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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11.22. 주일오전 - 그러므로 이제(여호수아 37)



20151122SM (#1).mp3.zip





성경본문 : 여호수아 24장 14-22절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가끔 여러분의 과거를 돌아볼 때가 있으시지요?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은 그저 자신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에 그럴 때도 있지만, 과거를 가볍게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를 실어서 찬찬히 되돌아 볼 때는 그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한 바른 결정을 하고 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가 그랬고 그 과거가 만들어 낸 현재가 이러니 좀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생각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이들에게 그 사람들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특히 부모들은 아이들을 설득할 때, 그 아이가 과거에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경우를 생각하게 하면서 그 결과를 얻기 위해서 그 이전에 그 아이가 어떻게 했었는지를 이야기 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 그렇게 해서 그렇게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 주는데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보다 더 좋은 교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시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지요.


여호수아는 24장 1절부터 13절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을 불러 모아 놓고 아브라함 시절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기까지 그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신실하고 특별하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고 또 그들을 특별대우 하셨는지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동안 정말 단 한 번도 변함 없이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그들을 특별대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넘치도록 지키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왔을 뿐 아니라, 그들이 짓지 않은 성읍에서 그들이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입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다시 들으면서 그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되짚어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분명히 그 마음 속에 감사가 되살아 났겠지요. 그렇지만 여호수아가 그런 이야기를 들려 준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되찾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시마 했던 약속의 땅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땅을 정복하는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복기를 지나서 본격적인 정착기로 들어가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적인 매무새를 가다듬어서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영원한 가나안 복지로 만드는 단계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들려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 과거의 은혜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행복하고 은혜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한 옛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를 위한 중요한 질문이었고 또 도전이었습니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끝낸 여호수아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앞도 뒤도 없이 무조건 그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신실하신 은혜와 사랑을 이야기 준 다음에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너희에게 이렇게 해 주셨으니 이제는 너희 차례다, 이제 너희가 하나님처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니까,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니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 말고도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고 우리를 그동안 얼마나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섬겨 주셨는지 말입니다. 그건 정말 섬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낮추시고 기다리시고 오래 참으시지 않으셨다면 결코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는 은혜들이니까요. 이 은혜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빈틈 없이, 변함 없이, 부족함 없이 그렇게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은혜 덕분에 우리가 살아왔고 또 지금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까? 그 동안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많이 거역했고, 또 업신 여기며 하나님 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고 섬겼습니까? 여러분을 정죄하고 여러분에게 죄책감을 드리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이것이 저의 삶이고 또 여러분의 삶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대로 우리에게 갚으셨다면 우리는 이미 믿음에서 떨어져 나갔을 것이고 은혜 밖으로 다시 쫓겨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이스라엘을 섬기라’고 말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만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요단강 동쪽에서 조상들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고 있었고, 심지어는 조상들이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말 특별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빠져 나왔을 때부터 시작해서 최소한 5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그들을 먹이고 입히셨으며, 오합지졸같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주변의 내로라하는 막강한 맹주들을 다 무찌르게 하시고 그들이 살던 집에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원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께만 순종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킬 때에만 이런 복이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했나요?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그들은 꽤 여러번 아주 심각한 불순종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가나안 땅의 잡신들 뿐만 아니라 애굽의 신들까지 섬기고 있었습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지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중간 중간에 그런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전부 지키셨습니다. 약속하셨던 은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베풀어 주셨습니다. 원칙대로라면 단 하나도 베풀어 주실 필요가 없었던 은혜들, 단 하나도 기대할 수 없었던 은혜들이었는데 말이지요. 


