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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새벽예배

2015.11.02. 새벽기도 - 성경읽기와 묵상(욥기 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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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 :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엘리후는 자신이 나이가 적기 때문에 욥의 다른 친구들과 욥이 서로 논쟁할 때에 굉장히 오랫동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몇 살이라도 많으니 훨씬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제대로 헤아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는 그 기다림 끝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일에 나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영적이고 온전한 깨달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깨닫게 입을 열어 굉장히 긴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어보아도 알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정말 지혜롭고 깊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게 하시는 일에 대해서 가장 온전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나이가 먹어 가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도, 또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일도 저절로 되지는 않으니 그 지혜와 지식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평생 철이 들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영적으로 철이 들려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하니까 그 은혜를 구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엘리후가 처음으로 욥에게 들려준 중요한 말은 33장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라는 말이었습니다. 때로 우리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마치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비난까지 하게 되는 이유는 그 분과 우리는 아얘 크기부터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장종지라면 하나님은 바다이십니다. 그 간장종지에 바닷물을 전부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간장종지에 바닷물이 전부 담기지 않는다고 바다에게 불평하고 바다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욥도 어느 정도는 이런 함정에 빠져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고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시라면 어찌 욥의 인생을 다스리고 이 세상을 움직여 가시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런 하나님이시라면 믿을 이유도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자격도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사람에게는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이 일은 불의하다, 이 일은 의롭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있고, 또 그런 판단은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죄 없는 자에게 벌을 주시고, 의로운 자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고 해서 그것으로 하나님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엘리후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 이유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는데요.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라는 말 속에 그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죽음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인간이 당하는 가장 큰 고난입니다. 죽음이란 그 사람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자기 죄 때문에 금방 사라져도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을 벌 주신다고 해서 하나님을 불의하다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고난 당하게 하시고 죽게 하시는 것이 너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게 해 주시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의로운 삶은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면 적어도 평안하기라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생각입니다. 35장 5절 이하에서 엘리후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선과 의가 과연 하나님께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사실 우리는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이나 의롭게 행동하는 것을 대단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커다란 유익과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선하게 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의롭게 살지 않는다고 해서 이 세상을 못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실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보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롭게 살아가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무슨 커다란 자랑거리나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내가 의롭고 선하게 살아가는 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그러니까 나에게 복을 달라고, 그러니까 나는 평안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얼마나 크게 차이가 나는 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 분이 얼마나 높고 우리는 얼마나 낮은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인입니다. 금방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하나님이 제 크기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분 앞에서 권리주장을 멈출 수 있습니다. 부족하다고 생각되고 불완전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 그런 것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격 없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 자체가, 이렇게 이어져 가는 우리의 일상 자체가 때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불의하게 여겨져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로우신 분이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은혜가 넘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런 성품을 부인하고 떠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 어떤 순간에도 놓치지 않고 붙들어야 할 진리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 자리에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모실 수 있습니다. 항상 선하고 의로운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붙들고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겸손하고 낮은 마음을 지는 우리 모두가 되어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