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걸음들을 믿음으로 옮겨놓는 일에 계속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것을 알면서도 삶이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이 길을 잘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상황이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때로는 성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참 미안하고 안스럽고 그렇습니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인생이 가나안 땅에 살아가는 것과 같은 복된 삶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힘들고 피곤하게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이러한 꿈을 이루는 진짜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의 전쟁에서 이기고 또 현실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꿈꾸는 삶은 결코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조건들이 채워진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사는 것같은 샬롬이 넘치는 삶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 나라를 닮아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그런 삶이니까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고 영적인 영역에서 성공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은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닮은 그런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현실 뒤쪽에 놓여있는 이 영적인 전쟁에서 한 번 한 번 이길 때마다 우리 삶의 부분 부분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 되고, 그렇게 점점 더 하나님 나라를 닮은 곳이 되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쁘고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바쁘고 힘들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해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바쁘고 피곤하기만한 삶을 살다가 끝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리교를 세운 존 웨슬레의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그 분은 평상시에는 세 시간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쁠 때는 네 시간 기도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분은 바쁘면 바쁠수록 영적인 싸움에서는 지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면 삶의 풍성함과 참된 질서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바쁘고 힘들게 살면서 절실하게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든 바쁘고 힘든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바쁘고 힘든 삶 자체가 우리에게 평강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바쁘고 힘들어도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닮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찾아야만 하는데, 그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승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승리를 위해서, 그것을 중심에 놓고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막게다와 립나에서는 여리고 성에서 했던 것처럼 똑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멸하여 드렸고, 라기스에서는 립나에서와 똑같이 했고, 에글론에서는 라기스에서와 똑같이 했고, 헤브론에서는 에글론에서와 똑같이 했고, 드빌에서는 헤브론에서 한 것과 똑같이 했다고, 그렇게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이 했더니 가나안의 남방지역을 모두 차지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진짜로 약속의 땅에서 살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을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언제나 승리의 비결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워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다음의 승리를 보증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앞에서 사용한 방법을 그 다음에 또 사용했고, 그 방법을 그 다음에도 반복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미 배운 승리의 비결이 있다면 그 비결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한 번 승리했는데, 다음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형편이 조금 더 어렵다고 해서 이전에 나에게 영적인 승리를 가져다 주고, 내 삶에 하나님의 평강을 가져다 준 그 방법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참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한 번의 승리는 다음의 승리로 이어질 수 없고, 주님 주시는 확신과 평강은 또다시 희미해 지게 되니까요.  


    성도 여러분 모두, 복된 삶을 좋아하시지요? 여러분의 삶의 자리와 우리 교회를 젖과 꿀이 흐르는 은혜의 땅으로 만들고 싶으시지요? 패배와 실망이 아니라 승리의 기쁨으로 채워져 가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으시지요? 그렇다면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이런 저런 핑계들을 다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고 또 순종하기 위해서 더 헌신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에게는요. 하나님의 말씀 외에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 밖에는 이 땅 위에서의 삶을 정말 사는 것 답게 복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바빠도, 그 어떤 이유가 있어도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아 이 길을 계속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음 번에도 우리 편을 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음 번에도 순종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며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생활은 승리의 기쁨으로 채워져 가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확신 또한 크고 깊어져 갈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정말로 이스라엘을 편들어 주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 분의 뜻에 순종할 때, 그 분은 우리 편을 들어주시고 우리를 대신해 싸워주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서 힘을 내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십시오. 이미 약속은 주어져 있습니다. 그 약속이 현실이 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고 또 확실한 일에 여러분의 인생을 한 번 걸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편 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게 해 주시고, 믿음 안에서 우리 삶의 구석 구석을 하나님 나라처럼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는 확신하는 바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오고 우리 삶은 승리의 기쁨으로 채워져 가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변화들이 일어나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