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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07.21. 새벽예배 - 성경읽기와 묵상(사무엘하 23-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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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 : 2015년 7월 21일 화요일





     오늘은 사무엘하 읽기를 끝내는 날입니다. 사무엘하는 다윗이 주인공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드디어 왕이 되고 나서 다윗과 이스라엘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부분은 다윗시대의 결론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이미 살펴보아서 잘 알고 있다시피 다윗은 공식적으로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일을 제외하면 크게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비록 다윗에게 아들에게 반역을 당하게 하고 또 결국 그 아들이 목숨을 잃는 아프고 힘든 징계를 가지고 왔지만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은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22장과 23장 7절까지의 다윗의 노래,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하는 다윗 시대의 용사들과 그들의 무용담은 그의 시대가 약간의 굴곡은 있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시대였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런데, 정작 사무엘하가 들려주는 다윗 시대의 마지막 이야기인 24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갑자기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아얘 처음 구절부터 그런데요.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하신지라” 왜 왕이 자기 나라 인구를 조사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 궁금하실지도 몰라 말씀드린다면, 이스라엘은 인구조사를 하면 안되는 나라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왕정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일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왕들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인구조사를 하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왕정시대에 왕들이 그렇게 인구조사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세금을 정확하게 거두기 위해서, 둘째는 모집 가능한 병사들의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왕이 인구조사를 할 때는 모두 돈과 사람 숫자에 의지해서 나라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이스라엘은 그러면 안되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구조사는 이스라엘의 왕들에게는 아주 강하게 금지되어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쳐도 오늘 본문은 아주 이상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충동하셨는데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내주시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구체적인 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내주셔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만큼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도 칠만 명이나 죽이셔야 할만큼 말이지요. 그런데, 이 일 때문에 다윗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충직한 요압이 그렇게 만류하고 또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인구조사를 마친 후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충동하셔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시켰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일을 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사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비슷한 말씀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오늘처럼 많이 당황하게 되지요. 원래 성경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가 욥기를 보면 사탄마저 그런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래서 성경은 오늘 우리가 읽은 것과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직접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이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죄를 짓게 할 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그런 일들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충동질은 사탄이하지만 그 일을 허용하신 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충동질에 넘어가 죄를 짓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것은 최종적으로 사람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억지로 우리 마음을 움직이셔서 죄를 짓지 않으면 안되게 만드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라도 우리는 충분히 그 충동에 저항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죄와 선한 일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요압은 다윗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극구 말렸습니다. 이것이 참 재미있는 일인데요. 이것도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일 속에 들어있다면 다윗은 분명히 인구조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이스라엘이 징계를 당하는 일이 다윗의 실수와 범죄 때문에 저질러지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스스로 자기 왕국의 세를 확인해 보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했고 그래서 인구조사를 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이스라엘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본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징계가 주어졌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아이러니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인간 지도자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빈 구석이 있고 또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라를 이롭게 해야 할 사람이 나라를 힘들게 하기도 하기도 하고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윗의 경우처럼 잘못이 잘못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죠. 저는 하나님께서 사무엘하의 마지막 장에 이 이야기를 기록해 놓으신 이유가 바로 그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저는 이 이야기 속에서 인간에 의지해서 살아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습니다.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돈,  사람의 지혜… 이런 것들은 진실로 믿고 의지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둘째, 우리 자신의 선택 또한 언제든지 이 세상과 다른 이들에게 다윗의 인구조사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혹 이 세상이나 어떤 사람들이 그런 징계와 형벌을 받게 될 수 있겠지만 굳이 그 징계와 형벌을 가져오는 당사자가 우리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이지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너무 신뢰해서도 안되고 우리 자신을 너무 신뢰해서도 안됩니다. 모든 인간은 다 불완전하고 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구석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두 분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실 때, 우리는 항상 두 분의 인도하심 속에서 안전한 양떼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 주님만, 완전한 우리 왕이신 우리 예수님만 신뢰하며 살아가는 든든한 삶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