과거를 돌이켜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참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똑같이 느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만 더듬어 보아도 ‘너무나 크고 놀랍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혜들이 우리의 삶을 채워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은혜들만 잊지 않아도 우리는 언제나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삶을 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은혜들을 생각할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모든 은혜들, 우리 삶을 붙들고 채우고 지켜 준 하나님의 모든 은혜들이 우리가 신실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드렸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부족했습니다. 점많고 흠많은 인생이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하나님을 믿어 왔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처리하지 못한 미움이나 욕심, 이기심이 들어 차 있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던 것은 바로 이런 상태에서 받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죄를 짓고 여전히 우상을 함께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사랑 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전혀 그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변함 없는 은혜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감사도 더 풍성해 지고 더 감격 넘치게 될 뿐 아니라, 저절로 하나님의 은혜 앞에 무릎을 꿇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은혜에만 의지해서 살아가고 싶다는 소원을 품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생각할 때, 여호수아는 이 세상에 하나님과 비교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하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신들이나 혹은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의지하고 있는 다른 것들보다도 못한데도, 억지로 우리를 윽박지르고 협박하시면서 ‘나만 섬기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보다 더 믿음직하고, 하나님보다 더 능력있고, 하나님보다 더 변함 없이 은혜로우며, 우리를 기쁘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십니다. ‘나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택하라’고 말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제까지 수많은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온 우리 인생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보다 나은 분이 있었습니까? 그 분보다 더 선하고, 그 분보다 더 신실하며, 그 분 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분보다 더 우리를 만족시켰던 것이 있었습니까? 그 분보다 더 확실하게 의지할만한 것이 있었습니까?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대신에 그것을 선택하셔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요. 그렇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결단하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간다고 해도 그런 결론을 내린 여러분 만큼은 여호수아처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여러분 자신을 향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선포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들은 백성들은 이제 결단을 내립니다. 절대로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니 여호와만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자격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 졌으니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대답합니다. 정말 좋은 대답입니다. 여호수아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대답이었죠.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 대답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대답에 물을 뿌리고 초를 칩니다. “아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너희는 절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하라고 해놓고 하겠다고 하니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격입니다. 여호수아가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것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로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며 살아가려고 한다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를 묻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믿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인가’를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그저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는 신앙은 절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하면 되는 신앙,’ ‘되는 대로 해도 괜찮은’ 그런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하나 하는 것이 뭐가 그리 복잡하고 까다롭냐고 생각되십니까? 그런 생각이 드신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직장에서 회사 일을 하거나 직장상사를 보조할 때도 그저 되는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 일의 성격에 맞게 제대로 하려고 애를 쓰구요. 상사의 성품과 성향을 모두 헤아리고 거기 맞추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까다로운 사람은 사람 참 까다롭다고 투덜거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 맞추어 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높으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일에 대해서 그리고 또 하나님에 대해서 까다롭다, 복잡하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과연 그런 생각은 정당한 것일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까다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 간단한 일도 아닌 것이 분명하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요구하신다면 그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로서는 그 요구에 맞춰드리는 수 밖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품에 맞지 않는 것들을 기뻐하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서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데는 지불해야 할 댓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댓가를 전부 치러야만 예수님을 따를 수 있지 그저 마음만 가지고는, 되는 대로 해서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분명히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만 있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하리라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부로 죄를 짓거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끌어드릴 때, 이미 하나님께 함께 섬기고 있는 신들을 내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 어떤 것과도 같지 않으시며, 그 무엇과도 구별되어 계신 분이십니다. 또 죄와 상관이 없으시고 죄를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죄를 멀리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때로 죄를 지을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죄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죄를 떼어 내려는 의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면서, 죄를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질투하실 수 밖에 없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것을 함께 섬기고 하나님처럼 의지하는 것은 결국 모든 것과 홀로 구별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다른 것과 똑같은 수준으로 취급하며 그것과 하나님을 섞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또 하나님처럼 중요하게 여기고 또 의지하는 다른 것을 가진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끊임 없이 더 온전히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 분으로 여기며, 끊임 없이 다른 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려는 마음의 경향과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여호수아로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이것을 말해주지 않는 것은 진실을 숨기는 것이 되고 또 이스라엘의 신앙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후에 사사기를 보면 여호수아의 이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엄청난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미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거기서 광야보다도 더 거칠고 힘겨운 광야를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이런 경고를 듣고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까다로우신 분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다른 것을 의지하며 살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모두가 마음을 다해서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라고 스스로 자신의 말한 것에 대한 증인이 되면서 까지,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어린아이와 성인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어린아이도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댓가를 지불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대신해서 댓가를 지불해 주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제 자기 인생을 위해서 지불해야 할 댓가를 스스로 지불하려는 의지와 태도를 지니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댓가를 지불하는 삶을 살기 시작할 때부터 그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이 열리게 됩니다. 그 때부터 ‘사는 맛’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이 성숙해 진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신앙을 위해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기꺼이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되고 또한 새롭게 열리는 신앙의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맛을 알게 되고 철 든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거나 혹은 하나님과 다른 것을 섞어서 섬기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려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이런 질투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나는 너희만 알았다’고 ‘나는 너희를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질투에 댓가를 치를 각오를 가지고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맛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간단한 일도 아니구요. 그렇지만 이미 우리의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우리의 부족함과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변함 없이 부어주셨던 신실하신 은혜들은 그래도 하나님만큼은 놓치면 안된다고, 하나님의 질투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다가 어떤 댓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우리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는 여호수아의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는 그의 도전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래도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답을 따라 살기 위해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 헌신의 참된 복과 은혜를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를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깊고 풍성한 사랑 가운데, 하나님만 알고 하나님만 섬기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