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현교회 설교,강의/주일예배

2015.11.29. 주일오전 -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라(여호수아 38)



20151129SM (#1).mp3.zip





성경본문 : 여호수아 24장 23-28절


 



요즘 결혼식장에 가 보면 예전과는 달리 결혼식의 순서나 내용이 참 많이 다양해졌다는 것을 생각이 듭니다. 제가 결혼할 때만 해도 식장에서 신랑이 양가 부모님에게 절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저 목례나 하면 그만이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신랑이 양가 부모에게 큰 절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춤 한 번 흐드러지게 추지 않으면 신부를 데리고 갈 자격이 없다는 듯이 저마도 춤추고 노래하는 일은 거의 빼놓을 수 없는 절차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례사가 없는 결혼식을 본 적도 있고, 신랑과 신부가 손을 함께 입장하는 결혼식을 보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결혼식의 순서나 내용이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결혼식 순서 속에 꼭 포함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혼인서약’입니다. 이제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이 사람의 배우자로서 아내에게 혹은 신랑에게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책임을 다하고 신의를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만큼은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 서약순서가 없다면 결혼식은 그저 가벼운 요식행위에 불과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나마 이 순서라도 있으니 결혼식에 무게가 실리고, 결혼이라는 것의 의미가 지켜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결혼식 순서 중에 혼인서약이 포함되는 것은 결혼은 단지 두 사람이 만나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을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에게 관계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언약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결혼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남녀간의 사랑에 두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결혼관계를 남녀간의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사랑에만 묶어 놓으면 결혼은 굉장히 불안해지고 부실해 집니다. 사람의 감정은 언제든지 변하고 퇴색되는 그런 것이니까요. 결혼관계가 흔들릴 때, 그 때 결혼관계를 붙들어 주는 것은 사실 사랑이 아니라 부부지간의 관계에 대한 책임감과 신실함입니다. 그래도 혼인이라는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관계에 대한 헌신이 결혼관계를 쉽사리 깨지지 않게 해주는 보호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젊은 부부들은 부부간에 애틋한 감정이 사라진다고 속상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순간이 여러분의 결혼이 진짜 결혼이 되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에 비록 애틋한 사랑이 흐려진다고 해도 결혼이라는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헌신하면, 그 감정은 서로를 향한 더 깊은 신뢰가 될 것이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결혼에 대해서 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결혼과 비슷한 언약관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렇지만 이 믿음은 그저 우리 감정에 그 기초를 둔 그런 믿음, 내가 내 친구를 신뢰하는 것과 같은 그런 종류의 믿음이 아닙니다. 친구지간의 신뢰는 서로간의 선의에 기초하고 있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신뢰는 선의가 아니라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선의에 기초한 신뢰관계보다는 서로 간에 받아들여야하고 감당해야 할 책임이 훨씬 크고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또 배반해도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싸매시고 고치시고 용서하시고 또다시 사랑하십니다. 그런 이야기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왜 이렇게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랑일까요? 왜 사람들은 끊임 없이 하나님을 배반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언약에 대해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 한 번 하신 언약은 깨뜨리는 법이 없고, 반드시 지키시는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하신 약속을 당신의 외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지켜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들을 향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호의가 아니라 깨질 수 없는 영원한 언약에 매여 있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런데, 언약이라는 것은 그 성격상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항상 그 언약의 상대방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서로 언약을 맺은 당사자들은 한 쪽이 아니라 양 쪽 모두가 그 언약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서 신실하게 헌신해야하는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이 언약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 뿐만이 아니라 그 분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상대에게도 똑같이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셔야 한다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도 그 언약에 똑같이 신실해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의 관계는 언약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그 의무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실제적인 관계가 성립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을 믿고서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한 후에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저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이야기를 믿고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을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우리는 이 말을 들을 때 이 말을 단순히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 말로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하나님께서 맺자고 제안하신 언약입니다. 