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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08.23. 주일오전 - 기업으로 주었으니 1(여호수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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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여호수아 12장 1-8절





우리는 그 동안 여호수아서의 절반을 함께 살펴 보았고 이제 나머지 절반을 살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는 직접 그 땅을 정복해 간 지도자였습니다. 사실 지역적으로 보면 모세가 차지한 요단강 서쪽은 명확하게 약속의 땅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출애굽의 역사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그 곳은 오히려 약속의 땅보다는 광야에 더 가까운 곳이니까요. 모세와 출애굽 1세대가 모두 거기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였지만 사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본격적으로 점령한 장본인은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래서, 아얘 그의 이름으로 제목이 붙여진 여호수아서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를 통해서 가나안 땅을 점령해 들어간 전쟁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많은 성도들은 여호수아서를 생각할 때, 이 책이 마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웅적인 전쟁이야기, 특히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의 영웅담이라고 생각하며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서를 읽어보면 그렇게 많은 전쟁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에 요단강을 건너면서 치렀던 여리고와의 전투, 아이성에서의 실패와 승리, 그 다음에 북쪽 지역의 아모리 족속 다섯 왕들과의 전투와 그 뒤에 이어진 몇몇 성읍들과의 전투,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솔왕 야빈과 북쪽 가나안 족속 연합군과의 전투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게다가 승리한 전투들의 경우, 그 승리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기 보다는 과연 그 승리들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질 수 있었는지 하는 것이 아이성에서의 패배와 대조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전투들의 교훈은 딱 한 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싸움에서도 승리가 주어지게 되어 있고 불신앙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리 유리한 전투에서도 패배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땅을 차지하려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 이 부분이 들려주는 가장 중요한 메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6장부터 11장까지 기록되어 있고, 12장부터 마지막 24장까지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한 요단 동쪽과 요단 서쪽 지역을 각 지파에게 분배해 준 일과 관련된 내용이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실 전쟁이야기는 여호수아서 전체에서 4분의 1밖에 안되는 분량이고 전체 중에서 절반이 넘는 부분이 땅을 분배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생각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서를 통해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려는 가장 중요한 메세지가 어디 들어 있는지, 그래서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읽을 때, 어느 곳을 중심으로 해서 읽어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곳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 아니라 각 지파에게 땅을 나눠주는 이야기가 기록된 곳입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에는 이 부분을 일단 큰 걸음으로 지나가면서 여호수아서가 왜 이 부분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12장을 보면 전반부에는 모세가 요단 동쪽에서 차지한 땅과 그 땅을 분배받은 지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나머지 부분에서는 여호수아가 차지한 땅들이 길게 나열되어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12장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지도했던 두 세대 동안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정말로 지키셨다고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수아서가 이 건조하고 딱딱한 부분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대개의 학자들은 여호수아서를 사사시대에 기록이 끝난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사람들은 이미 많이 차지하였지만 여전히 완전히 차지하지는 못한 약속의 땅을 밟고서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두 세대가 넘게 전쟁을 치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지연되기만 하는 가나안 땅 정복. 이런 상황 속에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 지금 자신들이 밟고 있는 그 땅이 바로 지금까지 하나님이 약속을 지켜오셨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그 믿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하나님의 약속은 어제 오늘 주어진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부터 최소한 500년 전에 그들의 처음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신 은혜의 약속이었고, 그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그 약속이 완전히 실패할 것같아 보이는 안팎의 위기도 여러번 있었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던 그 시기에 맞춰 그 약속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록 아직도 완전히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상황만 보면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러분? 결국 이 약속은 이루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하셨던 땅을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부다 주셨습니다. 언제 그랬지요? 네.  다윗 시대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거의 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루시고 또 이루셔서 결국에는 완전히 지키셨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려주고 또 정말로 믿게 해 주기 위해서, 그 증거로 기록된 책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 바로 여호수아서의 후반부이구요. 우리가 거기 기록된  한 곳, 한 곳의 지명을 읽을 때마다 비록 그 곳이 어디인지는 모를지라도 ‘아 여기도, 또 여기도, 그리고 여기도 하나님이 진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구나. 정말 이렇게 약속을 지키셨구나. 500년이라는 세월동안 그 약속을 이루어 가셨고 결국 그들의 손에 쥐어 주셨구나.’라고 생각하며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믿음을 거듭 거듭 챙기고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막상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가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얼마나 신실한 분이시며,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해 주신 약속을 얼마나 정확하게 지켜나가시는지 잘 깨닫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우리에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분명하게 약속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시고 인도자가 되어 주신다는 너무나 은혜로운 약속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약속을 믿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내 삶을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계십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살면서 늘 부족하다고 칭얼댑니다. 