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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08.09. 주일오전 -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었고(여호수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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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여호수아 13장 01-07절




얼핏보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참 대단한 것 같고 그의 능력이 엄청난 것 같아도 사실 사람은 한계가 너무나 뚜렷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그 어떤 피조물보다 지적인 능력도 뛰어나고 신체의 기능도 정밀해서 스스로도 놀랄만큼 대단한 업적을 이룰 수 있지만, 모든 방면에서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높고 두터운 벽은 바로 시간이라는 벽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하루를 24시간 이상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침이 되고 오전과 오후가 지나고 또 밤이 되는 하루. 이 하루 하루도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전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세월의 흐름을 멈추거나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면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자리를 더 차지하고 싶고 자신이 하던 일을 완전히 마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외쳐도 시간은 더 주어지지 않지요. 아마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노년에 자기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후회를 하고 또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냥 지나간 여호수아 12장에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차지한 각 지역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요단강 서쪽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치열한 전쟁을 벌였고 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싸움을 했지만 모세와 그의 세대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약속의 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요단강 서쪽 지역으로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모세의 시대가 끝나갈 즈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셨고,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에게 요단강을 건너가서 요단 동쪽을 차지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여호수아 세대는 신앙적인 면에서 모세 세대보다 훨씬 더 훌륭했습니다. 이들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 부모들에게 허락하신 기적적인 승리들을 지켜 보았고 또 그 긴 시간을 한 끼도 굶기지 않고 목도 마르지 않고 옷과 신발도 닳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기적같은 은혜도 누렸기 때문에 자기 부모세대보다 하나님께 더욱 더 온전한 순종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실수와 범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모세대처럼 불평과 불만에 빠져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평가절하하는 그런 죄를 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세대가 치른 전쟁들보다 이 세대가 치른 전쟁의 규모가 훨씬 크고 또 적들도 강했지만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승리들을 수없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살펴 본 것처럼 요단강 동쪽 지역을 많이 점령할 수 있었지요. 그렇지만 여호수아의 인생과 그의 세대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싸웠지만 가나안 땅을 모두 점령하는 일은 미완의 소명으로 남겨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전쟁을 이끄는 일을 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습니다. 긴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나이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최선을 다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차지해야 할 약속의 땅은 너무나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탁월한 지도자 두 사람이 자기 인생을 바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믿음으로 싸울 때면 언제나 두 사람과 이스라엘 편을 들어주셔서 적들의 땅을 차지하게 해 주셨지요. 그런데도 여전히 약속의 땅은 온전히 이스라엘의 땅이 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도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이 일은 꼭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였습니다. 그 약속의 땅 위에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가 세워져야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실까요? 다 이루지 못한 소명을 앞에 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해결방법은 무엇일까요?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자신의 소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처음 여호수아를 부르셨을 때처럼 여호수아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실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인데 여전히 정복하지 못한 땅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언급하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러시면서 그렇게 여전이 정복하지 못한 채로 남겨진 약속의 땅 곳곳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셨습니다. 그 목록이 바로 13장 2절부터 시작해서 6절 중반까지 주욱 이어지고 있습니다. 평생을 그 일에 최선을 다해서 헌신해 온 여호수아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너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늙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차지할 땅들은 이렇게나 많다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 그것도 부정적인 현실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분명히 여호수아도 그 일을 하나님과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호수아의 마음을 무겁게 했겠지요. 왜 안 그랬겠습니까? 그 일이 자기가 평생을 쏟아 부어 해 왔던 일이고, 어떻게든 자기 세대에 그 일을 모두 끝내서 그 다음 세대는 전쟁이 없는 약속의 땅에서 살게 해 주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그 동안 수고했다고 칭찬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대신 여호수아를 다시 한 번 그러한  아픈 현실 앞에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피하고 싶은 구체적인 내용들을 조목 조목 나열 하시면서 말이지요.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부정적인 현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고민거리 앞에서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 자신을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심리적인 보호장치가 있어서 어떤 일을 당하면 우선 그 시스템이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만약 그렇기 때문에 그런 본능대로만 반응하면서 내가 놓여있는 부정적인 상황이나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부인하고 피해다니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 문제로 부터 절대로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런 분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귀찮아 하고 피하려고만 합니다. 문제가 없다고 괜찮다고 둘러대기만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계속해서 터지고 또 터집니다. 그래서 두고 두고 더 큰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문제가 크고 어려운 것일수록 아니다, 없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그런 문제와 여러움이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끄집어 내서 대면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댈 내놓고 직면하지 않으면 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성도들 중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조차도 자존심을 세우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항상 그럴 듯 하게 앉아 있습니다. 