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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7.16.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무엘하 18:19-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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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 2015년 7월 16일 목요일





    오늘 본문은 다윗에게 반역한 압살롬이 죽은 후,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해 주는 바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일단락되고 그 모든 일들이 다시 제 자리를 찾는 이야기이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또한 그 안에서 이렇게 저렇게 처신하기도 하고 또 이런 저런 역할을 하면서 이야기를 채워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물고기가 있어도 그 물고기 한 마리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강물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때로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센 놈들이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런 놈들도 모두 강물의 흐름 속에 자신의 몸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그 속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이 가지는 관계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대단하고, 또 엄청난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 인간이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큰 흐름 속에 몸을 담그고 그 흐름 안에서 움직여 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한 사회, 한 나라, 그리고 한 시대 전체를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이지요. 역사를 시작하시고 끝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첫 시작과 마지막 목적지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긍정적일 때,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한 일이 되고 또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 되지만, 부정적일 때는 정반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 나라를 거스르는 일이 되니까요. 때로는 그것이 순전히 인간적인 일처럼 보이고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일 하나 하나도 실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알건 모르건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하나님 나라와 깊은 연관을 맺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요압은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처리한 것만 놓고 본다면 굉장히 지혜롭고 긍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다윗은 압살롬을 죽이면 안된다고 분명하게 말했지만 요압은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다들 두려워하는 일을 한 것이지요. 이것은 절대로 개인적인 감정이나 치기로 저지른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과 다윗 왕국을 위해서 스스로 책임을 질 각오를 하고 그렇게 한 일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지금 다윗 왕국의 사정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직접적인 원인들 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다윗의 명령처럼 압살롬을 그냥 살려 두면, 그것은 미래에 이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도록 방치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는 스스로 압살롬을 죽이는 일을 자처한 것입니다. 


    나중에 압살롬이 죽은 소식을 들은 다윗이 그것 때문에 슬픔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왕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대신에, 그 동안 자신을 보호하고 돕기 위해서, 또 자신을 다시 왕의 자리에 복귀시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을 때에도, 요압은 슬퍼하는 다윗에게 가서 직언을 했습니다. 그것은 왕이 미워해야 할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은 미워하는 것이고, 그런 행동은 왕으로서 부적절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다윗은 제 정신을 차리고 낙심한 백성들의 민심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비록 군인으로서의 거칠음은 있었지만, 요압은 진심으로 다윗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때로는 지혜롭고 결단력이 있게 행동하기도 하고, 또 상황에 꼭 필요한 직언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요압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압살롬의 처리 문제 때문에 다윗과 이스라엘은 커다란 혼란과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반역자는 처단을 해야 하지만 다윗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압살롬 또한 이전에 자신을 지지해 주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를 불려갔을테니까요. 


    요압의 역할은 그저 여느 나라의 충직한 장수의 역할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수세에 몰린 다윗을 위해서 끝까지 지지와 충성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진심으로 다윗을 위하고 또 이스라엘을 위한 결과 그 당시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었던 교회,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은 불필요한 혼란을 겪지 않고 다시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영적이고 신앙적인 일이어야 할 것 같지만, 실은 거의 모든 역할들은 그저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려는 단순한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가정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직장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교회 안에서 충직하고 정직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역할을 해 내면 그것이 결국 이 세상과 교회 안에 하나님의 통치를 가져오는, 이 세상을 제 자리로 되돌려 놓는 그런 일들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을 불필요한 갈등과 고통에서부터 건져 줄 수도 있구요. 


    사실 이런 역할을 하기에 성도들보다 더 적합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만이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준은 결국 자기 자신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나 자신이라는 기준을 이미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라는 벽을 넘어서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가게 하는 역할을 제대로 잘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심지어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그저 개인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크거나 작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역할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 역할이란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정직하고 충직하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고 또 자신이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은 아주 특별한 일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바른 마음과 바른 생각을 따라 살아가면 내 삶도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그만큼 아름답게 변할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나 관계, 그리고 자기 이익에 흔들리지 마시고 그저 가야한다고 생각되는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통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게 하실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에 대해, 교회와 세상에 대해 이런 아름다운 역할을 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