자꾸 두려워하며 근심합니다. 이것은 전부 다 우리가 현재라는 시간, 당장의 현실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는 인도자가 되어 주시고 계시는 것을 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뒤를 돌아보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기간을 너무 길게 잡으면 기억이 희미해 지니까 3개월이나 6개월에 한 번씩, 가능하다면 더 자주 그 기간동안 하나님께서 지키신 약속들을 돌아보고 기억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일들을 통해서 ‘아,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는구나’하는 확신을 회복해야 하며, 그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서 감사하는데 까지는 잘 갑니다. 그렇지만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그저 감사하는 일에서 끝나면 이전과 똑같은 삶이 또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감사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고 정말 선한 것이지만, 우리는 이 감사를 감사에서 끝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 감사를 미래에 허락하실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와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의 재료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한 후에도 똑같이 불평하고 감사한 후에도 똑같이 근심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한 번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지나온 세월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굴곡을 경험하셨습니까? 아마 어떤 분은 이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되는 절망스러운 일들도 겪으셨을 것이고 정말 심각한 부족함 속에서 끼니를 굶는 일도 있으셨을 줄 압니다. 믿음을 따라 살려고 하다고 그 믿음 때문에 찾아온 어려움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신 적도 있으셨을 것이고, 그 믿음이 파선을 당할 직전의 순간까지 가신 적도 있으실 것입니다. 또 몸의 질병이나 마음의 질병,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심해서 정말 견디기 힘들 때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되돌아 보면 참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허여멀겋게 생겨서 아무 고생도, 아무 근심도 없이 살아온 듯이 보이시질지도 모르지만 저는 살아오는 동안 정말 어느 곳 하나 완전히 평안한 곳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저는 여전히 잘 살고 있습니다.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복되고 평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잘 버티고 제가 잘 견디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저를 자녀 삼으신 후에 한 번 정하신 뜻을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저를 붙들어 주신 덕분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 속에도 똑같은 일이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고 믿습니다. 제가 그렇듯이 여러분도 그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가 있으셨지만 지금 여전히 살고 계십니다. 잘 살고 계십니다. 그래도 문제 없이, 문제가 있어도 아주 넘어지지 않고 믿음을 지키면서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게 다 무엇 덕분인가요?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고 여러분의 공급자가 되어 주셨으며, 인도자가 되어주신 하나님, 단 한 순간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자녀들을 향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신 신실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덕분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우리는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 일에 관해서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의 자리만큼 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저는 저의 미래가 어떤 모양일지 전혀 모릅니다. 제 존재와 성품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훌륭해질지 어떨지, 목회를 하다가 큰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게 될지 어떨지 사실 자신있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문득 문득 잠깐이지만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이런 두려움들을 극복하게 해 주는 무기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래도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살아가면 항상 과거보다는 현재가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나아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생각해 보면, 10년 전의 저보다 지금의 제가 거의 모든 면에서 더 낫습니다. 성품도 그 때보다는 지금이 더 낫습니다. 목사로 살아가는 모습도 그 때보다는 지금이 더 낫습니다. 믿음도 지금이 훨씬 더 좋은 것 같구요.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나아진 게 뭐 저 정도 밖에 안되나 하실 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점점 더 나아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믿음 안에서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애썼더니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지난 해에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한 20년쯤되는 세월을 건너 뛰어서 함께 교회에 다니던 후배들과 동기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사실 오랜만에 어릴적 친구들이나 후배들을 만난다는 게 그리 낭만적이기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 일은 안타깝게 변해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실망과 아픔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친구들 중에는 저를 슬프게 하는 아이들보다는 정말 기쁘게 만들어 주고 감사하게 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의 성품과 신앙, 그리고 삶의 모습이 제가 알고 있던 이전의 그들의 모습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고, 다들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대한 놀라운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들어보니 다들 그 치열하고 만만치 않은 삶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 머물려고, 은혜 안에서 살아가려고 애들을 많이 썼더군요. 저는 그 친구들을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그 은혜 안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무는 자들을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빚어 가십니다. 그의 삶에 동행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자와 공급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존재가 이전보다는 지금이 지금보다는 미래가 더 온전해지게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을 변함없이 주고 또 주십니다. 