문제가 많은데, 현실적으로 내면적으로 또 영적으로 풀리지 않는 난제들이 많은데, 아닙니다, 하나님. 저 괜찮습니다. 문제 없습니다. 이런 건 문제도 아닙니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도 그저 나이스한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뒤 돌아서면, 집에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여전히 똑같은 문제로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고, 부인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닌데, 그걸 모르니 자꾸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요. 성도는 이미 해결책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해결책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난제들에 대한 해답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투명하게 내놓지 않으면 하나님도 적어도 그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를 도와주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우리 삶과 신앙의 문제들을 스스로 직면하고 또 그 문제를 하나님께 내놓기를 바라십니다.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반복해서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는 문제, 그 문제가 무엇이든 그것을 귀찮아 하거나 아니라고 부인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직면하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와 어려움 또한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놓아두신 여러분 인생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그 모든 것들을 밀어내지 마시고 팔을 벌려 껴안으세요. 그리고 나서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 놓으십시오. 그 일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일이니 해결책은 그 분께만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그리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보낸다면 하나님께서 부정적인 환경이나 조건들을 바꿔주시든지 아니면 우리 마음을 바꿔주셔서 더 이상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풍성한 은혜와 자유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삶 속에서 반복해서 경험해 온 은혜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제 안과 밖에 있는 문제들을 그냥 내버려 두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항상 이게 네 문제다라고 끄집어 내셔서 제 눈 앞에 펼쳐 놓으셨지요. 때로는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울면서 그 문제들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큰 은혜인 것은 제가 그러면서도 그 문제들을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가 풀릴 때까지 오랜 시간을 그 문제를 붙들고 하나님과 씨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문제들이 하나 하나 풀려가거나  은혜를 누릴 수 있었고 또 그럴 뿐만 아니라 속 사람이 더 단단해 지고 온전해져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문제들 때문에 무너지지 않고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것이 너의 문제다라고 말씀하실 때, 당장 힘들고 귀찮다고 피하고 도망치지 마십시오. 아닌척 하지 마십시오. 그런 문제들은 계속해서 우리 삶을 괴롭히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주범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문제를 바라보게 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답을 가지고 계실 때이니까 꼭 그 문제를 여러분의 문제로 받아들이시고 하나님과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여호수아를 아프고 불편한 현실 앞에 세워놓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 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이것이 바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직면했던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이었는데요. 정말 하나님의 해결방법은 기가 막힙니다. 아마도 여호수아는 이전에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신할 후계자를 세우시겠다고 하실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 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항상 해 오시던 말씀이었지만 여호수아에게 이 말씀은 그 때만큼은 전혀 다르게 들려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고 부인하고 싶어하며 때로는 귀찮아 하는 현실의 문제들 앞에 우리를 세우시는 것은 우리가 그 자리에서 사람이나 문제 자체, 그리고 주어진 여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은 이런 뜻이었습니다. 비록 너는 이제 나이가 많고 늙었지만, 그래서 저렇게 차지할 땅이 많이 남아있어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지만, 원래부터 저 땅을 차지하는 일은 내 일이었고 내가 이룰 나의 약속이었다. 그러니 너 자신이 못 다 이룬 일과 그 일을 이룰 힘이 없는 너 자신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또 누가 네 뒤를 이어서 그 일을 이룰까, 그 사람은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일까? 과연 내 아들 대에는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은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녀들에 대한 책임감이 정말 굉장합니다. 그래서 대개의 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모든 것을 평생토록 책임져 주려고 하지요. 키워 줍니다. 대학은 물론이고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 학비 다 대줍니다. 결혼한다고 하면 집도 사 줍니다. 결혼하면 애들도 키워주고 반찬까지 다 해 줍니다. 꼭 나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 주고도 해 준 것이 없다고 미안해 하며, 남들처럼 내가 해 준 것이 부족해서 내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어렵게 산다고 걱정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부모된 도리라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것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 부모들에게도 적합한 삶의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말로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며 살게 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인생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일이듯이 내 자녀의 인생은 그 아이와 하나님 사이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라도 그 사이에는 함부로 끼어들어 과도한 역할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나서서 자녀를 위한 모든 것을 해 주려고 하는 것 자체가 그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역할을 빼앗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깨달음을 얻고 또 받아들인 다음, 저는 자녀들에 대해서 굉장히 큰 여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이렇게 다루어 오시고 또 이끌어 오셨듯이 내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이 맞다면 나에게 해주셨던 대로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뭘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믿는 부모는 자녀를 자기 기준이나 세상기준에 맞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과의 참되고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인격체로 자라가는 일을 돕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장 제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 기준에 많이 맞지 않아도 편안한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아니고 그래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실 것을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요. 


