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오후

2015.10.25. 전교인 기도회 - 왼손잡이 하나님(사사기 13)


20151025SE (#1).mp3.zip





본문 : 사사기 3장 12-30절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하고 또 거기에 맞는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굿을 하는 것도 부질없기는 하지만, 이런 노력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미래에 대해서 알려고 하고, 사람들이 그 미래를 손에 넣기를 원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에게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완전한 준비를 갖춘 것 같아도, 철저히 계획을 세워놓은 것 같아도,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나 요소들이 끼어들어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얼마나 자주 경험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때로 어떤 일이 우리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사실 그 계획이 완벽해서라기 보다는 그 계획의 결과를 바꾸어 놓을 만큼의 큰 일들이 그 계획에 끼어들지 않은 덕분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찌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갖추어 놓은 준비보다는 불쑥불쑥 끼어드는 것들로 인해 변경되고 수정된 결과로 이루어져 가는 전혀 엉뚱한 모습으로 완성되는 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사사시대 역사의 패턴을 따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자 하나님은 이방나라의 손에 붙여서 이스라엘을 고생시킵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 구해 주십니다. 다시 이스라엘은 평온한 세월을 누립니다.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다음 사사가 세워진 후 일어나는 일들도, 그 다음 사사가 세워진 후 되어지는 일들도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 틀을 채우는 사람들,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모두 같지 않습니다. 그 틀이 주는 메시지가 사실 사사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 싶어하시는 가장 중요한 말씀인 것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틀 속에 들어있는 각각의 이야기는 마치 똑같이 생긴 상자들 속에 들어있는 빛깔이 다른 보석들 같습니다.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 안에 무슨 보석이 들어있고, 우리가 그 보석들로부터 어떤 감동을 받게 될지 모릅니다. 사사기 속의 열 두 개의 상자도 그렇습니다. 그 모든 상자들은 하나 하나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대한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오늘은 그 두번째 상자를 열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살피기 전에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에훗의 이야기는 우리를 의아하게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이 바로 오늘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장 큰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또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이방민족의 왕을 쓰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징계하게 하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에글론입니다. 에글론은 모압족속의 왕이었는데,  암몬과 아말렉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여리고 성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쳐야 하는 굴욕을 당합니다. 에훗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를 첫번째로 의아하게 만드는 바로 이 대목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모압의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을 굴복시켰기 때문입니다. 모압은 결코 이스라엘을 이길만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모압은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명하셨던 가나안 원주민이 아닙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손이었고, 그 세력으로 보아서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15절을 보면, 그보다 오래 전에 이스라엘이 무시히 애굽을 빠져나왔다는 것을 들었을 때에, 모압의 지도자들은 이미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느 날 가나안 원주민의 세력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에 쳐 들어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 길가 던 초등학교 1학년짜리에게 얻어 맞고 넉다운 된 것보다 이스라엘에게는 더 황당한 일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운 인물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에훗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에훗을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이라는 말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오른손의 아들들 놓아두고 “왼손잡이”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는 단순히 ‘왼손잡이’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에훗은 오른 손이 못쓰게 되어서 왼손 한 손만을 쓸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훗은 오른 손에 장애를 입어 왼 손 한 손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 사람을 사사로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다스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에훗을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칠 때, 물건을 가지고 갈 사람으로 선택했습니다. 15절 뒤쪽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은 건강하고 보기 좋은 사람을 다 놓아두고 에훗에게 조공 바치는 일을 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에훗에게 그 일을 맡겼을까요? 그것은 바로 에훗이 오른 손을 못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속국이 조공을 바칠 때, 어떤 사람을 특사로 선택할까요? 우락부락하고 싸움 잘하게 생긴 사람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조공을 받는 상대방이 가장 안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합니다. 누가 보아도 간첩이나 자객으로 의심받지 않을 사람을 선택할 것입니다. 에훗은 능력이 많거나 겉보기가 훌륭해서 특사로 선택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른 손의 장애가 있기 때문에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에훗이 의심없이 에글론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도 같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무기는 오른손으로 다루는 것을 철칙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오른 손을 쓰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안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에글론의 신하들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에글론도 신하들을 다 나가게 한 후에 에훗의 독대신청을 받아주었던 것입니다. 