이 비밀스러운 복이 있음을 알고 또 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변함없이 신실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저는 미래의 불확실함과 저 자신의 부족해도 소망과 확신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는 한 때 우리 자신을 흥분하게 하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 가운데 머물게 했던 하나님의 약속이 있을 줄 압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성경에서 읽은 은혜로운 말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설교 중에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자의 짧은 한 마디일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런 약속들 중에는 이미 이루어진 약속들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한 번 그 약속들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한 때는 나를 소망 넘치게 했지만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한 번 떠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그 약속은 한 때는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되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기억하면 괜히 마음만 상하는 그런 것들일 수도 있을 것이구요. 사실 이런 약속들 때문에 그렇게 많은 성도들이 성도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에 기대와 소망을 두지 않고서 살아가는 상태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특히 영적인 영역에서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제가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에 대해서,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성도들 중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흥분하면서 아주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생겨납니다. 그렇지만 그런 분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냉냉하게 식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똑같은 메세지에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처럼 빨리 허락되지 않는 은혜로 인해 낙심하고 시험에 들어서 참되고 놀라운 은혜의 약속에 대해서 마음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절대로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 어떤 순간에도 놓치지 말고 붙들어야 할 사실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깨지지 않으며 하나님은 결코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시고 결국에는 그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을 방해하는 가장 큰 방해물이지요. 왜 그럴까요? 왜 사실과 우리의 현실 사이에는 그런 차이점이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때와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시는 때가 다른데, 거의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때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보다 훨씬 급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니까 성급하게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미리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문제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장애가 될 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기도하는 자들에게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 끈질기게 간청하는 미망인의 비유를 주신 것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재판관은 돈을 보고 재판을 하는 아주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돈 없는 미망인의 사정을 듣고 해결해 줄 리가 없었지요. 그런 점에서 미망인은 소망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망인은 끈질기게 그 재판관을 찾아가 간청합니다. 간청하고 간청하고 또 간청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했지요? 그 재판관이 질릴 때까지, 더 이상 괴로워 견딜 수 없어서 항복하고 두 손 들 때까지, 그래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줄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의 성취를 기다릴 때도 똑같은 끈질김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는 언제까지 해야할까요? 답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때까지입니다. 기도하다가 내 뜻이 바뀌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기도에 응답해 주실 때까지 실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이루어 주실 때까지 입니다. 그 증거를 발견할 때까지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며 기다려야 합니다. 심지어는 내 살아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끝까지 약속에 대한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와 우리가 바라는 때 사이에 있는 시간의 갭을 그런 믿음으로 매꿔가며 견디어 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정말 한 없이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포기가 없는 분이십니다. 1000년 전에 한 노인에게 주었던 땅에 대한 약속을 천년을 두고 두고 이루셔서 결국 완전히 이루어 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 후손들을 그 땅 위에 서 있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 우리 삶에 필요한 은혜에 대한 성경의 약속들은 어떨까요? 그것이 이것과 다른 별개의 약속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사안에 따라 무거운 약속이 있고 그렇지 않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래서 꼭 지키는 약속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약속이 있지요. 중요한 거래처와의 약속은 꼭 지킵니다. 그렇지만 세뱃돈 맡기면 나중에 돌려 주겠다는 자녀들과의 약속은 잘 지키지 않습니다. 같은 약속이라도 경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나눠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다 똑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커다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사소해 보이는 약속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돌봐주시고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도, 하루 세끼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겠다는 약속도 반드시 지키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지키셨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약속도 지키십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나에게 실망을 주는 자리, 나를 두렵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자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약해지게 하는 그런 자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그 땅, 그 삶의 자리야 말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여러분의 삶을 붙드시고 인도해 오셨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여전히 살게 하시고 믿음을 지키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있는 나의 자리, 우리의 자리를 불평과 실망의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붙들어 주신 증거로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흔들고 넘어지게 하는 모든 시험들을 이기고 다가오는 모든 삶들을 믿음 가운데 흔들림 없이 맞이하는 성도들, 끝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들을 소망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고 또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증거임을 깨닫게 하소서.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