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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5.07.26. 전교인 기도회 - 그것을 가르쳐 알게하려 하사(사시기 11)

20150726SE (#1).mp3.zip





   본문 : 사사기 2장 20-3장 6절




    성경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른 종교들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다른 종교들이나 사상들은 인간을 선하다고 보지만 성경은 인간을 죄인으로 봅니다. 그런데 성경을 중심으로 신앙을 가지려는 사람은 우선 이것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간이 죄인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신앙은 전혀 필요없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인간은 모든 면에 있어서 심각하게 고장 나 있는 상태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보는 것, 누리는 것, 생각하는 것, 결정하는 것…… 모든 면에서 고장 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지금 좋은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닐 때가 많습니다. 또 지금 나쁜 것이 꼭 나쁜 결과만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아주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 결혼을 해서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막상 결혼해서 살아갈 때, 어머니 혹은 아버지와 배우자를 비교하면서 그 배우자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또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라고 다 인생의 실패자가 되고 불행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의 상처만 잘 극복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대개의 훌륭한 상담자들이 과거에 큰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이거나,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인 것을 보면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존재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시는 과정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이 평안할 때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아니면 어려울 때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 같으세요? 그냥 생각하기에는 평안하고 걱정이 없어야 하나님께 더 잘 집중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입니다. 어려워야,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는데 정말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시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쉬운 것이 없어지면,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망각하다가 하나님을 떠나기 쉬운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우리가 좋다고 느낄 그런 방식으로만 우리를 대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에게는 “가나안의 정복”이라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 땅은 분명 약속의 땅이었지만,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야 얻을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다 차지할 때까지 계속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과 관련해서 오늘 본문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을 명하시면서, 너희가 내 말에 순종하기만 하면 너희가 밟는 모든 땅을 주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2장 7절을 보면, 여호수아의 세대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여호수아 세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성공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약속대로 여호수아의 손에 가나안 모든 땅을 다 주셔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전부를 여호수아 세대의 사람들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일부만 주셨습니다.

 

    이전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많은 것을 남겨주고, 할 수 있으면 그들에게 있을 장애물을 다 없애주고 싶어합니다. 여호수아의 세대는 가나안을 모두 정복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세대에게 맡기실 일과 그 다음 세대에게 맡기실 일을 나누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3장 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두신 열국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여호수아 세대가 가나안 땅 전부를 정복하지 못한 것은 꼭 그들의 잘못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 다음 세대를 위해서 입니다.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에게 전쟁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차지해야 할 땅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아직 정복하고 진멸해야 할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들에게 징계가 아니었고, 오히려 꼭 필요한 일로 계획된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우리에게 적대적인 일을 만나면, 그것을 모두 부정적으로 보기 쉽습니다. 이겨내야 할 시험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나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들 중에는 그런 것들도 있습니다. 통과해야 할 시험이나 꼭 당해야 할 징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려움과 난관은 때로는 우리가 그것을 통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신앙의 세계를 열어주는 열쇠이자 학교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가나안 족속들이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출애굽 1세대는 출애굽과 그 이후의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손으로 만지듯이 경험한 세대입니다. 출애굽 2세대는 광야생활 동안에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공급과 함께 하심을 경험한 세대였습니다. 그러나 3세대는 아무런 경험이 없는 세대였습니다. 이들은 출애굽의 기적도 광야에서의 기적도 경험하지 못한 세대였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한 세대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앞으로 흔들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은 이들이 하나님을 확실히 알도록 실습시키셔야만 하셨습니다. 그 실습의 장과 교재가 바로 그것이 남겨진 가나안 족속이었고, 그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은 가장 긴급한 상황입니다. 생과 사가 달린, 결코 한 번쯤 시험삼아 해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 전쟁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학교로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전쟁은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백전백승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우세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 편에 서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승패에 삶과 죽음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승패가 이스라엘의 신앙적인 결단에 달려 있었고,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 전쟁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을 경험하여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자기 백성을 위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들을 아주 긴급한 상황 가운데로 몰아 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생과 사가 달려있을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일을 앞에 놓아두시고,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를 지켜보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반응을 보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반응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중요한 일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 우리 편에 서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을 알게 하시고,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하고는 반대되는 선택을 했습니다. 3장 5절과 6절은 이스라엘이 그러한 환경에서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확실하고 생생하게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싸우기가 싫었습니다. 가나안 땅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그 좋은 땅에서 싸우는 수고를 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가나안 족속들 사이에 살기로 했습니다. 서로 딸들을 주고 받으면서 결혼관계를 맺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저 결혼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인 거래였습니다. 딸을 서로에게 볼모로 제공하고, 결혼으로 맺어진 동맹관계를 맺음으로써 암묵적으로 서로의 안전을 보장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서서히 하나님을 떠나서 그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평화를 얻었습니까? 그들이 바라던 대로 그들 중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그런 선택 때문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 한 구석에 빌붙어 살게 되었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눈치만 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역사의 기록이 바로 사사기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주님은 굉장히 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출애굽 3세대는 그 이전 세대와 비교하여,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가나안 족속들은 있었고, 전쟁도 치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이 환경을 사용하시는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래 전쟁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학교였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승리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전쟁을 피하고, 그들 중에서 편안히 사는 길을 택했을 때, 가나안 족속과 전쟁은 그들에게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과 징계의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는 언제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인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 상황이 있다는 것, 그 속에서 중요한 결정을 위한 갈등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쨌든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전쟁이 그랬듯이 때로 이런 일들은 우리를 위해 준비된 학교일 수 있습니다. 성도로서 하나님 편에 서는 방법을 배우고, 그런 결정을 내리며, 그런 결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는 학교일 수 있습니다. 좋지 않은 학교는 들어가기도 쉽고 졸업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좋은 학교일수록 입학하기도 그렇지만 졸업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그 학교가 요구하는 코스를 밟아서 졸업을 하고 나면 그만큼 높은 실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신앙의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학교는 들어올 때는 은혜로 들어오지만, 그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방법으로 반응하고 선택하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런 반응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일하심에 대해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와 거칠은 환경은 우리가 살면서 언제든지 만날 수 밖에 없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하고, 하나님께서 그 부족한 인간들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하나님 닮은 자녀들로 만들어 가시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항상 그런 일들을 남겨두실 것입니다. 우리 뒤를 이어서 신앙을 키워가야 할 우리 뒷 세대에게도 그런 일들은 항상 남겨져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시험과 위기는, 우리가 그것에 믿음으로 반응했을 때는, 어떤 모양으로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음이 아닌, 세상의 상식과 욕심으로 반응한다면 그 일은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우리를 더 큰 어려움 가운데로 몰아넣는 올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도 시험과 위기 앞에서 바르게 선택할 영적인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 자녀들에게도 무언가 훌륭한 환경을 제공하고 또 좋은 것을 남겨 주려는 노력과 더불어서 그들이 인생의 난관이라는 하나님을 배우는 학교 앞에서 정말로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준비를 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인생은 선한 일과 그렇지 않아 보이는 모든 일들이 협력하여 최고의 열매를 만들어 내는 그런 훌륭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가 닥쳐 올 때, 그것을 그저 불평 불만이나 고통스러워 하는 일로 끝내지 마시고 꼭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귀중한 기회로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마련하신 학교로 삼아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쉽지 않지만 꼭 그럴 준비를 하시고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모든 어려움과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하나님을 알게 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