에훗이 특사로 선택되었던 것, 그리고 에글론이 그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은 놀랍게도 다른 사람이 다 장애라고 여기고, 아무 쓸모 없다고 여기는 그 오른 손 때문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의 왼손이 일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를 일하게 했던 것,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게 했던 것은 바로 그의 오른손이었습니다. 오른손이 있었기에 왼손을 쓸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스라엘은 에훗을 보낼 때, 에글론을 암살하기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무 문제 일으키지 않고 다녀오기를 바라며 일을 그렇게 처리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적임자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능한, 오른 손을 쓸 수 없는 사람, 그 무능함 때문에 그 누구도 구원자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에훗이 이스라엘을 구하고, 에글론과 에돔을 패배하게 한 장본인이 되습니다. 사람들이 불길하게 여기는 왼손잡이, 무능하다고 여겼던 장애를 가진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의아하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에훗이 이스라엘을 구한 방법입니다. 에훗이 이스라엘 구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암살입니다. 자기의 신체적인 조건을 이용해서 적들을 방심하게 만들고, 사전에 특별하게 제작된 무기를 숨기고 들어가 왕을 죽였으니 암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 암살자가 바로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우신 사람이었다는데 있습니다. 물론 이 암살이라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것이냐, 아니면 에훗 스스로 자신의 사명을 행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냐 하는 문제는 본문에서 우리에게 확실하게 말해 주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최소한 하나님께서는 에훗이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막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암살은 분명히 비열한 짓입니다. 또 전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이 이스라엘이 에글론으로부터 구원받고 그 후 80년 동안의 평화의 시대를 누리게 되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방법이 하나님께서 에훗에게 직접 시키신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 일 뒤에 에훗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정죄를 받지 않고 이스라엘을 80년동안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던 것을 보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에훗에게 허용한 것의 범위 안에 있는 일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들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과, 둘째는 그렇더라도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에 악을 허용하십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간이 죄나 죄악된 방법을 선택할 때, 그것을 강제로 막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아무리 인간이 악한 일을 저질러도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 분이 다루지 못하실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악이 행해질 때, 사탄은 자신의 승리를 외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그 악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바꾸십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세상에 십자가 보다 더 악한 일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에훗의 일도 이런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에훗 당시의 이스라엘은 식민치하입니다. 식민치하에서 독립운동은 절대로 공개적일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이루어질 수도 없구요.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인 것도 따지고 보면 암살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의 처형은 암살자에 대한 처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의로운 죽음이라고 칭송합니다. 정직하냐 그렇지 않으냐를 따지면 에훗이 택한 방법은 분명히 정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전쟁이나 식민지 치하 같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행해지는 일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평상시에 어떤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행하는 일들을 평가하는 기준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총을 들고 살기 위해서 적을 죽이는 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에훗 이야기는 이렇게 정상적이지 않은 세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하나님의 구원이야기입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대적 에글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구원자 왼손잡이 에훗, 그리고 하나님 답지 않은 어찌 보면 정정당당하지 못한 구원방법… 그 어느 것 하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그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의 큰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역사의 큰 틀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반드시 구원을 얻게 될 것이고, 천국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우리의 변경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 세상도 언젠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그리스도께서 그 중심이 되시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완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구속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까지, 그리고 세상이 온전히 주님 발 아래 무릎 꿇을 때까지 그 빈 공간은 무엇이 어떻게 채우게 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불안해 하며 살아야 할까요? 미래 때문에 두려워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이미 바꿀 수 없는 큰 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내가 나의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그리고 이 세상이 세상의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잘 압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는 한,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고, 세상에 아무리 불안정하고 흔들리고 악하더라도 결국 주님의 수중에 들어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렇게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과 자신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다면,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오히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스릴 있고 좋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몰라야 더 새롭고, 오히려 그 속에서 일하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들 중에는 분명히 좋은 일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과 상관없이 당하는 어려움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해서 당하는 하나님의 징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그 모든 어려움들은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될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붙들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곳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실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하나님은 오른손 잡이이실까요? 아니면 왼손잡이이실까요? 하나님은 왼손잡이 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오른손 잡이인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일하시는 세세한 방식은 우리에게 언제나 생소하고, 결코 익숙해 지지 않습니다. 손에 잡았다 싶으면, 그 반대로 가십니다. 도저히 그게 아닐 것 같은데, 그게 나를 구하시고, 나를 편드시는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께 익숙해 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 대신 당신을 신뢰하면서, 하나님 마음대로 움직여 가시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실 것을 소망하며 기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날마다 새롭게 우리 뿐만 아니라, 사탄도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 분의 승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면서 놀라고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그 분께 익숙해 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는 금방 실증을 내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익숙해 진 것에 대해서는 그것의 가치만큼의 대접을 해 주지 않는 존재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대로 익숙해 질 수 없는 분이십니다. 친밀해 질 수는 있어도, 그 분을 내 머리 안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일에 익숙해지는 순간부터 영적으로는 분명히 나태해 지고, 교만해 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게 될 때, 빠지는 잘못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왼손잡이이신 것이 오른손 잡이인 우리들에게는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 분의 일하시는 방식에 익숙하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그러한 생소함은 언제나 우리를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고 겸손하게 하는 은혜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하게 하고, 새롭게 그 분을 기대하게 하는 놀라운 선물이 될 것입니다. 


항상 신앙에 있어서는 초보자로 남아 계시기 바랍니다. 항상 새롭게 하나님을 발견하시고, 놀랍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꺼이 초보자로 남을 때, 그리고 오른손 잡이로 남을 때, 왼손잡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시며, 새롭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겸손하게 하나님의 새로우심을 기대함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경험하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