성도 여러분, 특히 자녀를 많이 많이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시지요? 그러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너무 내가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해 주려고 하지 마시고, 또 내가 바라는 자녀가 되게 하려고 그 아이의 삶의 모습이나 미래 직업까지 정해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건 다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과 그 아이 사이의 일입니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참된 신앙을 가지게 해 줄까? 어떻게 하면 내 자녀가 나보다, 이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그 분과의 깊은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며 살게 해 줄까 그것을 고민하시고 그 일에 더 큰 힘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복되게 해 주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내 자녀가 내 바램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된다고 해서, 내가 내 자녀에게 해 주고 싶어하는 것을 다 해 준다고 해서 내 자녀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워지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자녀들이 스스로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그들의 삶은 진실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 불확실한 시대에 확고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이 일에 조력자의 노릇만 해 주면 됩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면서 말이지요.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다 할거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여호수아는 아직 약속의 땅 전부를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차지해야 할 땅이 정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미리’ 그 땅을 이스라엘 각 지파와 가족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김치국부터 마시는 일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 막강한 족속들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땅에다 미리 줄을 긋고 여기는 누구네 것, 저기는 누구네 하면서 자기 맘대로 다 나눠가질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참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끝까지 이루시는 방법이었고, 또 그 일이 여호수아 세대의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원래부터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홀홀단신 고향을 떠나 믿음의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 때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그 땅이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에 그 땅을 정말로 얻는 것은 항상 미래의 소망과 장래의 복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천천히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져서 이제 드디어 모세를 거쳐 여호수아에게로 왔지만 여전히 그 약속의 땅을 완전히 차지하는 일은 약속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여호수아 다음 세대에게 넘겨 주셔야만 했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 약속을 정말로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약속이란 믿으면 그 사람을 위한 것이 되지만 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까요. 아직 차지하지도 않은 땅을 미리 분배받는다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정말로 주어진 땅을 위해서 싸울 수 있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 땅은 믿음으로만 진짜로 취할 수 있는 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특별한 복과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정의해 주는 성경이 있다면 그것은 히브리서이고 그 중에서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구절일 것입니다. 이 구절은 믿음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진실로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 때부터 그 약속은 단지 미래에 대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현실이 되고 실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 몸으로 부대끼는 현실보다도 더 확고하고 변함 없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진짜로 믿을 때, 그 믿음은 그 믿는 것을 우리가 먼저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는 단지 내가 죽으면 가게 될 좋은 곳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서도 맛보아 알 수 있는, 완전하게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얼마나 좋고 영광스러운지를 경험하여 알 수 있는 그런 곳이 됩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요. 그 때부터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그 나라만 생각하면 힘이 생기고, 그 나라만 생각하면 기뻐하며, 이 땅의 크고 작은 불편과 손해를 너끈히 감수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됩니다. 이 소망 때문에 절대로 완전히 넘어지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일이 있어도요. 그런데,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다 그렇습니다. 어떤 약속이든 우리가 성경에 나와있는 약속,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약속을 정말로 믿으면 그것은 믿는 순간 우리 현실의 일부가 됩니다. 가장 중요한 현실의 중심이 되어서 삶 전체를 아우르고 움직여 가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차지하지도 않은 땅을 나눠주라고 하신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지파에게, 우리 집안에게 저 땅을, 저기 내려다 보이는 저 곳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저 곳을 이미 우리에게 나눠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정말 불쾌한 일이 되겠지만, 그 약속을 정말로 믿는 순간 이미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전쟁은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내 것을, 이미 내 것이 된 것을 되찾으려는 싸움이 되겠지요. 게다가 그 싸움은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는 확신 가운데 싸우는 참 믿음의 싸움이 될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통해서 마음껏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실 것이 분명하구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삶의 여건이 여러모로 많이 좋지 않지요? 사실 그런 상황이 앞으로도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 같아 보이구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이 이 담에 직장이나 제대로 얻고 살아갈지, 결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되시죠? 그래서 많이 남겨주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고, 또 조금 뒤쳐져 보이는 자녀들을 더 채근하게 되고 더 닥달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건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전혀 삶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정복해야 할 그들에게 맡겨진 땅입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우리 자녀들의 삶을 그들을 위한 약속의 땅으로 내어 주실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을 향한 약속을 받아들이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그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믿음보다 더 나은 믿음을 내 자녀에게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그것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너무 돈에 집착하고 성공에만 매달려 사는 자녀들이 있다면, 자신이 전부이고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자녀들이 있다면 그게 아니라고, 성도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살아서는 확실하고 든든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세대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언약이 있고, 각 세대는 그 언약을 믿는 믿음으로 삶에 닥쳐오는 문제와 어려움들을 하나님과 함께 직면하면서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삶은 시대와 환경을 막론하고 이 땅에서 이미 하늘을 누리는 복되고 풍성한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 삶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아름다운 통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세대에서 세대로 믿음의 역사를 이어감으로써 그 모든 세대 안에서 하나님의 복된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영광과 은혜를 누리는 그런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