한 번 잘 살펴 보십시오. 이 단순한 말들 속에는 우리의 의무와 하나님의 의무가 모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 말들은 전부 계약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질 언약의 조건말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은 것을 조금 공식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것은 그것은 이 조건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언약관계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이 언약으로 인해 생겨난 관계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고, 또 그 책임을 지키기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나님도 우리들도 언약을 지키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언약 위에 세워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결혼식을 치르고, 아무리 확실히 서약을 해도, 결혼한 신랑과 신부가 새로 생겨난 그 관계에 헌신하지 않으려고 하고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발전되고 성숙해져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을 믿은지 이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왜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는 이렇게 진전이 없고, 그 관계 안에서 누리는 풍성함과 만족함이 이렇게 별 볼 일 없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을 심사숙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십중팔구 우리가 그만큼 하나님과의 관계에 헌신하지 못했고 또 신실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저 마음만 앞세우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했을 때, 여호수아가 뜸을 들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새롭게 연약을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언약에는 책임과 헌신이 따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여호수아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자신의 말에 대한 증인이 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스스로 자기 말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나님과 다시 맺을 언약에 대한 묵직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제서야 여호수아는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치워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명심해야하고 반드시 받아들어야 할 것들, 만약 그것이 안되면 정말로 하나님을 섬기는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른 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는 여러 남자들을 쳐다 볼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저게 좋고, 이 사람은 이게 좋고… 저 사람과 사귀어 볼까, 아니면 저 사람과 사귀어 볼까? 때로는 이 사람 저 사람 사이에서 저울질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게 그리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그렇지만 일단 한 남자와 결혼을 한 후에는 그러면 안됩니다. 옆집 남자 잘 생긴 것 가지고 감탄하고, 뒷집 남자 돈 잘 버는 것 보고 멋있다고 생각하고, 앞집 남자 자상한 성격에 끌리고… 그러면 안됩니다. 한 남자와 결혼을 한 후에는 다른 남자들은 모두 머리와 마음 속에서 지워 버려야 합니다. 이게 안되면 결혼을 해도 결혼을 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남편을 속이고 농락하는 셈이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순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는 이와 비슷한 관계가 생겨 납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처럼 생각하던 것들을 다 쫓아내야 합니다. 처음부터 완전히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도 계속해서 그 싸움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보면 까끔씩 다른 것에 눈길이 가고 마음을 빼앗길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계속해서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섬기는 자리로 되돌아가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점점 더 우리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만 남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치워버리라고 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이것이 여호수아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번째로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의 참된 언약관계 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두번째 과정입니다. 우상을 없애는 일이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일이라면 하나님께 마음을 들이는 일은 굉장히 적극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무언가 어떤 사실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것을 믿고, 저것을 믿고, 또 요것을 의심하지 않으면 그게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믿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무엇보다도 마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드리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때, 우리는 비로소 참 믿음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마음이라는 말은 감정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말을 만나면 그 말도 그렇게 이해하지요. 그렇지만 원래 성경에서 마음은 그 사람의 인격의 중심이고 그의 모든 감정과 생각이 흘러나오는 근원이 되는 곳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다고 할 때, 그것은 곧 우리 존재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까요?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인격을 쏟아 헌신하는 사람, 자기 존재의 중심에 하나님만을 두려고 애쓰는 사람말이지요. 결국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로 작정했다는 뜻이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그 길을 간다는 뜻이 됩니다.  


