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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0.01. 새벽기도 - 성경읽기와 묵상(에스라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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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이스라엘도 남쪽 유다도 결국에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한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징계를 경험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내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차례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당하게 하신 것은 아주 망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시 회복하는 일이 약속되어 있는 조금 긴 징계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어려움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어려움이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우리를 완전히 망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어려움이 주는 고통만 생각하느라고 그 뒤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깊은 생각을 볼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알려 주시려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려움을 주실 때에 그 어려움으로부터의 회복에 대한 약속까지 함께 주십니다. 그런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실 때, 계속해서 심판에 대한 말씀 뒤에 덧붙여 주시곤 했습니다. 


고레스, 정확하게는 고레스 2세가 즉위하던 해에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듣고도 믿지 못할 너무나 기쁜 소식이 들러왔습니다. 그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다시 성전을 세워야 한다는 고레스의 칙령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야 말로 기적이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의 왕, 그것도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나라의 왕의 입에서 하나님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또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다시 세우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뜬금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레스가 갑자기 미쳐서 실수로 그렇게 한 것도 아니구요. 이 일은 원래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일이었습니다. 


유다는 원래 시드기야가 다스릴 때, 페르시아가 아니라 그 페르시아가 바벨론이던 시절, 느부갓네살에게 멸망 당했고, 그 때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왔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선지자를 통해 미리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그 선지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였는데요. 역대하의 마지막과 에스라 1장 1절에서는 둘 중에서 예레미야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우리가 알다시피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을 지켜 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의 멸망만을 예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회복 또한 예언했습니다. 그 기록은 예레마야 25장 11절과 29장 10절에 나와 있는데요.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두 구 절 모두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이면 끝이나게 될 것이고 그 후에는 다시 이스라엘 본토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레스왕 원년에 선포된 고레스의 칙령은 하나님의 이 예언을 그대로 성취한 것입니다. 아니, 훨씬 더 풍성하게 성취했지요. 고레스의 칙령 속에는 성전을 건축하라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미리 언약을 주시고, 약속을 주시고 때가 되면 그 약속을 이루셔서 그 일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며, 하나님은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며,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이 때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고레스가 칙령을 내리기 전날까지 이스라엘에게는 현실적으로 볼 때, 회복에 대한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대 제국에 포로로 잡혀온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이미 깊은 절망과 비참함 속에서 7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낸 본토의 유민들. 이들이 자신들의 회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시위를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전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르는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생각할 때, 가능 불가능을 따지는 것은 나의 능력이나 자원, 그리고 내가 처해있는 환경을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고 말하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주어진 것들에 매이지 않으시고 아얘 그런 것들을 바꿔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이루는데 장애가 된다면 아얘 사람의 마음을 바꿔 버리십니다. 물론 억지로 안 그렇게 하면 안되게끔 강제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마음을 ‘감동’시키십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방해자가 아니라 협력자가 되게 해 주십니다. 이런 경우에는 원래 그 사람이 강력한 방해자 였던만큼 도움이 됩니다. 그 힘이 고스란히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이루는데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고레스가 칙령을 내렸습니다. 누가 그의 의지를 거스르겠습니까? 싫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고레스의 명령이니 그대로 따라야지요.


어떤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믿을 수 있고 또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분명할 때, 눈에 보이는 주변상황은 전혀 그 약속을 이루시는 일을 가로 막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대 땅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세우는 일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었던 고레스가 직접 그 일에 대한 명령을 내렸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가장 큰 장애물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가장 큰 디딤돌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여지는 상황이 어떻고 그 어떤 사람이 그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런 상황이나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우리의 의지를 꺾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붙들고 사는 성도들의 삶에는 좌절이 없고 절망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주는 시험이 강할 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시고 그 약속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약속을 이루실 때까지 불신앙과 절망에 빠지지 마시고, 주님이 그 약속을 이루실 때 믿음 가운데서 주님의 신실하심을 즐거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나 자신과 환경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약속에 마음과 생각, 그리고 인생의 닻을 내려놓는 든든한 삶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