언젠가 복음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과연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진짜로 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 궁금해진 적이 있습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성경을 보았는데요. 그러다가 저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진아. 내가 모든 것을 전부 다 너에게 줄테니까 너는 저 자신만 나한테 줘라. 내가 너의 전부가 되어 줄테니까 너 자신만 나에게 줄래?”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계약, 나를 주고 하나님을 얻는 거래가 성사됩니다. 나를 주지 않고 하나님을 얻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게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진짜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좌소인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응답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여기 ‘우리’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이제 더 이상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신앙의 주어가 ‘내 어머니,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 내 마누라, 내 남편’이 아니라 바로 ‘나’가 되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드리는 일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신앙이란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묻어가면서 시작될 수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반드시 신앙을 ‘나의 일’이 되게 해야 합니다. 결국 신앙이란 마음을 드리는 일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제 조상들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으로 모시기로 말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우상을 내버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어디서 드러나게 될까요? 첫째로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길 때, 마지 못해서 억지로 의무방어전 치루듯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눈치 보면서 적당히 하지도 않구요. 마음 속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서 하나님을 기쁘게 섬깁니다. 참 성도에게 하나님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드린 분이고, 그 하나님은 다른 누구의 하나님도 아닌 ‘우리 하나님’이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까요. 하나님을 섬길 때 나타나는 기쁨과 자발적인 마음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만이 드러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입니다. 그래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언제나 변함 없이 항상 이런 마음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기준을 그 사람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칼 같은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 자신의 신앙의 상태를 알아보는 시금석으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신앙이 그래도 정상적인 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는 내가 지금 나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기쁨이 있고 또한 그 기쁨에서 생겨나는 자발적인 섬김이 있습니다. 자발성과 기쁨이 사라지고, 신앙이 자꾸 떼우기식으로 변해가는 것은 지금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무언가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싸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점검하고 다시 기쁨과 자발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하나님께 드린 우리의 마음이 언제 또다시 다른 것을 향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의 후퇴와 탈선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는 두 번째 특징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한다는 것입니다. 청종이라는 말은 듣고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다해서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최선을 다해서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참된 정체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들 자신이 누군인가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쉐마’라고 부르는 말씀인데요. 이 말씀을 ‘쉐마’라고 부르는 것은 그 말씀의 첫번째 단어가 ‘쉐마’ 그러니까 ‘들으라’라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쉐마는 신명기 6장 4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잠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자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로 또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로 여겨 왔습니다. 그것을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생각해 왔고, 또 거기에 자기들의 하나님의 백성됨을 붙들어 매어 놓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된 하나님의 백성됨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데서, 듣고 순종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면 할 수도 없고 하려고 하지도 않는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몰라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는 그릇된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일에 지장이 없다는 이상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힘을 주시며 말씀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가고 변화시켜 가시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말씀에 무관심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라고 대답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이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새롭게 합니다. 그런데, 그 언약의 중심에 또 무엇이 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이제 이 예식을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이 맺어지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때 참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아지시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대단히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순종하는 것이 그 분과 우리 사이에 있는 언약 관계의 핵심이고 그것이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의 실제적인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이 여기면서 그 분을 존중하고 섬기며 그 분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 안에서 복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또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발버둥칠 때, 성도는 비로소 하나님의 참된 언약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만이 알고 또 누릴 수 있는 은혜와 능력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그냥 저냥 어쩌다 보니 시작된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영원한 언약으로 묶여져 있는, 그 언약 때문에 생겨나고 그 언약 때문에 지탱되어지는 아주 특별한 관계 안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나요? 언약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 참고 기다리시나요? 그것도 언약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지요? 그것도 언약 때문입니다. 왜 아들을 주셨지요? 그것도 언약 때문입니다. 왜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고, 인도자가 되어 주시며 빈틈 없는 공급자가 되어 주시지요? 그것 또한 영원한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 언약을 지켜 오셨고 또 여전히 그 언약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에 그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언약에 변함 없이 신실하신 하나님, 그래서 우리만 아셨고, 우리만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나와 너 사이의 언약을 새롭게 하자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는 이미 도장을 찍었으니 희미해진 너의 도장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찍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드릴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는 참 백성의 자리로 되돌아갈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 속에 새롭게 맺어진 언약을 품고서 자기 집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언약을 새롭게 하고서 예배당 문을 나서는 복된 우리들, 그 언약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됨을 회복하는 은혜를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참 백성의 자리,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귀를 기울여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영광스러운 언약 백성의 자리, 신실하게 하나님만 사랑하는 복된 자리에 머물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며 살게 하소서.
  2.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참된 언약 백성의 삶을 살게 하소서.
  3. 언약 안에서 주님의 구원과 사랑을 확신하며 살게 하소서.